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주요 방송사 맛집·생활 정보 프로그램을 일제히 장식한 화제의 음식이 있었다. 이름하여 ‘캐비아삼겹살’. 온 국민이 사랑하는 메뉴인 삼겹살과 세계 최고의 진미로 꼽히는 철갑상어 알의 만남은, 이름 그 자체만으로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하지만 모든 게 가짜였다. 지난 5월 6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의 문제작인 <트루맛쇼>에 따르면, 음식도, 삼겹살 위에 얹어진 캐비아도, 이 음식을 만든 요리사(?)도, “맛있다”고 환호를 내지르는 손님도, 그리고 음식을 TV에 소개한 제작자도 모두 가짜였다.

영화에는 자칭 ‘메뉴개발자’이자 음식점 방송출연 브로커인 임모씨가 나와, 캐비아삼겹살의 탄생 배경부터 촬영 과정까지 모든 걸 낱낱이 털어놓는 장면이 담겨 있다. 방송에 나가려면 자신과 같은 브로커나 홍보대행사에 수백~수천만원의 돈을 내야 할 뿐만 아니라, 맛이 있든 없든 오직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특이한 메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씨는 삼겹살에 인삼을 얹은 ‘심봤다삼겹살’, 아구찜과 초밥을 결합한 ‘아초’ 등도 자신이 개발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물론 모두 TV 맛집 프로에 소개된 음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희귀한 음식이기도 하다. 한 방송사는 ‘캐비아삼겹살’에 “한식 세계화 가능성 확인”이라는 자막까지 붙였다.

모든 게 가짜인 공간에서 30여년을 산 한 남자(짐 캐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트루먼쇼>를 기억할 것이다. 이 제목을 패러디한 김재환 감독(42)의 다큐멘터리 트루맛쇼는 <트루먼쇼>의 한국판 리얼리티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캐비아삼겹살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MBC·KBS·SBS 맛집·생활 정보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모든 것이 대부분 ‘가짜’라고 주장한다.

이들 프로의 전형적인 형식인 연예인들의 맛집 소개도 마찬가지다. 영화에는 지난 4월 방영된 MBC <찾아라 맛있는 TV> ‘스타 맛집’에 출연한 세 연예인이 나오는데, 이들은 처음 가본 식당에서 처음 먹는 음식을 앞에 두고 ‘단골이다’, ‘맛있다’를 연발한다. 이렇게 저렇게 말하라는, 작가들의 주문도 이어진다.

MBC PD 출신인 김 감독은 ‘의도적으로’ 최근 촬영한 이 장면을 넣었다고 말했다. 주요 방송사 PD들이 “다 과거의 일이고, 우리와 무관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식당도 직접 섭외해, 1000만원이 넘는 돈까지 홍보대행사에 대신 내줬다. 식당이 위치한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은 김 감독의 소속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트루맛쇼의 ‘폭로’가 강렬한 것은 바로 이렇게 ‘몰래카메라’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심지어 경기도 일산에 직접 식당을 차렸다. ‘오로지 몰래카메라에 친화적인 인테리어’로 꾸민 이 식당에서 홍보대행사도 만나고 브로커도 접촉하고 신메뉴도 개발하고 급기야는 방송 출연까지 했다.

지난 1월 SBS <생방송 투데이>에 방영된,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매워서 죽든지말든지 돈가스’가 바로 이 식당에서 내놓은 회심의 메뉴(?)이다. 2년 전 문을 연 이 식당은 촬영 후 곧 문을 닫았다. 어차피 ‘가짜’들을 촬영하기 위한 ‘가짜 음식’, ‘가짜 공간’이었으니까.

영화의 마지막,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에게 ‘트루맛쇼’를 강요하는 빅브라더는 누구인가?” 영화는 외주 제작사에 실제작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지급하는 거대 방송사에 주요한 책임을 돌리지만, 맛과 정성에 신경쓰기보다 오직 손님의 눈길만 끌려는 식당들, 무조건 싸고 푸짐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것만 찾는 소비자들도 예외일 수 없다.

영화가 말하는 대로 “TV에서 맛집은 맛이 갔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TV에서 나오는 맛집들이 왜 맛없는지 알게 되었다”. 이래도 TV 맛집을 믿을 것인가? 우리가 믿지 않는 순간, 많은 게 변화할 수 있다. 방송제작 환경도, 식당 음식의 질도, 그리고 우리 미각의 수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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