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트루맛쇼를 보았다. 트루맛쇼의 관객들은 웃었다. 방송에서 맛있다고 말하는 것이 조작된 것이라는 증거를 대고 나서 조작을 위해 애쓰는 이들을 화면에 그대로 보여주니 웃기지 않을 수 없다. 그 웃음은 “속았다” 하는 허탈함에서 비롯하였을 것이나 “나는 보통의 시청자들처럼 저런 방송에는 속지 않아” 하는 자만도 묻어 있었다.
트루맛쇼는 “당신들의 미각을 속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당신들의 미각이 엉터리여서 속고 있는 것이다”고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트루맛쇼를 보고 나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쉽게 속을 수 있는 엉터리 입맛을 지니고 ‘당당히’ 살아갈 것이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미각이 표준적이며 나아가 일정 수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맛집’이라는 식당에서 수많은 음식을 먹어왔으므로 어떤 음식을 두고 맛있다고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다. 그 정도가 심하여 자신이 마치 절대미각의 소유자인 듯이 나서기도 한다. 이런 자만은 인간이 하루에도 수차례 이런저런 음식을 먹어 자신의 미각은 잘 훈련되어 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음식을 먹는 일은 후각과 미각이 주로 작용을 한다. 이 두 감각도 훈련에 따라 그 느낌의 수준이 달라진다. 소믈리에니 하는 직업인들이 이런 영역에서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고 일정한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다.(요리사는 영역이 조금 다르다. 이 글은 감각의 창조가 아니라 감각의 수용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후각과 미각의 영역에 대해서 별다른 훈련을 받지 않고도 적당한 경험만 있으면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며 또 자신들이 그 어떤 경지에 있는 줄 착각을 한다. 그 착각을 이용해먹는 이들이 트루맛쇼에 나오는 여러 조작자들이다. 맛을 모르니까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것이다. 또 그 조작자는 텔레비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인쇄매체와 인터넷에서도 이런 조작자들은 횡행한다.
맛을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은 단순하다. 음식 앞에 어떤 권위만 세우면 된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 등 고전적 매체들은 그 매체 자체로 이미 권위를 가지고 있다. “신문에 났다”, “텔레비전에 나왔다” 하면 그냥 맛있는 음식을 내는 식당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좀더 강력한 권위를 입히기 위해 연예인, 대학교수, 문필가, 정치인, 경제인, 요리사 등이 동원된다. 그들이 먹는 것은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어디 식당에서 무엇을 먹었다 하면 득달같이 달려간다. 최근 나온 음식 관련 책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대통령의 맛집>이라고 한다. 그 수많은 ‘명망가’ 중에 대통령이 으뜸일 것이니 다들 그 대통령이 다녀간 식당 앞에 줄을 서는 것이다. 그 대통령이 범죄자라 하여도 그가 먹은 음식을 먹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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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맛칼럼니스트·‘미각의 제국’ 저자 | ||
그러면, 미각은 어찌 훈련하여야 하는가는 과제가 남는데, 집에서 좋은 음식 재료 사다 정직하게 음식을 해먹다 보면 그 미각은 저절로 열린다. 집밥만 늘 먹어오던 어른들은 아무리 유명하다는 식당에 데려가도 그 음식의 허접한 구석을 알아차린다. 식당의 음식은 절대 집밥보다 맛있을 수 없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요리사가 동의할 것이다. 트루맛쇼에 나온 맛집 프로를 넘어 맛집 그 자체가 허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