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신사 관계자는 모 경제지에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논의 중인 휴대전화 기본요금 인하 요구를 정면으로 비난한 것이다.

일부 매체들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기본료를 인하하면 통신업계가 적자로 돌아서고 국가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통신업계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했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마저 정부여당의 기본료 인하 방침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모처럼 형성된 통신요금 인하 논의가 예전처럼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신업계의 주장처럼 기본료는 당연히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몫일까. 또, 통신사들은 정말 기본료를 인하할 여력이 없는 것일까. 통신업계의 대표적인 주장 5가지를 살펴봤다.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KT그룹 합병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석채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① 기본료 인하하면 통신사 적자 난다? “망유지 원가 공개를…인하여력 충분”

통신업계는 기본료를 인하할 경우 통신 3사가 모두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월 1000원의 요금을 깎아주면 907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LGU+는 연간 1100억 원의 매출이 줄어든다. 여기에 현재 통신업계가 제시한 문자 50건까지 무료로 지급하면 1인당 1000원의 요금 인하 효과가 더해져 연간 2200억 원의 매출이 줄어든다.

가입자가 2600만 명인 1위 기업 SKT는 그 폭이 더 커서 연간 6000억 원의 매출 하락이 예상된다. 2위인 KT까지 합치면 통신 3사가 연간 1조 원이 넘는 매출 감소가 불가피해 적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요금 인하를 주장하는 쪽도 기본료를 인하하면 통신사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통신사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통신사가 지금까지 거둬들인 높은 매출은 기본료를 과다하게 책정해 폭리를 취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본료를 합리적으로 낮출 경우 통신사 매출이 줄어들지언정 적자타령까지 하는 것은 엄살이라는 주장이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황희남 간사는 “지난해 SKT 무선부문 매출 12조4600억 원 가운데 기본료 수익만 36.1%인 4조5020억 원이고, KT도 매출 6조9325억 원 가운데 기본료 수익이 2조5040억 원”이라며 “기본료 인하 요구를 수용하면 적자가 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말했다.

기본료 인하와 가입비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실 관계자도 “통신 3사가 기본료 인하여력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주택가격처럼 통신사들도 망 유지에 들어가는 원가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② 통신요금 인하하면 신규투자 못한다? “3사 작년 순익만 3조…투자는 자산”

통신업계는 같은 맥락에서 통신요금을 인하하면 수익이 줄어들어 신규투자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3G(세대)에서 4G로 망을 업그레이드 하는 데에만 막대한 신규 투자비용이 예상되는데 매출이 감소하면 투자일정에 차질이 빚어져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석채 KT 회장은 지난달 26일 KT그룹 합병 2주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새 시대로 변화하려는 시점인데 그 시점에서는 돈을 굉장히 많이 써야 한다”며 “국민이 ‘우리는 그런 것 다 싫다’며 당장 한두 푼 깎는 것에만 매몰된다면 우리는 포부도 접어야 하고 꿈도 깎아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요금인하 요구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투자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그 비용을 소비자가 내라는 얘기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기업 회계에서 투자는 지출이 아니라 자산으로 잡힌다. 투자를 하면 나중에 그만큼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며 “기업의 미래 투자비용을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지도 않는 소비자들에게 걷겠다는 건 독과점을 이용한 횡포”라고 밝혔다. 통신 3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5조원에 순이익만 3조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만 이미 지난해 매출을 넘어서면서 6조가 넘는 이익을 달성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렇다면 통신사들은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을 제대로 투자하긴 했을까. 통신업계 1위인 SKT 실적자료를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마케팅비용(마케팅 수수료+광고선전비)이 여전히 투자비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SK는 올해 1분기에만 마케팅 비용으로 7850억 원(매출대비 25.1%)을 쏟아 부었다. 반면, 투자는 3000억 원(9.6%)에 그쳤다.

