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이동통신회사들의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연말부터 이동통신 네트워크 용량이 한계를 맞게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통신회사들이 추가 주파수 대역 확보에 사활을 걸고 덤벼들고 있는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의 주파수 대역을 회수해 매각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파수 배분을 둘러싼 지상파 방송사들과 통신회사들의 첨예한 갈등, 그 핵심 쟁점을 짚어 본다. /편집자 주

내년 12월31일이면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이 종료되고 전면 디지털로 전환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금까지 2번부터 69번까지 채널을 배정받아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송을 동시에 내보내 왔는데 디지털 전환 이후 남게 되는 채널을 회수해서 판매한다는 게 방송통신위원회의 계획이다. 698MHz에서 806MHz에 걸쳐 있는 52번부터 69번까지 18개 채널, 108MHz 대역 폭이 매물로 나올 전망이다. 이 구간이 바로 '꿈의 주파수'라고 불리는 700MHz 대역이다.

주파수 대역이 낮을수록 전송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통신회사들은 낮은 주파수 대역을 선호하게 된다. 과거 800MHz 대역을 확보했던 SK텔레콤이 1.8GHz 대역에서 서비스를 했던 KT나 LGU+보다 훨씬 더 적은 기지국을 세우고도 훨씬 더 좋은 통화 품질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방통위가 지상파 방송사들에게 회수한다는 700MHz 대역은 전송 효율이 더 좋다. 통신회사들이 이 ‘황금 주파수’에 목을 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지난해 5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정보기술쇼에 참석해 스마트폰 단말기를 시연하고 있다. ⓒLG전자
 
거짓말 1 : 디지털 전환하면 주파수가 덜 든다?

방통위는 디지털 방송이 아날로그 방송보다 전송 효율이 좋기 때문에 주파수가 과거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채널 61번부터 69번까지를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임시 대역으로 활용해 왔기 때문에 디지털 전환 이후에는 아날로그 방송 영역을 디지털 영역으로 바꾸고 나면 임시 대역이 필요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전송 효율이 늘어나는 걸 감안하면 채널을 더 줄일 수 있다는 게 방통위 입장이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들은 '유휴 주파수 대역'이라는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구간을 남아도는 주파수 대역으로 볼 게 아니라 새로운 방송 서비스를 준비하는데 남겨둬야 할 예비대역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날로그 방송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임시 대역이 필요했던 것처럼 향후 3DTV나 UDTV 등을 서비스하려면 임시 대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임시 대역이 없다면 새로운 서비스를 애초에 테스트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 이후 전송 효율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필요한 채널 수가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방통위 계획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들이 쓰는 채널은 68개에서 38개로 확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시청자들이 수신하는 지상파 방송 채널은 KBS 1TV와 2TV, MBC와 SBS, EBS 등 5개 밖에 안 되지만 이렇게 많은 채널이 필요한 건 인접한 송신소나 중계소 사이의 간섭을 막으려면 서로 다른 채널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MBC 디지털기술국 송신부 부장은 "압축 효율이 좋아지면 해상도를 높이거나 한 채널을 쪼개서 HD와 SD 방송을 동시에 내보내는 MMS(멀티 채널 서비스)도 가능하게 되지만 필요 채널 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오히려 난시청 지역을 줄이고 지상파 직접 수신 가구를 늘리려면 충분한 채널을 확보해 중계소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방통위 계획보다 최소 10개 이상 채널을 추가 배정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거짓말 2 : 외국도 다들 주파수 내다 판다?

방통위는 외국에서는 700MHz 대역을 통신회사들에게 매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다, 특히 미국도 디지털 방송에 비슷한 대역을 할당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애초에 사실 관계가 다르다. 미국은 2번부터 51번까지 50개 채널을 할당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14번부터 51번까지 38개 채널만 할당할 계획이다. 2번부터 6번까지는 할당 계획이 없고 7번부터 13번 채널까지는 지상파 DMB에 할당하기로 돼 있다.

문제는 비교적 평지가 많은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은 좁지만 산악 지형이 많고 그만큼 음영 지역도 많아 송신소나 중계소를 더 촘촘하게 세워야 한다는데 있다. 인접한 송신소나 중계소는 서로 다른 채널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땅이 넓은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은 채널이 필요하게 된다. 나라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어느 나라든 지상파 방송에 필요한 최소한의 주파수는 확보한 뒤 매각을 검토한다는 게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장이다.

영국의 경우 디지털 방송에 40개 채널을 배정하고 있는데 DVB-T라는 유럽식 전송 방식은 지상파 방송사가 인접 지역에서도 동일한 주파수를 사용하는 환경이라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ISDB-T 방식을 채택한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미국식으로 분류되는 ATSC 방식을 채택해 인접지역에서는 주파수를 제각각 따로 사용해야 한다. 유럽식 전송 방식과는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닌데다 미국식을 채택한 나라들과 비교해서도 가용 채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에 따르면 수도권의 경우 서울 지역의 남산과 관악산, 용마산 등 7개 송신소에 각각 5개 채널씩 배정하고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 흩어져 있는 31개 간이 중계소에 모두 20개 채널을 배정하는 등 최소 69개 채널을 확보해야 혼선 없는 방송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양창근 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은 “디지털로 전환하면 주파수가 덜 필요하게 된다는 주장은 기초적인 기술 지식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거짓말 3 : 요즘도 지상파 방송을 안테나로 보나?

방통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지상파 방송을 직접 수신하는 가구는 21.4% 밖에 안 된다. 유료 유선방송 서비스에 가입한 가구가 67.7%나 되고 유료 위성방송 서비스에 가입한 가구도 10.9%에 이른다. 과거 방송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유료 방송 가입자 가운데 53.5%가 지상파 방송을 직접 수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유료 방송을 선택했다고 답변한 바 있다. 직접 수신이 가능하다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료 방송을 해지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방통위는 디지털 방송 신호는 전송 효율이 높아서 실내 안테나만 달아도 지상파 방송을 직접 수신할 수 있게 된다고 광고하고 있다. 당장 아날로그 방송 중단이 내년 말로 예정돼 있기 때문에 상당수 가정에서 아날로그TV를 디지털TV로 바꾸거나 디지털 컨버터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난시청 지역을 줄이려는 정책적 지원이 없다면 디지털 전환 이후에도 지상파 방송을 직접 수신할 수 없는 가구가 상당할 거라는데 있다.

방통위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는 큰 원칙 아래 MMS 도입을 서두르는 것과도 상충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기존의 채널을 쪼개 새로운 채널을 만들고 콘텐츠를 늘려나간다는 계획인데 지상파 직접 수신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대부분 가정에서는 유료 방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전환과 맞물려 유료 방송 서비스의 가격이 크게 치솟는 추세인데 저소득 계층의 경우 상당한 부담이 된다.

유호진 방송기술인연합회 정책실장은 “난시청 해소 없는 디지털 전환은 의미가 없다”면서 “난시청 해소를 위해서는 충분한 주파수 대역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아날로그 방송 시절에는 난시청 지역을 어쩔 수 없이 방치해 온 측면이 있지만 국가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디지털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지상파 직접 수신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데 최소한의 인프라 확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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