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과 일부 언론은 국내 원자력 발전 홍보에 연간 100억원이 쓰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정부-산업계-학계-언론계가 끈끈한 카르텔, 이른바 ‘원자력 마피아’를 이루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들은 환경시민단체 등 각계의 우려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생생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원자력은 안전하며 방사능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견해를 퍼뜨린다.

윌리엄 디난 교수(스코틀랜드 스트래스클라이드 대학) 등 유럽의 사회학자·언론인·운동가 16명이 공동 저술한 <스핀닥터>는 이러한 ‘정보 조작’(스핀)의 다양한 사례와 구체적인 과정, 심각성과 대응책 등을 ‘전 세계적 시야’에서 정리한 책이다. ‘스핀 닥터’는 정보 조작을 전문적으로 행하는 로비스트와 홍보전문가를 일컫는다.

사례를 살펴보면 최근 우리의 상황과 놀랍도록 똑같다. 지난 2004년 1월 권위있는 학술지 <사이언스>는 양식 연어에 들어 있는 독성 화학물질(PCB)이 권장 기준치를 초과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자 양식 연어업계는 언론인, 정책 결정자, 대중을 상대로 대대적인 홍보 활동에 나서기 시작한다.

애초 <사이언스>의 논문을 비중 있게 보도했던 언론은, 얼마 후 이전과 다른 논조를 보였다. “어류의 화학물질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식품 전문가, 연어는 안전하다고 밝혀”, “환경단체에서 연어 연구에 자금 지원”, “연어를 위협하는 보고서에 결함과 편향 있다” 등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유형의 기사 제목이 쏟아졌다.

홍보의 핵심에는 연어업계의 로비그룹인 SQS와 민간 홍보 회사인 ‘크롬 컨설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홍보 논리 개발, 우호적인 과학자 포섭·동원, 정치인·관료 대상 로비 등을 통해 연어에 대한 비판을 깎아내렸다. 발표된 지 1주일도 채 안돼, <사이언스> 논문은 뉴스에서 자취를 감춘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단체들의 캠페인 방식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 우선 이들은 투명성이 부족하며 자금원이나 개인적 이익과의 연관성 같은 진짜 배경을 숨기려 든다. 이를테면 기후 변화와 관련한 예측이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국제정책 네트워크’란 단체는 스스로 ‘초당파적’이라고 표방하지만, 실은 기후 변화 회의론자와 우익 친기업 활동자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이 단체는 거대 석유회사인 ‘엑손모빌’의 막대한 재정적 후원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스핀 닥터’들은 조작적 홍보기법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약점도 충분히 악용한다. ‘올해의 개혁가상’ 제정 같은 것, 겉으로는 독립적인 전문가로 보이나 실제로는 압력집단의 대표나 후원자인 사람들을 끊임없이 미디어에 출연시키는 것, 출처없이 뉴스를 제공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안목이 부족하고 프로그램 만들기에 급급한 미디어들은 이들의 자료를 ‘객관적인 것처럼’ 인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공영방송사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이 책은 “스핀 닥터들이 경제적·정치적 엘리트 집단과 연루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결국 강자의 이익과 약자의 이익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은 더욱 악화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또 “사회적 약자 운동, 소비자 운동, 환경운동 따위를 조직화하기도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저자들은 “속임수와 정보 조작을 폭로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재건하기 위한 투쟁의 핵심적인 부분”이며 “이 책은 어떤 면에서 조작에 저항하고 기업권력에 도전하라는 동원 명령으로 비칠 수도 있다”고 서슴없이 선언한다. 가장 우선적이고 구체적인 투쟁 방법은 폭로, 또 폭로다. 저자들은 이를 위해 로비 집단과 홍보 회사가 고객이나 의뢰인, 다루고 있는 분야, 로비 비용 등의 정보를 모두 공개하도록 하는 법적 규제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적인 문제도 중요하다. 기업과 정부의 임직원이 순환 근무하고, 기업 인사가 정부부처 운영위원회에 직접 참여하는 것 등 ‘기업의 특권적 접근권’도 빼앗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이 책 마지막 장에 “기업의 정보 조작과 정부의 선전을 조사하고 폭로하는 데 많든 적든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자원자를 기다리고 있다”며 13개 관련 웹사이트를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이트가 ‘소스워치(www.sourcewatch.org)’와 ‘스핀프로파일(www.spinprofiles.org)’이다.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스핀 닥터’들과의 한판 싸움에 자신있는 분들의 접속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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