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김현철씨의 정치개입 문제에 대해 언론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고 있다. 김씨와 주변인물들의 해명에 초점을 맞춘 듯한 기사는 나오고 있으나 정작 국민적 관심사인 그의 정치개입 여부의 실체에 대한 접근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김씨와 관련해 언론은 ‘해외유학설’ ‘15대 총선 출마설’등의 보도를 연이어 내보내고 있다. 그가 자신과 관련된 시중의 소문에 대해 반박한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와의 인터뷰와 최근 출간한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의 내용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민정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 일각에서 현철씨 문제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건의했다는 것도 간간히 보도되고 있다. 민자당 부설 연구소인 여의도연구소가 지방선거 분석 보고서에서 현철씨를 겨냥해 ‘여권내 사조직’문제를 제기했다는 기사도 눈에 띤다.

문제는 이들 기사가 김씨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철씨 문제가 정치권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정도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현철씨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으며 그의 해외유학 문제가 거론되는 배경, 그가 어느정도로 정치에 개입했는지에 대해 국민들의 궁금증을 조금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는 언론이 앞장서서 현철씨를 보호하려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현철씨의 일방적 해명을 담은 그의 책은 상세하게 소개를 하면서도 그의 정치 개입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경우 지난달 31일자 상자기사에서 “그동안 증권가 루머 수준에서 맴돌았던 소문이 이제는 근거도 제시되지 않은채 주간지등에 기사화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여당내에서조차 사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썼다.

그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증권가 루머 수준’ ‘근거도 제시되지 않은채’ ‘어이없는’등의 주관적 표현을 쓰면서 사실이 아니라는 투로 몰고간 것이다.

일부 기사의 경우 현철씨 문제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오래전부터 현철씨의 총선 출마설이 유력하게 대두됐었다”(조선) “현철씨 거취문제는 김영삼정부 출범이후 여권내에서 끊임업이 거론됐으나 워낙 민감한 문제여서 주로 수면하에서 거론됐다” “정부의 인사 및 정책 결정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 김영삼정부의 막후실세로 지칭돼온”(동아)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각 언론사가 발행하고 있는 시사주간지의 경우는 보다 직접적으로 현철씨의 정치적 영향력을 언급하고 있다. 주간조선은 그와 관련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이라는 표현을 썼다. 최근 현철씨와 인터뷰를 한 뉴스메이커(경향신문 발행)는 ‘문민정부의 막후 실력자’ ‘여권 내부 권력투쟁의 핵’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철씨의 움직임을 언론이 어느 정도 포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막후실세’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과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감을 잡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본격적으로 기사화된 적은 없다.

여권 일각에서 거의 공개적으로 현철씨 문제를 거론하고 나왔다는 것은 권력속성으로 볼 때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여권에서 정치적으로 상당한 비중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아무 근거없이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수도 있는 행동을 했다고 믿는 국민들은 별로 없다.

현철씨의 정치개입이 이들이 문제를 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한계수위’를 벗어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치권에서 그를 김영삼대통령의 아호인 ‘거산(巨山)’에 빗대 ‘소산(小山)’으로 부르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젊은 도령’ ‘황태자’라는 별명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 대한 세간의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정치권의 민감한 흐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언론은 현철씨 문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민자당 출입기자등 정치부 기자들은 현철씨 문제와 관련한 취재지시를 받은 저이 없다고 실토하고 있다. 현철씨가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삼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것 말고는 이 문제와 관련한 언론의 침묵을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권력 내부의 움직임을 언론이 모두 알 수는 없다. 현철씨와 관련한 세간의 의혹이 말 그대로 억측이고 소문일 수도 있다. 특정정파가 이해관계를 위해 의도적으로 소문을 흘렸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 모두를 이해하더라도 언론이 접근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어쨌든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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