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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벨트 대덕 선정 논란…영남도 "MB심판"
과학벨트 대덕 선정 논란…영남도 "MB심판"
[아침신문 솎아보기] 중앙 "박정희 애국적 독재자, 민주주의 시대적 과제아니었다"

과학벨트의 대덕단지 선정으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영남권에서조차 “이명박에 또 속았다” “MB정권 심판하자” “이명박을 고소한다” 등 원색적인 이명박 정부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게 터져나왔다. 가히 전국적인 MB 정부 레임덕, 정권말기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침신문들에선 공약이행이라는 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정부 정책의 일관성 부재가 이 같은 사태를 낳았다는 분석(한겨레 등)이 나왔다.

16일은 5․16 군사쿠데타 반세기가 되는 날이다. 이를 맞아 많은 신문들이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는 기사와 논평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박정희 칭송이었다. 현직 중견 언론인인 한 신문사 논설위원이 박정희 부하를 취재했던 경험담을 끄집어내어 “박정희의 독재는 개발독재, 애국독재이며 민주주의는 1960~70년대의 과제가 아니었다”며 박정희를 공동체적 지도자라고 추앙했다(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반면, 이 같은 박정희 향수병, 박정희 유행병에다 차기 대선 후보자로 박정희의 딸이 거론되고 있는 현실을 “역사적 배반에 직면해있다”고 개탄한 목소리(경향 사설)도 있었다.

다음은 16일자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국책사업 갈등, 불지르는 정부>
-국민일보 <무조건 “우리지역에…” 외치며 툭하면 삭발․단식/지자체․정치권 ‘떼법’ 도 넘었다>
-동아일보 <흔들리는 민심, 현장을 가다 ‘반란의 분당’ 10인의 한숨/“나라 경제 좋아졌다는데 삶은 더 팍팍”>
-서울신문 <군림하는 예비역장성 국방개혁 가로막는다>
-세계일보 <국산훈련기 T-50 al 공군 납품 추진>
-조선일보 <이북5도청 ‘북 행정 대체’ 한미훈련 참가>
-중앙일보 <‘평준화의 역설’ 일반고 갈수록 추락>
-한겨레 <2002년 보수〉중도〉진보 2011년 중도〉진보〉보수>
-한국일보 <이번엔 과학벨트 대전 선정설에 “승복 못해”/대한민국의 오늘 찢기고 들끓는중>

과학벨트 대덕행·LH 이전에 전국 ‘MB 심판’ 정권퇴진 요구까지

전국이 ‘국책사업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대전 대덕에 유치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탈락 지역들이 반발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 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앞서 결정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의 진주 이전, 신공항 백지화의 여진도 ‘불복종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에서 “정부의 잇단 말바꾸기가 불신을 자초하고, 조정·설득력 부재로 리더십이 실종되면서 정글식 ‘먹고 뺏기’ 경쟁의 후유증만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16일 발표될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선정 내용이 사전에 알려지면서 유치경쟁을 벌였던 영남과 호남, 분산배치를 우려하는 충청이 모두 반발하고 있다. 영남권은 새공항 백지화에 이어 과학벨트 거점지구로 대전 대덕특구가 확정됐다는 소식에 거센 저항에 나서고 있다. 15일 오후 2시 경북도청에서 열린 궐기대회에서는 “정치벨트 음모! 총선 때 두고 보자”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뒤통수로 보답하냐?” 등의 정부를 향한 실망과 분노를 담은 펼침막이 곳곳에 나붙었다고 한겨레가 전했다.

특히 영남권에서는 과학벨트 입지 결정을 지난 3월 동남권 새공항 백지화 결정과 연결지어 더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14일 경북 구미시 동락공원에서 개최한 규탄대회에서는 “희대 사기꾼 이명박을 고소한다” “이명박에게 또 속았다! 박근혜로 당장 바꾸자!”는 등 정권퇴진 요구까지 나왔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대구·경북·울산의 과학벨트 거점지구 선정을 요구하며 사흘째 단식을 이어갔다.

