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 사고로 인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방사능 피폭자 판정을 받은 박성주 KBS 촬영감독이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방사능 피해 기준과 안전론에 대해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안전론은 모두 거짓말임을 내 몸이 증명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감독은 일본 정부가 당시 사고지역으로부터 10km 이내 대피령 등 일본 정부의 기준을 충실히 지켰음에도 피폭된 것을 들어 이같이 지적했다. 박 감독은 지난 3월 12일부터 3박4일간 일본 후쿠시마공항과 센다이 등 후쿠시마 원전 사고지역으로부터 최소 40km 이상 떨어진 곳에 체류했었다.

박 감독은 4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로부터 통보받은 진단 결과 추정 피폭선량이 0.148Gy(그레이-오차범위 0.027~0.322) 정도였고, 세포 1000개 가운데 7개의 염색체가 손상됐다고 전했다. 그는 염색체 가운데 일부가 깨지거나 뒤바뀐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1Gy(그레이)는 통상(베타선, 감마선, 엑스선) 1시버트와 동일한 양으로 환산된다. 다시말해 0.148그레이는 0.148시버트이며, 또한 148밀리시버트에 해당한다. 이는 성인의 연간 방사능피폭선량 한도인 1밀리시버트의 148배에 달하는 것이다.

하미나 단국대 의과대학 교수(예방의학과)는 6일 “평생 쏘이는 방사선량(240밀리시버트=인공, 자연방사선량의 합계)의 절반을 넘는 양을 한꺼번에 쏘인 셈”이라며 “앞으로 방사선을 쐬면 안된다”고 진단했다.

   
박성주 KBS 카메라감독.
이치열 기자 truth710@
 
박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소식을 들은 뒤) 멍했다. 집사람에게 어떻게 알릴지 난감했고, 너무나 황당했다”며 “집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피폭 경위와 관련해 당시 KBS <추적 60분> 취재팀이 지난 3월 12일 낮 12시에 후쿠시마공항에 도착했으나 약속된 도쿄에서 오기로 한 차량이 오지 않아 이 곳에서만 7시간 여를 지체한 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그럼에도 당시엔 안전할 것으로 봤다. 그는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는 당시 10km 이내 있는 사람들에게만 대피령을 내렸고, 우리가 있던 곳은 사고지역부터 40km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일본 정부 말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방사능 피해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못한 점도 지적했다. 그는 “(우리 취재진이) 위험지역 취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잘 알고 있지 못했으며 방사능 누출 문제에 대해선 더욱 대비를 못했다”며 “우리가 일본에 도착한 이후에 온 2차(‘KBS스페셜’-도쿄), 3차(‘세계는지금’-센다이) 취재팀의 경우도 아무런 준비 없이 왔다. 이들 모두 개인선량계 조차 없었고, 갖고 있는 것은 마스크 뿐이었다”고 전했다.

   
박성주 KBS 카메라감독.
이치열 기자 truth710@
 
우리 정부의 방사능 계측과 대비의 허점도 지적했다. 박 감독은 “3박4일째인 3월 15일 귀국할 때까지만 해도 공항에 검사대가 설치되기 전이어서 아무 검사도 받지 않고 그냥 귀가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그달 21일 검사를 받았던 진료센터 관계자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진료센터에서도 문제 없으니 아무 걱정말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잡아가서 실제 유전자 정밀검사까지 받은 사람은 48명 뿐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검사받으러 왔던 사람들 중에는 취재진 말고도 구급대원, 정부 관계자들도 다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진료센터 관계자들의 말을 듣고 그냥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언론사 취재진이나 교민, 시민 등 귀국한 이들도 마저 검사를 받게 되면 훨씬 더 많은 피폭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첫 피폭자라는 보도가 나간 뒤 박 감독에게는 현지에 파견돼 취재했던 많은 이들로부터 취재경로가 어땠는지를 묻는 전화문의가 꽤 있었다고 한다. 

