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 무릎팍도사-김완선 편’이 화제다. 6년 만에 가요계에 복귀한 ‘댄스음악계의 전설’ 김완선은 이날 방송에서 과거 은퇴 발표를 둘러싼 비화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눈길을 끈 내용 중 하나는 자신의 대표곡인 <리듬속의 그 춤을>의 ‘탄생 비화’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김씨는 “2집 히트곡 ‘리듬속의 그 춤을’을 신중현 선생님이 작사, 작곡해주신 곡”이라며 “이 곡의 빅히트로 소포모어(2년차) 징크스란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현대음률 속에서 순간 속에 보이는 너의 새로운 춤에 마음을 뺏긴다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74)이 만든 ‘유일한 댄스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신중현은 <님은 먼곳에>, <봄비>, <미인>, <미련>, <빗속의 여인> 등 한국 음악계에 길이 남을 명곡을 숱하게 작사·작곡한 뮤지션으로, 지난 2006년 공식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13일 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김완선씨.
 

김완선은 방송에서 “신중현 선생님도 새로운 장르에 처음 도전한 노래였다”며 “노랫말 자체가 제가 부르기엔 좀 철학적이고 시적이었고 정말 부르기에 난해했지만 이 노래의 히트로 반짝 인기로 스타가 된 것이라는 오명을 벗게 됐다”고 신중현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리듬속의 그 춤을>(1987년)이 탄생하게 된 과정은, 신중현 자신도 한 방송에 나와 세세하게 설명한 적이 있다. 신중현은 지난 2007년 EBS ‘지식채널e’와의 인터뷰에서 ‘바늘구멍만한 희망조차 보이지 않을 때’ 이 곡을 작곡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의 ‘공연정화대책’ 발표 이후 신중현은 물고문과 구속, 정신병원 수감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신중현은 이제 끝났다”고 수근거렸다.

무기한 활동금지를 당했던 신중현은 80년대 들어 ‘해금’이 됐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신중현은 “해금이 돼서 금지가 풀렸으니까 ‘마음대로 해라’ 그래서, ‘뮤직파워’라는 그룹을 9인조로 거창하게 만들어 갖고 나왔다. 하지만 이제 막 활동을 하려니까 그 시대는 벌써 댄싱그룹, 댄싱뮤직이 유행하고 있었다. 저와 같은 록 음악이, 록을 좋아하던 사람이 사라진 상태였다”고 토로했다.

‘거장’는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다가 쫓겨나고, 춤을 추는 데 발이 안 맞는다고 쫓겨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때였다. “이제 일자리도 한 군데도 못 잡고 만날 쉬는 날이 연속되는데, 다 때려치우고 있을 때 ‘김완선’이라는 가수가 찾아왔다. 제가 옛날 가락이 있으니까 곡을 한번 달라고 했다. 그래서 춤추기 좋게 만들어준 곡이 있다.”

당시 최고의 ‘섹시 가수’와 서서히 잊혀져가던 ‘록의 대부’의 극적인 만남이었다. 신중현은 함부로 ‘현대 음률’을 논하지 말라는 듯 곡을 써내려갔고, 그것은 불후의 명곡 <리듬속의 그 춤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신중현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 찬가’를 만들라는 지시를 거부해 갖은 고초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중현은 지난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나는 음악적인 것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는 성격”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면서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안는 진짜 음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듬속의 그 춤을>뿐만 아니라 그의 숱한 명곡들이 오래오래 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난 2006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공연을 펼치는 신중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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