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방송의 일본 프로그램 모방은 이제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비등함에도 방송인들은 이를 포기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일본 프로그램 모방이 더욱 더 지능적이고 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KBS <특정 웃음대결>은 일본 니폰 TV의 <투고 특보왕국>을 그대로 베낀 사례, 이 프로그램은 2명의 취재부장과 제보소개 방법 등, 대부분의 형식을 그대로 모방했다. 이밖에도 KBS TV의 이 일본 TV도쿄의 <개운(開運) 뭐든지 감정단>을 베꼈고 <빅쇼>와 <역사의 라이벌>도 일본방송에 제목과 형식이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

또 SBS의 <알뜰살림 장만퀴즈>는 <백만엔 퀴즈헌터>, MBC의 도전추리특급은 <퀴즈 매직컬 두뇌파워>를 모방했따고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교양이나 오락 프로그램에서 일본 방송을 모방한 사례들은 이미 그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이러한 일본 프로그램 모방은 최근 드라마로도 연결되고 있다. 얼마전 MBC TV미니시리즈로 방송된 <호텔>은 후지TV의 만화영화 ‘황제의 레스토랑’에서 소재를 찾았다는 것이 방송인들의 증언이다. 또 MBC <종합병원>은 단지 병원이라는 소재만을 인용했다고는 하지만 신은경의 옷차림등 일본 프로그램과 유사한 부분이 눈에 띄어 제작진이 여전히 일본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트랜디드라마 <최신 풍조를 반영하는 드라마>는 장르 자체가 일본에서 도입된 만큼 이 장르의 효시인 <질투>가 일본 후지TV의 <토쿄 러브스토리>를 모방했다고 지적되는 것을 비롯해서 많은 프로그램이 일본 드라마를 모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처럼 방송가에 일본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최근에는 모방통로도 다양해지고 있다. 개편을 앞두고 부산 여관방에 앉아 일본 프로그램을 시청한 것은 이미 옛날이야기. 최근에는 방송사마다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유학생을 통해 정기적으로 일본 프로그램을 받아보고 있다. 아예 작가나 프로듀서가 개인적으로 일본 통신원을 두는 경우도 있다.

또 방송사마다 일본 프로그램을 모니터하는 시설을 설치해 놓았고 외국 프로그램에 관한 정기적인 워크샵을 편성부 주도로 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외국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방송정보지도 방송시마다 발행해서 사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개편을 앞두고 일본 모방은 더욱 심해진다.

SBS의 예능 프로듀서 세사람은 지난 봄 개편을 앞두고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일본에서의 행선지는 단지 호텔 한 곳. 이들은 일주일동안 호텔에 틀어박혀 일본 TV가 개편을 앞두고 내보내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돌아왔다.

이에 따라 만든 프로그램이 지금 SBS 전파를 타고 있다. 최근에는 LA한인사회에는 일본의 TV 프로그램이 한글자막까지 덧붙여 공급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구입할 경우 별도의 통역과정 없이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TV방송이 시작된 것은 해방이 지나고도 한참 뒤인 1961년. 일제 통치하에 들어온 매체들이 관용적인 왜색문화를 탈피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방송은 스스로 일본으로부터 영향받기를 시도했다는 데서 방송인들의 일본 모방은 또 다른 책임 한가지를 더 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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