호남권에서도 특정지역을 염두에 두고 짜맞추기식 심사를 했다는 불만이 강하다. 과학벨트 호남권 유치위는 15일 “이번 입지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과학벨트, 대전 거점-대구 광주 ‘연합 캠퍼스’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의 거점지구를 대전으로 하되 대구, 광주에도 연구기능을 나눠 서로 유기적인 네트워킹이 가능하도록 하는 ‘연합캠퍼스’를 만드는 방안이 마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동아는 1면 기사에서 “거점지구와 연계해 응용연구 개발연구 사업화 등을 수행할 기능지구는 대전 인근에 위치한 청원(오송․오창), 연기(세종시), 천안 등 세 지역으로 결정됐다”며 “15일 과학벨트 핵심 관계자와 정부에 따르면, KAIST(대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3개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은 기초과학연구원의 ‘연합캠퍼스’로 지정돼 과학벨트의 기초과학 연구기능을 나눠갖는다”고 보도했다.

연구단(사이트랩)대전에 25개(본원 15개, KAIST 0개), GIST에 5개가 각각 배치되며, DGIST는 포스텍(포항) 울산과학기술대(울산) 등과 연계해 연구단을 운영한다고 동아는 전했다.

일관성없는 정부정책, 공약따로 결정따로

정부의 과학벨트 대덕단지 선정에 대해 “어떤 정책보다도 정부의 확고한 원칙과 일관성,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이 요구되지만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보인 모습을 보면 정반대”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는 “무원칙, 오락가락, 책임 떠넘기기 등의 행태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특히 과학벨트를 둘러싼 지역갈등이 사생결단의 양상으로까지 치닫게 된 것도 사실 정부가 자초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한겨레는 “과학벨트 건설은 애초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었던 만큼 정부가 처음부터 충실한 공약이행을 다짐했으면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또한 “정부가 국책사업에 ‘정치논리 배제’를 강조하면서도 실제 보여준 모습은 이율배반적”이라며 “과학벨트위원회 회의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여권 고위관계자 등이 대전 확정설을 흘리고 다닌 것이 단적인 예다. 과학벨트 입지는 오직 과학기술 논리에 따라 과학벨트위원회가 결정할 것이라는 그동안의 주장이 무색하기만 하다"고 개탄했다.

“박정희 독재는 개발․애국독재” 칭송한 한 논설위원

오늘은 5·16 쿠데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맞아 일부 신문 기자(논설위원)가 신문에 박정희 칭송을 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었다.

그는 중앙일보 16일자 <나를 바꾼 박정희>에서 자신이 지난 1990년 박정희 통치비사를 취재했을 때 만난 박정희 부하들의 증언담을 회고하면서 박정희의 ‘탁월한 지도자론’을 역설했다.

그가 취재한 박정희 부하들은 한결같이 박정희의 애국심과 인격을 증언했으며 이 같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증언’은 기자인 자신에게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에 반해 김 논설위원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도 취재했다면서 “그중 어떤 대통령도 박정희처럼 부하들로부터 일치되고 단결된 칭송을 듣지 못했다. 이들의 부하들은 주군의 공적과 함께 잘못과 결점을 빠뜨리지 않았다. 주군들이 살아있음에도 그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만 봐도 후임자들은 박정희보다 훨씬 불완전한 지도자였다”고 논리를 이어갔다. 부하가 비판하면 불완전한 지도자다? 이것이 과연 타당한 논리인가. 수십년 기자생활을 한 논설위원이 제시하는 논리치고는 빈약하고 임의적이기 짝이없다. 이런 부실한 논리로 특정인을 미화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면서 김진 위원은 더욱 박정희와 후임 지도를 차별화한다.

“그래서 나는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가 아니었어도 가능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특히 ‘양 김씨는 민주주의도 함께 해냈을 것’이란 말은 더욱 믿지 못한다. 이런 얘기야말로 소설이다.”

김 위원은 박정희에 대해 “내가 발견한 박정희는 대표적인 ‘공동체적 인간’이었다”고 평가했다.

“대다수 사람은 그저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추동(推動)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지도자는 개인의 욕구보다는 공동체의 개선을 추구한다. 인류문명의 진보와 공동체 발전에 개인의 궤적을 합일(合一)시키는 공동체적 인간…. 그런 인간 유형의 대표적인 사람이 박정희였다. 그런 박정희가 나의 세계관을 바꾸어 놓았다”.

