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청명(4/5), 곡우(4/20)가 들어있는 절기답게 밭농사로 분주한 봄날이다. 벌써 4월말이니 5월6일 입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름이 머지 않다. 마당, 앞뒷산, 냇가, 논밭둑, 들길에도 초목애벌레곤충새들의 움직임이 점점 활발해 지고 있다. 산수유, 개나리, 매실, 벚나무들이 꽃을 피웠고, 들깨 모종에는 벌써 유충이 꼬여 잎이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냇가에도 피래미, 참모조가 놀기 시작하고, 풀벌레가 소리 연습하듯 운다. 아직 침이 단단해지지 않아 물지 못하지만 모기도 출현했다. 아직 소쩍새는 조용하다. 낌새가 없다.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다. 소쩍새 울면 봄이 마무리 될 것이다.

   
흙살림 농장 근처에 핀 벚꽃@정혁기

봄날 3~4월 간에 씨 뿌리고 심은 품목이 꽤 된다. 감자, 옥수수, 아욱, 시금치, 상추, 청경채, 얼갈이무, 호박, 파, 오이, 메론,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들깨 등. 올해는 작년에 비해 육묘를 많이 했다. 조만간 60여종의 볍씨를 소독해 눈 틔어서 모판에 파종하면 4월의 농사일정이 마무리 될 것이다.

아욱과 시금치는 수확했다. 각 80, 100kg 정도. 지난 2월28일 파종했으니 50여일 만이다. 네 명의 아주머니들이 작업을 와주어 밭에서 거두어 포장까지 마무리 했다. 수확 다음날 곧바로 '꾸러미' 회원들에게로 보내진다. '꾸러미'란 매주 혹은 격주 간격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택배로 보내는 <흙살림>이 운영하고 있는 농산물 직거래 방식이자 상호 유기적 관계로 맺어지는 소통공간이다. '꾸러미'는 흙살림 회원농가와 이곳 농장에서 생산된 채소, 과일, 발효식품, 달걀, 간식거리, 음료, 두부, 각종 가공식품 등으로 짜여 진다. 매주 받는 경우 10만원, 격주는 5만원이다. 철 따라서 품목이 변화하고 회원들과 함께 꾸러미해가는 경제, 문화 활동이 알차기 때문에 평판이 좋다. 일반 시장가격에 비교해서도 만족하리라 생각한다(관심있는 분은 <흙살림> 홈페이지 www.heuk.or.kr의 '꾸러미' 소개 참조).

농사는 자연을 대상으로 전개된다. 생산활동 중 가장 중요한 자연의 요소는 바로 '흙'이다. 태양, 공기, 물도 없어서는 안되고 자본, 노동도 없어서는 안되지만, 흙은 무엇보다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유기물, 무기물 등 영양요소와 생리화학물질, 효소 등을 흡수한다는 점에서 그 위치는 절대적이다.

   
아주머니들이 농장의 비닐하우스에서 시금치를 수확하고 있다 @정혁기
 

흙은 미생물 덩어리다. 세균, 방선균, 곰팡이가 우글우글 산다. 그 개체 숫자가 얼마인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막 양치질을 끝낸 입안에 박테리아가 적어도 수백만 개체가 살 정도로 미생물은 많은데 각종 유기물이 섞인 흙 속에는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하여 좋은 흙을 판별하는 데에는 세균의 풍부함 정도가 유력한 지표가 되는데,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를 과다하게 쓸수록 그 숫자가 줄어들어 '죽은흙'이 될 수밖에 없다.

흙이 좋은지 어떤지는 만져보거나 눈으로 보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데 나쁜 흙일수록 악취가 나고 단단하고 해로운 미생물이 산다. 좋은 흙일수록 냄새가 좋고 부드럽고 이로운 미생물이 산다. 흙이 좋으면 식물은 수많은 미생물이 분비한 토양 내 각종 효소, 비타민, 생리화학물질, 아미노산, 핵산 등을 비료 안줘도 흡수하게 되고, 자기방어능력이 향상되어 내병성이 커지고, 토양내 병원균 증식을 억제하여 식물병을 예방할 수 있기도 하다. 식물과 미생물은 흙을 매개로 서로 같이 살고 있다.

미생물은 토양 중 무기양분을 흡수하여 식물에 주고 그들은 유기물을 식물로부터 제공 받는다. 또 한편 생각해보면 흙은 사람의 고향이다. 죽으면 흙 성분이 된다.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 대부분이 흙에서 오고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흙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흙을 매개로 물질과 에너지가 순환되는 것이다. 따라서 농사꾼은 자신이 경작하는 흙을 알아야 하고 상태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화학비료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흙에 주는 영양제(=퇴비)를 만들어 썼다. 손님, 친구, 이웃이 모이는 사랑방 가까운 곳에 치깐과 오줌통을 두었다. 지금에야 옛 이야기지만 오줌, 똥은 자기 집에 돌아와 누었고. 사랑방 사람들에게 술, 밥을 내놓고 배불리 먹고 놀다 싸고 가라고 덜 볶은 콩을 대접하기도 했다. 비료가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이다. 남이나 이웃에게 수확한 곡식은 줘도, 거름은 주지 않았다.

땅에 농사지어 땅을 뺏어먹었으면 최소한 그만큼은 보충해주어야 한다. 뺏어 먹기만 하면 땅은 황폐화된다. 문제는 친환경 유기 비료를 사서 쓰기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농민들은 직접 만들어 쓴다. 대표적인게 퇴비와 액비다. 농사 지으려면 재배법, 작물관리요령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흙 관리가 중요하다. 작물마다 요구하는 토양 성질도 다르다.

흙을 살리고 좋게 만드는 것은 오래 걸릴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바로 되지 않는다. 흙의 상태야말로 농사 잘 짓느냐 못 짓느냐를 결정한다. 농사 지을려고 하는 사람에게 흙에 대한 이해는 절대적이다. (201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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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 농사꾼의 농사일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정혁기 농민은 서울대 농대를 나왔지만,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로 올해 두 해째 농사를 짓게 됩니다. 그의 농사일기를 통해 농사짓기와 농촌과 농민들의 애환과 생활상을 접해봅니다. [편집자주]

정혁기 농민은 현재 친환경농업의 과학화를 추구하고 있는 사단법인 흙살림의 삼방리농장(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부설 민족민주연구소 부소장, 우리교육 이사, 월간 말과 디지털 말 대표이사,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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