그러니까 살면서 내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이거다.

"직접 만나보면 누가 제일 멋있어요?"

영화잡지 <씨네21>의 사진기자인 내 직업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인데 그럴 때마다 난 누구 한 명을 콕 찍어 말하기가 힘들다. 이병헌이라 말하자니 다니엘 헤니 얼굴이 어른거리고 또 한 편으로 원빈의 멋진 미소가 다시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한다.

"얼굴은 다니엘 헤니가 정말 잘생겼죠. 그런데 눈빛은 이병헌이 최고죠. 하정우도 진짜 멋있어요. 강동원은 그냥 그림이고 원빈이 웃을 때는 거의 죽음이죠."

이렇게 끝도 없이 얘기하게 된다. 내가 여자니까 남자배우만 언급하는 거냐고 반문하신다면 당장 열 줄도 넘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배우 리스트를 나열할 수 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말하는 요점은 내가 만나본 배우 중에 누구 하나 멋지지 않은 배우는 없다는 것이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화장발이나 옷발이 아니더라도, 또 특별하게 완벽한 외모가 아니라 할지라도 배우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개성과 매력이 철철 넘친다. 그런 매력이 있어야만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관객과 시청자들을 함께 울리고 웃기고 감동시킬 수 있는 거다.

아무튼 내 눈에는 다 멋있고 근사해 보인다. 또 그래야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기도 하다. 상대에 대한 애정 없이 찍은 사진은 금세 티가 나니 말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배우를 흠모해마지않는 것이 내 일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1996년 5월, 당시 입사 2년차였던 나는 난생 처음 칸영화제 취재를 갔다. 아침부터 거의 밤까지 빽빽하게 짜여진 일정을 매일 소화해야하는 칸영화제는 매순간의 순발력과 끈기 있는 지구력을 함께 요하는 내게는 참으로 어려운 취재거리였다. 초저녁 무렵 메인 상영관으로 길게 이어진 스타들의 레드 카펫 촬영은 영화제 취재의 하이라이트인데 그다지 좋지 않은 자리를 배정 받은 나는 키 큰 서양 사진기자들(대부분이 남자 사진기자들) 틈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연신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조지 클루니가 걸어 들어오더니 내 바로 앞에서 멋진 미소를 보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나를 위해서(순전히 나의 착각이지만 말이다) 그 당시에도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외국배우인 바로 그 조지 클루니가 말이다. 나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이게 설마 꿈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런데 꿈 같은 일은 그 후에도 일어났다. 내가 클루니를 사진기자들과 경쟁적으로 함께 촬영하고 있는 바로 그 장면을 어느 해외통신사 사진기자가 찍었고 그 사진을 한 일간지가 외신으로 받아서 신문에 게재한 것이었다. 칸에서 돌아왔더니 누군가가 "너 신문에 나왔어" 그러는 거다. 찾아봤더니 맨 앞 쪽 제일 잘 보이는 곳에서 내가 조지 클루니를 찍고 있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아마 그 당시만 해도 보기 드물었던 동양인 여자 사진기자가 흥미로웠던 모양이었다.

칸영화제는 세계 최고의 영화제답게 스타 배우와 감독들이 총출동하는 그야말로 흥분과 열광 그 자체다. 나는 수많은 해외 배우와 스타들의 사진을 찍으며 우리나라 배우들도 줄줄이 저 레드 카펫을 밟으며 메인 상영관에 들어가고 그 곳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왔는데 드디어 2007년 <밀양>으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 순간을 TV화면으로 보며 포토콜 장소에서 시상자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칸영화제는 영화제 공식 사진기자나 일부 메인 통신사 사진기자들만 시상식장에 들어갈 수 있고 나머지 사진기자들은 시상식 후에 시상자들을 따로 촬영한다) 함께 기다리고 있던 사진기자들이 일제히 나에게 축하의 박수를 쳐줬을 때는 마치 내가 상을 받은 것처럼 감격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취재하며 너무나 부러워했던 국제영화제가 이제는 부산, 전주, 부천 등지에서 매년 열리고 많은 외국 스타들도 앞 다퉈 방한하는 시대가 됐다. 물론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수도 있는 내용도 있겠지만 나는 한국영화를, 그리고 그 중심에서 성장을 거듭해 가는 배우들을 전폭적인 애정을 담아 응원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아니까. 그리고 어느 한 명만을 고를 수 없을 만큼 모두다 멋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렇다하더라도, 정말 꼭, 한 명을 선택하라고 재차 물어오는 사람에게는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배우는 이병헌이예요" 라고 말한다. 그의 목소리와 그의 눈과 그의 미소와 또 불같기도 하고 얼음 같기도 한 그의 연기를 보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계옥 씨네21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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