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세상 모든 이가 그를 알게 되었다. 그는 행복할까 행복하지 않을까?

모델 김유리씨의 죽음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점입가경이다. 지난 19일 모델 김유리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한 언론의 '단독' 보도가 나온 뒤 언론은 그간의 유명인의 자살을 다루었던 태도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하이에나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언론은 2007년에 쓴 미니홈피의 글을 그대로 옮겨와 모델 생활에 지친 고인이 자살을 선택했을 것 이라는 등의 추측성 보도를 남발했다.

몇년 전 개인적인 공간에 푸념처럼 올린 글이 어떻게 현 시점의 자살의 원인이 되는지도 의문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보도가 언론의 윤리관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포털사이트의 활약도 눈부셨다.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는 계속 김유리씨의 자살을 주요 보도로 처리했다. 일반인에겐 그닥 알려져 있지 않았던 모델 김유리씨는 단박에 죽음으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의 병력이나 가족이 사망했다는 등의 소소한 개인사가 모든 이에게 까발려졌다. 심지어 언론은 고인의 신체 사이즈까지 언급하며 그녀의 체질량 지수까지 계산해보는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가혹한 모델생활이 그녀를 자살로 몰았다는 논리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모델계 이면의 어두움을 분석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깊이 있는 분석보다는 결과를 정해놓은 ‘끼워맞추기’ 보도였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다.

또 트위터 등을 샅샅이 뒤져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유명인과 개인적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의 메시지를 그대로 내보내는 보도도 이어졌다. ‘또 자살한 모델들은 누구’ 라는 식의 보도를 통해 2009년 자살했던 모델 김다울씨등의 사건을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도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는 19일자 보도를 통해 김유리씨의 자살 소식을 전하며 미스코리아 출신의 동명이인의 사진을 내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뉴스데스크도 2007년의 미니홈피 속 글을 인용한 보도를 내보내기는 마찬가지였다. MBC는 논란이 되지 뉴스데스크'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하고 사과의 공지를 띄웠다.

   
MBC 홈페이지의 정정 사과 보도 화면.
 
언론의 이런 광기어린 보도가 이어진 후 20일 아침 모두의 뒤통수를 강하게 치는 경찰의 발표가 있었다. 김유리씨가 자살이 아닐 수 도 있다는 부검 결과였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0일 김유리씨의 부검 결과 외상이나 내부 장기손상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타살이나 자살 정황 모두 찾을 수 없다는 발표였다.

‘거식증’ ‘우울증’ 등 자살의 원인을 끼워 맞춘 보도를 쏟아내던 언론은 부끄럽지 않았을까? 이어지는 언론의 보도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몇몇 언론은 ‘모델, 김유리, 조직검사가 사인 밝힐 것’ 이라는 식의 보도를 내보냈다. 조금의 부끄러움도 느껴지지 않는 대목이다.

심지어 조선닷컴은 21일자 메인화면에 <김유리씨 자살로 본 모델들의 생활> 이라는 기사를 띄웠다. 기사 안에 “김씨 사인(死因)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는데도 자살이라는 제목을 떡하니 달아놓은 것이다. 지면의 글을 온라인에 옮긴 것으로 보이는 이 기사의 지면상 제목은 <김유리씨 죽음으로 본 모델들의 생활>이다.

“김씨의 죽음으로 '모델들의 생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김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우리는 밥 반 공기 먹고 (오후) 6시 이후에는 물도 입에 대지 않았다"며 "하루 3~4시간씩 운동하고 매일 줄자로 몸을 재면서 100컷 이상 사진을 찍었다"라고 썼다.”

조선일보도 몇년 전 미니홈피의 글을 죽음의 단서로 보도하는 언론의 대열에서 비껴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미니홈피 글의 시점을 쓰지 않아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독자라면 모델 생활에 대한 괴로움으로 김씨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확신을 가질 듯 하다.

   
조선닷컴 4월21일자 보도.
 
   
조선일보 4월21일자 11면.
 
죽음과 자살에 대한 보도가 신중해야 하는 까닭은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 때문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 죽음에 대해 평생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또 언론의 보도태도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반인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2월 “생활고로 죽었다”는 고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한겨레신문의 보도는 ‘남은 김치와 밥 조금만’ 으로 요약되어 많은 이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 뒤 많은 지인들에게서 ‘최고은 작가는 존엄을 지키며 죽었다’는 증언이 이어졌지만, 이는 대다수 언론에 의해 묵살되었다. 유가족은 평생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려야 할지 모른다.

고 김유리씨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모델 생활이 힘들어 자살한 모델’, ‘거식증으로 자살한 모델’ 등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지 모른다. 문제는 경찰의 발표로 진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이미 많은 이의 뇌리에 그렇게 각인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고인은 하룻밤에 세상 모든 이에게 사생활이 낱낱히 파헤쳐졌다. 언론은 누구의 알 권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섬세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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