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회사들의 최근 화두는 ‘롱텀에볼루션(LTE)'이라고 불리는 4G(세대) 서비스를 언제 시작할 것이냐다. 아직 2G 서비스도 종료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3G 서비스의 주파수 대역이 벌써부터 포화상태에 이를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무선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SK텔레콤과 KT가 경쟁적으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해 가뜩이나 부족한 네트워크 자원을 소진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3G 서비스에서는 SK텔레콤이 상대적으로 주파수 대역에 여유가 있는 편이다. 3G 서비스 가입자는 SK텔레콤이 1600만명, KT가 1500만명 수준으로 비슷한데 SK텔레콤이 60MHz 폭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KT는 40MHz 폭 밖에 없다. SK텔레콤 가입자들이 6차선 도로를 달린다면 KT 고객들은 4차선 도로를 달리는 꼴이다. 이 때문에 KT는 최근 도심 인구 밀집 지역에서 통화 품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 잦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파수 배분현황 ©방송통신위원회
 
KT는 아직까지 4G 서비스에 쓸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세계적으로 여러 통신회사들이 4G 서비스에 쓰려고 선택한 주파수는 800MHz 대역이 대부분이고 일부 통신회사들만 1.8GHz 대역을 선택하는 추세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이미 800MHz 대역에 여유 주파수를 확보하고 있지만 KT는 없다. 만약 경매 매물로 나올 1.8GHz 대역 20MHz 폭을 놓칠 경우 KT는 4G 서비스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KT는 당초 900MHz 대역에서 4G 서비스를 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세계적으로 이 대역을 선택한 통신회사가 거의 없어서 단말기 수급 등에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KT는 궁여지책으로 2G 서비스에 쓰고 있는 1.8GHz 대역을 4G 서비스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방통위에 제출했으나 2G 가입자가 1만명 미만으로 줄어들기 전에는 2G 서비스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답변을 받은 바 있다. 4월 말 기준 KT의 2G 가입자는 97만명에 이른다.

이런 사정 때문에 KT는 아직까지 4G 서비스 개시 일정조차 잡지 못한 상태다. KT 입장에서는 4G 서비스도 걱정이지만 당장 3G 주파수를 추가 확보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2G 가입자들이 3G 서비스로 넘어오면서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KT는 원활한 3G 서비스를 위해 2.1GHz 대역을 추가 확보해야 하는 동시에 4G 서비스를 위해 1.8GHz 대역도 놓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LG유플러스 역시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3G 서비스 표준으로 자리잡은 2.1GHz 대역에서 LG유플러스는 주파수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3G 서비스를 시작조차 할 수 없었고 첨단 스마트폰 열풍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LG유플러스는 일찌감치 3G를 건너뛰고 800MHz 대역에서 국내 최초로 4G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계획인데 여전히 2.1GHz 대역 경매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다.

한편 SK텔레콤은 2.1GHz 대역에서 이미 60MHz 폭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부담이 된다. 경매 매물로 나올 20MHz 폭을 SK텔레콤이 가져갈 경우 80:40:0으로 SK텔레콤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해 자칫 특혜 논란까지 제기될 수도 있다. KT가 가져갈 경우 60:60:0으로 SK텔레콤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LG유플러스의 불만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누가 가져가든 불만이 없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강충구 고려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내년 말까지 3,162만명까지 늘어나면서 올해 1월 기준 5,496TB였던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2015년이면 4만7,914TB로 8.7배나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이르면 올해 연말부터 네트워크 용량이 한계를 맞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주파수 추가 확보에 실패할 경우 네트워크 용량이 한계를 넘어서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개 통신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파수 폭은 210MHz 밖에 안 되는데 2015년이면 450MHz, 2020년이면 600MHz의 폭이 추가로 필요하게 된다는 게 강 교수의 전망이다. 그러나 통신회사들이 가져갈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은 2.1GHz 대역 20MHz 폭과 1.8GHz 대역 20MHz 폭, 여기에다 디지털 전환 이후 회수할 계획인 700MHz 대역 108MHz 폭을 모두 통신회사들이 가져간다고 해도 148MHz 폭 밖에 안 된다.

지금처럼 통신회사들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남발하는 상황에서는 남는 주파수를 모두 끌어다 쓴다고 하더라도 급증하는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상위 10%의 이용자가 93%의 데이터 트래픽을 소비한다는 통계도 나온 바 있다. 무작정 주파수 대역을 늘리거나 4G 서비스로 전환하는 게 만능 해법이 아니고 와이파이와 펨토셀 등 유선 네트워크를 우회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창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은 “무선 데이터 트래픽 폭증은 2.1GHz 대역에 국한된 문제로 방통위의 일관성 없는 주파수 정책과 통신회사들의 과당 경쟁이 빚어낸 결과"라면서 “당장 2.1GHz 대역의 네트워크 부하를 해결하는데 1.8GHz나 700MHz 대역을 추가 할당하는 건 근본적인 해법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양 회장은 “네트워크 현실을 무시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제한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아무리 통신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모든 국민이 데이터를 펑펑 쓸 수 있는 시대는 한동안 불가능하다"면서 “단순히 주파수를 추가 배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제한된 네트워크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이사는 “주파수 배분의 핵심은 통신회사들의 독과점 구조를 해체하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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