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긴다던 엄기영(60)과 이봉수(54)는 지고, 지고 있다던 최문순(55)과 김태호(48)는 이겼다.

27일 강원도지사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최문순 후보는 29만3509표(51.08%)를 얻어 26만7538표(46.56%)에 그친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를 2만5971표(4.52%P)로 제치고 당선됐다.

경남 김해을에서는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가 야권단일후보인 이봉수 후보를 1773표차(4만4501표-4만2728표)로 누르고 당선됐다. 여론조사의 맹점과 후보간 정책을 논외로 할 때, 어떤 민심이 반영된 결과일까.

강원지역 언론계에서는 '언더독효과(Under-dog effect)' 전통을 말했다. 강원도의 '약자 동정론' 때문에 이긴다고 하는 이는 지고, 진다고 하는 이는 이긴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광재-이계진 매치의 재연인데, 너무 앞서가면 불리하다는 평가다.

여기에는 TV 토론에서 최 후보가 엄 후보를 월등히 앞선 점, 그리고 엄 후보 쪽의 '불법 콜센터' 선거운동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최 후보는 여러 차례 열린 TV 토론회에서 엄 후보에게 밀린 인지도 대신 지지도를 얻었다고 한다.

   
▲ 강원도민일보 4월15일자 1면.
 
강원지역의 한 중견기자는 "최 후보는 국회의원을 하면서 토론 내공이 많이 쌓여있는 반면  엄 후보는 오랜 앵커생활로 정제된 언변을 가지고 있었다"며 "문제는 엄 후보가 준비되지 않거나 예상 못한 질문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이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된 게 낙선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법 콜센터' 사건도 운동원들이 스카프를 뒤집어쓰고 나오는 사진이 컸는데, 책임마저 그 주부들에게 돌려 유권자들이 엄 후보에 등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분석했다.

이외에 최 후보와 엄 후보 모두 춘천고 출신이지만, 최 후보만 지역의 국립대학인 강원대학교를 나온 것도 당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엄 후보는 서울대를 나왔고, 최 후보는 강원대를 거쳐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강원대 동문은 10만 명 정도로, 강원대 출신의 강원도지사는 최 후보가 처음이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도 춘천고-강원대 출신인데, 시너지 효과도 있지 않았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최 후보(전국언론노동조합)와 민 교육감(전국교직원노동조합) 모두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하지만 이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강원도가 더 이상 '여도'가 아니라는 것, 강원도도 이제는 달라져야겠다는 큰 흐름이 민심에 깔려있었다는 점이 중요했다고 지역 언론인들은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데다가 지난 두 번의 총선에서 민주당을 선택했던 경남 김해을에서는 왜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한 것일까. 이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김 후보를 앞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그 사이에도 "김 후보는 목숨을 걸고 하는데 이 후보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은 지역 언론계에서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를 들어 김 후보의 경우 인터넷포털과 지역일간지에 홍보 광고를 냈는데, 이 후보는 하지 않았다. 또한 김 후보는 자체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반면, 이 후보는 국민참여당의 그것에 얹혀가는 모습이었다.

이 후보의 행보를 두고 지역언론계에서는 '모종의 전략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선거 막판이 되자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다른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봉수 선거가 아니라 유시민 선거 같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유세현장을 찾을 때 유시민 대표가 마이크를 쥐고 있고, 이 후보는 곁에 서있는 모습이 잦았다고 한다.

   
▲ 경남도민일보 4월15일자 2면.
 
경남지역의 한 중견기자는 "결과론일 수도 있지만 김 후보는 모든 이들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머리를 숙이는 전략을 쓴 반면 이 후보 쪽은 주로 손을 흔들었다"며 "손을 흔든다는 것은 스타가 일반대중에게 하는 인사 방식인데, 그건 정말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주로 한 말은 단 두 가지로, "반성합니다"와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였다고 한다. 김 후보가 지난해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 유권자들의 동정을 산 반면, 이 후보 쪽은 선거 막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곳을 한나라당에 내어줄 수 없다'고 강조해 오히려 반감을 샀다는 평가도 나온다.

야권단일후보 선출결과가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 후보는 단일후보가 되기 전부터 범야권 인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왔고, 민주당 소속인 김맹곤 김해시장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권자들 사이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선거 막판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어차피 남은 임기가 1년 밖에 안 되니까 이번에는 김태호 보내고 1년 뒤에 되찾으면 된다. 그러면 국참당이 또 몽니를 부려서 이번에도 우리가 해야 된다는 얘기는 못하지 않겠나'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경남지역의 한 중견기자는 "노 전 대통령은 선거 전략에서 '양날의 칼'"이라며 "앞으로도 '고인을 팔아서 이득을 챙기려 한다'는 느낌을 주면 거부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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