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승자는 지역감정인가? 적어도 언론에게는 그런듯하다. 6·27선거가 끝나고 그 결과를 지켜본 언론이 내지른 첫 탄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3김에 의한 지역분할’이었다.

동아일보는 6월 28일자 1면 머릿기사의 제목을 ‘민자 영남 ― 민주 호남 ― 자민 충청, 3김 지역분할 재현’이라고 뽑았다. 기사의 첫문장도 이렇다. “6·27 지방선거에서는 특정 정치지도자와 주요정당에 의한 고질적 지역할거양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한국일보도 같은 날짜 1면 머릿기사의 제목으로 ‘광역장 5·4·4·2 3당할거’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면에 실린 ‘광역단체장 개표결과 분석’이라는 해설기사에서 ‘여소야대 지역할거 재현’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투표행위가 여전히 지역주의에 크게 영향받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도 개표결과 분석을 통해 ‘지역감정에 패배한 지방선거’라고 규정지었으며 ‘우려되는 지역분할 고착화’라는 사설을 실었다. 경향신문도 ‘6·27 이후…’라는 시리즈의 첫 기사로 ‘지역할거’를 다루면서 ‘신삼국지 정국 재현’이라고 요약했다.

지역감정이라는 두터운 벽이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며 정치적 행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언론에서 이러한 지역감정과 ‘지역할거’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언론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번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들은 온통 지역감정이라는‘전근대적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3김’이라는 지역군주에 맹목적으로 놀아나 비이성적 투표행위를 한 것이다.

이런 언론의 보도는 ‘민자당 참패’라는 이번 선거의 다른 측면을 가리고 그 의미를 축소한다는 점에서 일면적이다. 광역단체장 선거는 차치하더라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최다 당선되고 민자당이 2위에 그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민자당 참패’임이 명백하다. 조선일보 분석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이번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얻은 민자당 득표율은 20.7%로 이는 지난 92년 총선때의 34.7% 득표율 뿐만 아니라 지난 88년 총선 당시 통일민주당 시절 득표율인 23.1%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또 부산에서 노무현의원의 선전은 어떤가. 이런 결과를 놓고 그 원인을 지역감정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궁색하고 빈약하지 않은가.

“민자당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은 … 민심의 바닥에 깔려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광범위한 반민자정서 또는 반 YS(김영삼) 정서인것 같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조선)이 대부분의 언론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언론이야말로 지역감정이라는‘전근대적 망령’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치밀한 분석과 평가보다는 감각적이고 자극적인데 집착하는 정치적 선정주의만 난무했다.

이번 선거결과는 현 정부가 보여준 2년여동안의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반발이 광범위하게 표출된 것이며, 그러한 반민자당 정서가 당장의 정치적 지형 속에서 적절한 통로를 찾지 못한 채 일부 정치인들의 지역주의와 결합한 현실적 선택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결과에서 언론은 반민자당 정서의 내용과 실체가 무엇이냐는 데 마땅히 주목했어야 했다. 정말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이 시대의 정치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했다. 우리의 정치적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승자인 유권자들에게 그 정당한 대가를 돌려주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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