이쯤되면 자의든 타의든 1970~1980년대 독재정권에 아첨하고 아부했던 ‘부역 언론인’들의 글이 떠오르면서 순간 헛갈리게 만든다.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인가 하고 말이다.

김 위원은 이어 더욱 과감한 해석을 한다. 1960~1970년대 한국은 안보와 가난 극복, 경제발전이 과제였지 민주주의는 과제가 아니었다는 해석이다. 그는 “아니 오히려 박정희 개발독재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시초였다”며 “민주주의라는 건 경제개발로 중산층이 형성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북한의 적화(赤化) 위협 속에서 경제개발을 하기 위해선 국력의 비상한 결집이 필요했다”며 “그래서 개발독재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청렴했으며 그의 독재는 공동체를 위한 개발독재였고 나라를 지킨 애국독재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글은 아무리 뜯어봐도 언론인의 객관적인 박정희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언론이라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독재론은 ‘언론’과도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를 미화하는 언론은 언론으로서 제 구실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박정희, 아니 차기 유력 대선후보자로 꼽히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구애하는 자기고백의 글이라고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5·16 쿠데타가 번영가져다 줬다는 유행병…역사적 배반에 직면

이 같은 극단적인 박정희 칭송과 독재에 대한 향수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대한민국 군사독재의 역사를 두고 “군사반란을 주도한 박정희 소장이 총칼로 잡은 권력은 여자 두 명의 술시중을 받는 궁정동 술파티에서 부하의 권총에 맞아 죽을 때까지 18년이나 계속됐다”며 “아니, 그의 죽음에도 전두환 장군의 12·12 쿠데타, 노태우 장군의 정권 연장을 고려하면 군사정권 시기는 32년간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군사정권의 암흑기를 맞”았고, 이것이 바로 5·16 쿠데타가 50년이 지난 사건이라고 해서 회고담으로 끝낼 수 없는 이유라고 경향은 정리했다.

그럼에도 경향은 “5·16 쿠데타가 한국인의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고 하는 이상한 논리가 유행병처럼 돌고 있다”며 “한국의 새 출발을 망쳐버린 이승만 정권, 거대한 폭력 그 자체였던 박정희 독재를 이 시대의 우상으로 떠받드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박정희 이후’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경향은 “정경유착이 일상이었던 박정희 시대에 건설회사를 키운 사장이 대통령이 되어 4대강 토목사업에 정권의 운명을 걸고 있는 것은 분명 ‘박정희 이후 시대’의 한 증거”라며 “쿠데타 주역의 딸이 아버지 시대의 반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계승자를 자처하면서도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우리는 역사적 배반에 직면해 있다고 경향은 개탄했다.

또한 개혁·진보 세력에 대한 질책도 곁들였다. 경향은 “박정희 비판을 넘어 대안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박정희 유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시대착오적인 박정희 향수에 젖은 이들을 깨우고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실현 가능한 대안을 통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앞으로는 박정희를 무덤에서 불러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이념성향 중도와 진보가 보수보다 많아졌다

2002년은 보수〉중도〉진보, 2011년은 중도〉진보〉보수. 9년 사이에 우리 국민의 이념성향 분포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겨레가 창간기념호 여론조사에서 밝혔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에서 “보수층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진보층 비율은 2006년 최저점을 찍은 뒤 보수층을 앞질렀다”며 “또 최근 4년 사이 사회적 약자에 대해선 진보성향이, 대북 지원에 대해선 보수성향이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창간 23돌을 맞아 지난 7~8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와 함께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이념성향 조사에서 이런 흐름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조사에서 자신을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43.9%로, ‘진보’(30.7%)나 ‘보수(25.3%)라는 사람보다 많았다. 이런 ’주관적 중도층‘은 2006년 국민의 절반 가까운 수준(47.4%)으로 크게 늘어난 이후 2007년(35.5%) 감소새로 돌아섰지만 올해 다시 40%대를 회복한 것.

이에 반해 2002년 10명 가운데 4명꼴(43.9%)이던 ‘주관적 보수층’은 해마다 감소해 올해(25.3%)는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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