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9일은 검찰에 의미 깊은 날이다. 그 날 젊은 검사들은 취임한 지 한 달도 안된 노무현 대통령을 상대로 ‘검찰의 포스’를 만천하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고 말했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는 검사들에게 밀렸다. ‘노짱’으로 불리던 그조차도 ‘무소불위 계급조직’에서 단련된 검사들을 상대하기 버거웠던 것일까?

그런데 그로부터 7년이 흐른 2010년 4월, 현직 대통령에게 그토록 당당했던 검찰의 추악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거기에는 ‘술’과 ‘돈’과 ‘성’이 아주 뜨겁게 엉켜 있었다. 검찰조직을 뿌리째 뒤흔들었던 ‘검사 스폰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검사 스폰서’ 사건의 중심 인물은 건설업자 정용재씨였다. 정씨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매출 수백억 원대의 건설회사를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젊은 나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사업을 확장·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든든한 배경’이 그에게 필요했다. 그래서 정씨가 지역유지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지역권력’의 한 축으로 행세해온 ‘검사’들과 손잡았다. 물론 정씨가 검사 스폰서로 나선 데는 자신의 사업적 목적만 작동한 게 아니다. 정씨도 검사들이 필요했지만, 검사들도 ‘스폰서’로서 정씨를 간절히 원했다.

   
김준규 검찰총장. ©연합뉴스
 
기자는 2010년 3월부터 부산 현지를 오가며 정씨를 수 차례 인터뷰하는 등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취재해왔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19일 <나는 검사 60명에게 10억 원 접대해왔다>는 제목의 단독기사를 내보냈다. MBC 에서 같은 내용을 보도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이어 검사들의 적나라한 접대사실이 담겨 있는 정씨의 육성증언을 정리해 두 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정씨의 증언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당하게 대들던 검사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검사들은 ‘일상적이고 정기적으로’ 접대를 받았다. 술접대는 기본이고, 한 달에 2회 촌지가 건네졌다. 이렇게 매달 지검장은 200만 원, 평검사는 60만 원을 받았다. 검찰의 사무과장(30만 원), 계장(20만 원), 여직원(10만 원)도 빼지 않았다. 촌지는 경남 사천의 명물인 쥐치포에 넣어져 전달되기도 했다. 근무지를 다른 곳으로 옮길 때에는 전별금과는 별도로 순금 마고자 단추도 받았다. ‘내가 당신의 스폰서였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일종의 정표(情表)였다.

하지만 정씨가 검사들에게 건넨 것은 돈과 순금 마고자 단추, 쥐치포만이 아니었다. 상당수 검사들이 정씨에게 ‘불법행위’인 성접대까지 받았다. 진주의 한 요정에서 펼쳐진 ‘병풍 뒤 섹스놀이’는 고전 에로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다. 아주 민망했을 그 장면을 지켜보고 검사들이 박장대소했다는 정씨의 증언 앞에서 기자는 할 말을 잊었다. 또 한 검사는 한사코 거부하는 카페 여주인의 가슴을 만지고, 치마 속을 더듬는 등 끈질기게 성추행했다. 법의 집행자인 검사가 스스럼없이 불법행위에 가담한 꼴이다. 이러한 ‘추한 장면’들은 이들에게는 어떤 윤리의식도 없음을 잘 보여준다.

검사들은 진주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진주로 ‘원정접대’도 다녔다. 그때마다 경찰고속순찰대가 이들을 호위했다. 순찰대 차량에는 부산의 한 모델에이전시에 소속된 모델들도 타고 있었다. 모델들까지 불러 접대 받은 셈이다. 정씨는 “검사들이 술집여성보다 모델들을 더 선호했다”며 “한 검사는 부산의 한 여대생을 애인으로 두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특히 지리산 등반에 나섰다가 검사들의 서울행 비행기 시각에 맞추기 위해 경찰헬기까지 띄웠다. 공권력이 ‘검사’와 ‘검사 스폰서’ 앞에서 자신의 본분을 망각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검사 스폰서’ 사건은 검찰진상규명위와 스폰서 특검을 거치면서 완벽하게 축소·은폐됐다.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정씨를 취재해왔던 기자와 정희상 <시사인> 기자는 정씨의 증언을 책으로 남겨야겠다는 데 의기투합했다. 우리는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틈틈이 부산으로 내려가 형집행정지중이던 정씨를 심층인터뷰 했다.

   
 
 
정씨로부터 접대 받은 검사들을 실명으로 공개한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책보세)은 지난 4월 초 출간됐다. 1년 전에는 몇 명의 고위직 검사들만 공개됐지만 이 책에서는 그 당시 익명으로 숨어있던 검사들(60명 이상)을 모두 실명으로 공개했다. ‘검사 실명 공개’에는 몇 가지 의도가 숨어 있었다. 하나는 검찰진상규명위와 스폰서 특검의 부실 수사를 향한 ‘고발장’이다. 이와 함께 취재해놓고도 ‘충분하게’ 보도하지 못한 한국 언론의 현실도 성찰하고 싶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해 5월 사법연수원 특강에서 “검찰만큼 깨끗한 데를 어디서 찾겠습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김 총장이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을 다 읽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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