③ 통신요금은 지금도 충분히 싸다? “가구당 월평균 10만3000원 큰 부담”

통신요금 인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업계는 국내 통신요금은 충분히 저렴하다며 요금 인하에 난색을 표명해왔다. 이석채 KT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KT는 이미 선도적으로 데이터요금을 88% 인하한데 이어 여러 프로그램을 능동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서운해 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이 회장의 말처럼 통신사들이 무제한 데이터요금제를 출시하는 등 이전보다 개선된 요금체계를 선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청소년들이 살인적인 데이터 요금을 모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바람에 수백만 원의 요금 폭탄을 맞는 일이 사회문제로 떠오른데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데이터 가격을 합리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통신사가 자발적으로 혁신한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맛본 소비자의 시대적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현재 통화료가 싸다는 것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이동전화요금 지출 월평균은 무려 10만3000원이나 됐다. 지난해보다 8.5%가 증가한 액수다. 통신서비스 지출이 가계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를 넘어서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투자비용이 회수되면서 기본료가 점점 낮아진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에서는 기본료가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상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천정배 의원실은 “통신서비스는 장치사업이기 때문에 투자비를 회수하게 되면 기본료가 낮아지는 게 상식”이라며 “통신사들이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기본료는 건들지 않은 채 무료문자 등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서비스를 늘려주면서 요금 인하 효과가 있다고 생색만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④ 전 국민 깎아주면 서민혜택 줄어든다? “매출 변동 없다면 어떤 요구도 수용할 것”

<“이러다 무상·반값 통신요금 요구할라” / 정치권에 휘둘리는 ‘통신요금 인하’>(머니투데이 25일자), <정치권 요구대로 통신요금 전 국민 기본료 인하 땐 서민 통신복지 오히려 줄어든다>(파이낸셜뉴스 25일자)…. 통신업계의 주장을 전한 경제지들의 기사 제목들이다. 정치권의 통신요금 인하 요구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는 내용이다.

파이낸셜뉴스는 해당 기사에서 “통신업체들의 요금인하 여력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한나라당의 요구대로 기본료를 인하하면 서민 통신복지를 위해 마련된 여러 가지 요금조정 안이 무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권의 통신비 포퓰리즘 정책은 오히려 서민들의 통신복지가 후퇴하는 역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고 한 통신업계 전문가의 말을 전했다.

기사에서 언급된 통신사의 ‘서민들의 통신복지를 위한 요금조정’ 방안은 △청소년에게 문자메시지(SMS) 200건 무료 제공 △일반 사용자에게는 50건의 무료문자 제공 △3만5000원~4만5000원의 소액요금제를 사용하는 서민들을 위한 20분 무료통화 제공 등이다.

그러나 SMS와 음성통화는 이미 망 투자를 끝낸 통신사로서는 추가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서비스다. 기사 제목처럼 서민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기사 내용과는 반대로 언론이 기본료 인하 정책을 지지해야 하는 게 논리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매출과 영업이익에만 변동이 없다면 통신사들은 어떤 요구든 수용할 것”이라며 “지금 통신사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는 건 최근 정치권 논의가 매출에 영향이 불가피한 기본료에 손을 대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⑤ 민간기업 요금, 정부 간섭 안 된다? “독과점 기업 관리·감독 제대로 했나”

지난 20일자 한국일보에는 “민간기업의 서비스 요금을 정부가 밀어붙여 내리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문”이라는 내용의 기자칼럼이 실렸다. 정부가 치열한 시장 경쟁을 통해 서비스 개선과 요금 인하가 이뤄지도록 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요금인하를 강제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정부의 요금인하 요구가 나올 때마다 통신업계가 꺼내들었던 논리 가운데 하나도 바로 민간기업의 요금에 왜 정부가 간섭하느냐는 것이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자유시장 경제를 정부가 뒤흔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통신요금 인하를 요구하는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도 문제는 통신업계가 아니라 정부에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앞선 주장과는 다른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들은 정부가 사실상 독과점 상태인 통신업계의 가격담합 등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감가상각이 적용되지 않는 높은 기본료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 통신사들이 똑같은 요금체계를 내놓고 경쟁을 포기함으로써 소비자들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다양한 요금제 선택권을 박탈했다고 말한다. 정부에 책임을 묻는 건 같지만 전혀 다른 입장인 셈이다.

참여연대는 앞서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이동통신사들의 서비스 요금결정 과정에 담합 의혹이 있다고 고발했다. 기본료부터 스마트요금제까지 통신3사의 요금제가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통신업체들 간에 자유로운 가격 경쟁이 이뤄져 요금이 하락해야 하는 게 시장경제 원칙상 당연한데도 국내 현실은 오히려 업체들이 요금을 동일하게 책정, 이익을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안진걸 팀장은 “통신사들은 민간기업이지만 공공재인 주파수를 임대해 사업을 한다는 특수성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민생 물가안정 차원에서 개입할 여지가 발생한다"며 "정부가 철저하게 담합의혹을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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