박 감독 자신이 정밀 검사를 받게 된 이유에 대해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에서 이아무개 의사가 ‘검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엄청나게’ 강조하면서 심지어 ‘자동차가 바다를 건널 확률 보다 적다’고 까지 표현하더라. 또한 홍보담당관이라는 사람은 ‘정밀검사비가 100만 원 가량이 더 드는데 그래도 검사하겠다는 사람은 남으라’고 했다”며 “피폭됐을 가능성을 묻자 ‘0%’라는 답을 하길래 ‘어떻게 과학자가 0%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따졌고, 현장에 온 ‘추적 60분’과 ‘KBS스페셜’팀은 모두 정밀검사까지 받았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피폭에 대해 박 감독은 “일본 정부가 내놓은 기준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일 정부가 모르고 한 거짓말이거나 알고 한 거짓말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거기에 한국 정부는 일 정부의 말만 듣고 부화뇌동하면서 ‘안전’하다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안전론은 모두 거짓임을 내몸이 증명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감독은 이어 “일본이 정해놓은 대피지역 기준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며 “그렇다면, 안전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는 ‘방사능’의 양적 기준(연간방사선피폭량 기준치)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른 것들 역시 신뢰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학계, 언론계에 대해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알고 있다면 사실대로 말했으면 좋겠다”며 “지금의 정부와 전문가들 모두 모르면 안전하다 하고, 알면 조금 인정하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미디어오늘은 국내 첫 일 방사능 피폭자로 나타난 KBS 카메라감독과 지난 4일 오후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그의 실명과 사진을 낼 수 있는지 의사를 물었습니다. 박 감독은 취재진에 대한 안전문제의 환기라는 직업적 필요성과, 일본 정부나 우리 정부가 강조해온 안전기준의 허구성을 저널리스트로서 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공감하며 실명과 사진 공개를 허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게 됐습니다.

다음은 박성주 KBS 영상제작국 촬영감독과 가진 지난 4일 인터뷰 요지이다. 

-병원의 통보내용은 뭐였나
“지난 3일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에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직접 찾아갔다. 오후 2시쯤 도착했는데, 의료진은 피폭으로 판정할 수밖에 없는 수치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매우 미량이라고 했다. 검사 결과를 보면 추정 피폭선량이 0.148Gy(0.027~0.322) 정도였다. 내 몸의 세포 1000개를 관찰해 7개의 염색체가 손상됐다는 내용이다. 의료진은 ‘되도록 피폭이 아니’라고 판정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통보내용을 접했을 때 어땠나.
“멍했다. 집사람에게 어떻게 알릴지 난감했고, 너무나 황당했다. 집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

-어디서 취재하다 그렇게 됐나. 현장취재 경위와 배경은.
“지난 3월 12일 낮 12시에 후쿠시마공항에 도착했다. 문제는 도쿄에서 오기로 한 차량이 오지 않아 이 곳에서만 7시간 정도 머물렀던 데 있었다. 오후 2시께 1호기가 폭발했다는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확인했다. ‘쿠궁’ 하는 소리가 들렸고, 15분 뒤 트위터에 그 소식이 올라왔다. 그 이후 엠블런스가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원전 쪽도 취재하려 했었나.
“취재 아이템 가운데 ‘원전 안전한가’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원전 폭발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 아이템은 포기했다. 회사(KBS)에서는 철수 명령을 내리는 대신 센다이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취재진 가운데 1팀은 고리야마 쪽의 모습을 담으려 택시를 타고 갔고, 다른 한 팀은 오기로 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차량이 왔다.”

-당시 거리상 안전하다고 판단할 만했나.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는 당시 10km 이내 있는 사람들에게만 대피령을 내렸고, 우리가 있던 곳은 사고지역부터 40km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일본 정부 말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폭발순간을 보며 어땠나.
“아무 준비도 없이 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얘기를 했다. 다른 방송사 취재팀과도 서로 문의를 하기도 했다.”

-다른 언론사 취재진도 있었나.
“MBC 취재진의 경우 ‘철수할지, 계속 갈지’를 문의해보니 ‘대피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MBC 취재팀은 ‘철수한다’고 했지만 그날 저녁 고리야마에서 우리 KBS팀과 다시 만났다. 갈 곳이 거기 뿐이었던 것이다.”

-일본 도착 당일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 폭발과 같은 사고를 예상했었나.
“원전사고는 우리 뿐 아니라 데스크를 비롯해 전문가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원전 외벽이 무너지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원전 사고는 한국 취재진이 급파됐던 12일 새벽 후쿠시마원전의 긴급노심냉각장치(ECCS)가 전력 공급 중단 등으로 작동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심각한 사태가 예고됐던 때였다. 당시  대다수 한국 언론들은 후쿠시마원전이 가동을 멈춘 사실은 알았지만,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사능 유출과 피폭의 위험에 대해 취재당시 예상했었나.
“위험지역 취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숙지되지 않고 갔다. 방사능 누출 문제에 대해선 더욱 대비를 못했다. 우리가 일본에 도착한 이후에 온 2차(‘KBS스페셜’-도쿄), 3차(‘세계는지금’-센다이) 취재팀의 경우 역시 아무런 준비 없이 왔다. 이들 모두 개인선량계 조차 없었다. 갖고 있는 것은 마스크 뿐이었다.”

