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에 공포하여 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한글맞춤법>에다 각종 국어사전들이 나와 있는 오늘의 말글살이 현실은 50년 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기사를 작성하는 글자 역시 한자투성이에서 많이 벗어나 그야말로 한글(글자)기계화를 이루어 요즘은 워드프로세스를 쓰지 않는 기자가 없을 정도다. 말과 글의 일치는 완벽에 가깝다.

이런 변화를 요약하면 글자는 △한자→한글, 문장은 △글말(문어투)→입말(구어투)로 바뀌었
다는 말이다.

이렇게 언어생활 환경이 좋아지고, 보도기사 역시 겉모양이 많이 나아졌는데도 실제로 기사들이 마냥 제대로 된 용어와 제대로 된 글투로 적혀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 한자가 한글로, 문어투가 구어투로 바뀌었을 뿐이지 속내를 들춰보면 그 변화는 뜻밖에도 복잡하고 절망적이다.

글자는 △한자·왜어→한글/ 로마자, 날말은 △한자말→한자말/우리말/서양외래어, 문장은 △문어체→구어체/번역체로 바뀐 것이다.

대체로 외국어는 말을 먼저 변하게 한다. 글은 그 다음인데, 글이란 말을 한번 더 걸러서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말이 글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기사가 말을 바꾸는 현상을 본다.

대부분 방송보도 역시 원고를 써서 읽거나 외고, 각종 성명이나 선언문 역시글을 써서 읽는 까닭에 글말투가 입말투를 잡아먹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해악의 악순환이다.

기사만 제대로 되었다면 문제는 다른데 그게 아니다.

한편 신문기사나 방송기사 두루 ‘틀’이 있는데 심지어 표현방식이나 쓰이는 낱말까지 판박이식이다. 문제는 그 판박이가 우리식이 아니라 다른나라, 특히 일본말식이나 영어식이라는 데 있다.

“또 하나는 냉전의 종식에 따라 미국이 옛 소련을 봉쇄하는 데 있어 중시했던 중국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냉전의 종식, ∼하는 데 있어, 역할)(한겨레 95년 8월 5일자)위는 미국신문 사설을 번역한 한 부분인데도 이상하게 일본식 글투와 낱말을 쓰고 있는 흔한 보기다. 참고로 다시 고쳐보면“또 하나는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이 옛 소련을 봉쇄할 때 중시했던 중국의 구실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밖에 일본문투로서 잦고 널리 쓰는 말투들을 몇가지 들면 “∼에다름 아니다/∼에 가름하다/∼에 값하다/∼에 있어서, ∼에게로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들이 들어간 글들이 있다. 이런 보기들은 아무 신문이고 집어 들여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영어투를 보기로 들 때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이른바 사람이 아니라 목적어나 사물을 주체로 삼아 만든 수동태문장들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5, 6공 비자금에 대한 매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어 김영삼 대통령이 귀경한 뒤 별도의 조처가 취해질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국민일보 8월 6일자)

위 보기는 외국어말을 번역한 것이 아닌데도 영어투 또는 번역투 이상으로 수동태병이 깊이 스며 있고, 접속사 ‘그러나’가 놓이는 자리도 바뀐글이다.

참고로 이를 바꿔보면 “그러나 여권에서도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5, 6공 비자금에 대해 매듭지어야 한다는 의경이 나오고 있어 김영삼 대통령이 돌아와서 별도 조처를 취할 것인지, 그게 관심거리다.” 수동태 문제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거나 분석하는 장점 등이 있으나 오히려 주체를 감추고 목적물을 드러내는 까닭에 역시 자연스럽지 못하고 자신감이 없으며, 심지어 사물을 소극적으로 판단·기술하는 버릇을 주므로 취할 바가 못 된다.

이 밖에 영어식 문투로 “(회견·회담을) 갖다, ∼갖고, ∼가지고, ∼가진 뒤/말해지고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로부터/ ∼을 요하다/ ∼이 요청(구)된다/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해방 이후 공교육에서 국어교육의 시작과 역사가 같은 영어교육, 영어 사대주의 풍조나 그들의 문법 탓이다.

학생은 물론이고 교수나 교사 심지어 시중에 넘치는 번역서와 교과서들, 그리고 신문·방송기사까지 한통속이니, 이 튀긴지 혼혈인지 하는 물건을 어디부터 손을 대어 고쳐야 할지 난감하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국립 또는 어문관계 민간 학술기관이나 대학 연구소들에서 하루바삐 기초작업을 해서 일선 학교나 언론사 등에 돌려 제대로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신문·방송사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부분들만이라도 기자 개개인이 자신의 기사문투에 반성적으로 적용하여 기사를 써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글자생활이 기계화해 이만큼 편리해졌으면 그여유를 개인든 무슨 단체·기관이든 최소한의 자존심을 높이고 가다듬는 쪽으로 돌리라는 말이다.

진정한 광복은 통일이라던가? 진정한 광복은 제 말글을 제대로 부려쓰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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