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고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통신회사들이 유휴 주파수 대역 확보에 사활을 걸고 덤비고 있다. 통신회사들 몫으로 배정될 2.1GHz과 1.8GHz 대역 뿐만 아니라 내년 12월31일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이후 회수될 700MHz 대역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이 700MHz 대역은 전송 효율이 높아 황금 주파수로 불린다. 향후 통신시장의 판도가 여기에 달려있다.

지난 11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통신 3사들은 나름대로 명분을 주장하면서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SK텔레콤은 가입자가 가장 많은 회사에게 주파수를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KT는 3세대 이동통신 가입자만 놓고 보면 SK텔레콤과 KT에 큰 차이가 없으며 상대적으로 SK텔레콤이 더 많은 주파수 대역을 할당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LGU+는 3G 대역을 갖고 있지 않은 회사에게 주는 게 맞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현재 주파수 대역은 SK텔레콤이 90MHz, KT가 80MHz, LGU+가 40MHz씩 주파수 대역폭을 확보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내년 말까지 3162만명까지 늘어나면서 올해 1월 기준 5496TB였던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2015년이면 4만7914TB까지 8.7배나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강충구 고려대 교수는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올해 연말부터 이동통신 네트워크 용량이 한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강 교수 등에 따르면 2.1GHz 대역에서 일부 대역을 추가 할당하더라도 트래픽 폭증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강 교수는 "내년 말까지 LTE(롱텀에볼루션) 가입자가 867만명으로 늘어나 전체 무선 데이터 트래픽의 47% 수준을 분담하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턱없이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2.1GHz 외에 1.8GHz, 700MHz 등 종합적인 주파수 할당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주파수 할당 현황. ⓒ방송통신위원회, 푸르덴셜투자증권 정리.
 

 

   
주파수 사용 현황. ⓒ삼성증권.
 

3개 통신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파수 폭은 210MHz 밖에 안 되는데 2015년이면450MHz, 2020년이면 600MHz의 폭이 필요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통위는 올해 상반기에 2.1GHz 대역에서 20MHz의 폭을 통신회사들에 할당할 계획이지만 급증하는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통신회사들이 주파수 대역 확보에 목을 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통신회사들이 가져갈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은 2.1GHz 대역에서 20MHz 폭, 그리고 KT가 2G 서비스에 사용하다가 반납하게 될 1.8GHz 대역 20MHz 폭 밖에 없다. 여기에다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이후 2013년부터 유휴 대역으로 남게 될 700MHz 대역 108MHz 폭까지 모두 더해도 148MHz 폭 밖에 안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2~3년 안에 네트워크 용량이 한계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LTE 서비스가 시작돼 네트워크 효율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 역시 온 국민이 무제한 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KT의 경우 상위 10%의 사용자들이 전체 데이터 트래픽의 93% 이상을 쓰고 있다는 통계도 나온 바 있다. 데이터 트래픽이 늘어나면 날수록 통신회사들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통신회사들 주파수 보유 현황. ⓒ삼성증권.
 

방통위 관계자도 이날 토론회에서 2.1GHz와 1.8GHz는 물론이고 향후 700MHz 대역까지 경매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해 이르면 올해 상반기 안에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부분 언론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 주파수 대역이 이 통신회사들의 몫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통신회사들이 황금 주파수 대역을 나눠서 가져가고 지난 10년처럼 향후 10년 동안 독과점 구조를 계속 이어가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지난해부터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한 건 상대적으로 주파수 대역에 여유가 있는 SK텔레콤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도입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지적한다. 전 이사는 "2.1GHz 대역을 두고 경매를 해야 한다면 SK텔레콤은 배제하는 것이 옳다"면서 "짜투리로 쪼개서 내다 팔게 아니라 형평성과 효율성을 고려해 장기적인 주파수 배분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신용으로 사용되는 주파수는 대역이 낮을수록 도달거리가 길고 회절 손실이 적다. 당연히 기지국 설치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800MHz 대역을 배정받았던 SK텔레콤이 탄탄한 진입장벽을 구축한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1.8GHz 대역을 배정받았던 KT나 LGU+는 훨씬 더 많은 설비투자를 집행했으면서도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통신회사들 입장에서 700MHz 대역은 그야말로 꿈의 주파수 대역인 셈이다.

전 이사는 "핵심은 주파수 자원이 한정돼 있고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라면서 "온갖 새로운 서비스가 쏟아져 나올 텐데 지난 10년처럼 소수의 독점 사업자들이 이를 콘트롤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뿐더러 옳지도 않고 장기적으로 통신시장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이사는 "공유 주파수 대역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놓고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방송사들도 순순히 이 주파수 대역을 내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상파 방송사들을 1개 채널에 6MHz의 대역폭을 할당 받고 있는데 디지털 전환 이후 압축 기술이 발달된다고 해도 3DTV나 UDTV(초고해상도TV) 등 새로운 방송기술을 소화하려면 추가 주파수 확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는 "지상파의 방송주파수는 장기적 안목에서 차세대 방송을 개발하는 용도로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낸 바 있다.

통신회사들과 지상파 방송사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단순히 경매 방식으로 유휴 주파수 대역을 배분할 경우 현금 동원 능력이 뛰어난 통신회사가 이를 독차지하고 독과점 구조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통신 시장은 음성 통화 기반에서 데이터 트래픽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주파수 경매가 머니 게임으로 변질될 경우 후발 사업자의 신규 진입이 원천 차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단순히 남아도는 주파수 대역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데이터 트래픽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가를 두고 국가적으로 네트워크 자원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망 개방과 중립성 논쟁도 가열되는 분위기다. 제한된 네트워크 자원을 소수의 기업이 독점해서는 안 되며 다양한 통신사업자와 디바이스, 어플리케이션을 폭넓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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