-현지에서 위험성을 느꼈나
“다른 방송사의 한 PD가 산업의학 쪽 전공하는 의사와 통화하면서 ‘세슘 검출’ 언급을 했더니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귀국하라’는 조언을 얻었다고 했다.”

-귀국은 어떻게 했나.
“당시 일본 곳곳엔 기름을 팔지 않았다. 기름을 얻으려면 3~4시간 줄을 섰어야 했다. 미리 채워놓은 기름으로 취재를 했다. 이 때문에 귀국하러 공항에 갈 기름이 없었다. 3박4일째 되던 15일 새벽 1시쯤 ‘특파원 현장보고’ 취재팀이 이가타에서 기름(20리터짜리 20통)을 사와 극적으로 센다이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가타에 가서야 기름을 구할 수 있었다. 거기서 공항까지는 고속도로로 갔는데, 지진 때문에 통행이 금지됐지만 영사관의 도움으로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3얼 15일 오전 9시 비행기로 귀국했다.”

-귀국시 검사는 어떻게 받았나.
“이날 귀국할 때까지만 해도 공항에 검사대가 설치되기 전이어서 아무 검사도 받지 못했다. 그냥 귀가했다. 그러나 새노조에서 일본 현지 취재진의 위험성을 문제 제기하자 KBS 경영진은 17일께 일본 출장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필히 검사를 받으러 가라’고 했다. 원전 취재시 방사능 피폭 여부를 검사받으라고 한 것은 KBS 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KBS 취재팀은 그달 21일 원자력병원에 설치된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로 가서 대부분 검사를 받았다.”

-모든 취재진이 의무적으로 받은 것인가.
“보도본부 쪽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료센터에서 문제없으니 아무 걱정말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잡아서 실제 유전자 정밀검사까지 받은 사람은 48명 뿐이었다. 당시 검사 대상자들로는 취재진 말고도, 구급대원이나 정부 관계자들도 다수 있었다. 일본 현지에 있었던 다른 언론사 취재진이나 교민, 시민들도 마저 검사를 받게 되면 훨씬 더 많은 피폭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박 감독은 어떻게 정밀검사를 받게 됐나.
“많은 분들이 정밀검사를 안하고 그냥 돌아갔다.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에서 이아무개 의사가 ‘검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엄청나게’ 강조했다. 심지어 그는 ‘자동차가 바다를 건널 확률 보다 적다’고까지 표현했다. 홍보담당관이라는 사람은 ‘정밀검사비가 100만 원 가량이 더 드는데 그래도 검사하겠다는 사람은 남으라’고 했다. 한다. 이 때문에 정밀검사하겠다는 사람이 대폭 줄었고, 아예 피도 뽑지 않은채 돌아온 기자들도 있었다. 나의 경우 오기로 받은 측면도 있다. 나는 우리 부서(영상제작국)에 10년 전 체코 원전 취재한 이후 두 명이 각각 2년 전과 올초에 갑상선 암이 나왔다는 사실을 들어 그 의사(이아무개)에게 ‘우리도 피폭됐을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0%’라고 답하더라.  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0%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따졌고, 현장에 온 ‘추적 60분’과 ‘KBS스페셜’팀은 모두 정밀검사까지 받았다.”

-현장에 있던 구급대원도 피폭자가 나오지 않았는데, 박 감독이 피폭된 이유는 뭐라 보나.
“그들은 사고지로부터 훨씬 먼 곳에서 작업을 했을 뿐 아니라 30명에 한 명씩 선량계를 달고 있었고, 전문가도 동행했다. 우리보다 대처가 용이했을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가 밝힌 안전기준을 지켰음에도 이렇게 피폭됐는데 어떻게 보는가.
“일본 정부가 내놓은 기준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 정부가 모르고 한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알고 한 거짓말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거기에 한국 정부는 일 정부의 말만 듣고 부화뇌동하면서 ‘안전’하다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안전론은 모두 거짓임을 내몸이 증명하고 있다. 40km나 떨어진 지점에 있었음에도 피폭됐다. 우리 정부는 방사능 피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이들을 유언비어로 몰았다.”

-일본과 한국 정부의 주장이 이제 신뢰를 잃은 것인가.
“일본이 정해놓은 거리에 대한 기준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안전한 ‘방사능’의 양적 기준(연간방사선피폭량 기준치)은 믿을 수 있는가. 믿을 수 없고, 다른 것들도 신뢰할 수 없게 됐다.”

-정부와 학계, 언론계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알고 있다면 사실대로 말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정부와 전문가들은 모르기 때문에  안전하다 하고, 알면 조금 인정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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