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의 비난과 포털사이트의 강력한 제재 움직임에도 변하지 않는 참 한결같은 풍경이 있다. NHN이 운영하는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시시각각 올라오는 각 언론사 기사들의 제목 이야기다.

연예 기사를 중심으로 노골적으로 ‘옐로우’를 지향하는 스포츠지나 일부 인터넷매체뿐만이 아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1주일여 동안 모니터한 결과에 따르면, 지면에선 근엄함과 엄숙함, 진지함이 가득한 주요 일간지들 역시 전혀 예외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기사 자체는 선정적이라 하기 어렵지만, 제목과 내용이 잘 일치하지 않는 ‘낚시성’ 제목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가장 압권은 한국일보가 지난 5일 톱뉴스로 올린 <“이상한 속옷 입는 아저씨들이…”>였다. 제목만 딱 보면 뭔가 야릇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톱뉴스이니 뭔가 심층적인 조사·분석이 있는 기획기사가 아닐까 기대를 품게 된다.

   
 
 
주요일간지도 예외없는 ‘제목 따로 내용 따로’ 편집

하지만 기사를 클릭해보면 한마디로 ‘낚였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남성용 내의·화장품 업체들이 봄을 맞아 이른바 ‘꽃중년’을 타깃으로 한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는 일종의 상품 트렌드 기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홈페이지에 실린 이 기사의 원제목은 <봄타는 男心…꽃중년을 잡아라>다.

9일자 사회면 <새벽 2시, 북창동 유흥업소 가보니>란 기사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유흥업소 잠입취재’ 같은 걸 상상하겠지만, 막상 기사를 열어보면 “고유가 대책으로 정부가 야간조명 단속을 시행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강남 유흥가에는 외부 조명을 켠 채 영업하는 업소가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꽤 건전한(?) 내용이 뜬다.

중앙일보·매일경제·문화일보의 활약도 대단하다. 중앙과 매경은 <女중요부위 등 마구잡이 집단폭행 알고보니>(8일자), <‘봄의 여신’ 강림…손으로 ‘거기’ 가리고>(9일자)란 제목의 기사를 각각 내보낸 바 있다. 선정적인 듯 아닌듯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느낌인데, 중앙 기사는 제목에도 일부 나와 있지만 “중국 남성들이 옷깃이 스쳤다는 이유로 여성을 만신창이가 되도록 집단폭행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논란”이라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남자들이 여성의 복부와 얼굴, 그리고 중요부위를 내리찍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중 한 대목을 따 제목을 뽑은 것이다. 이 ‘끔찍한’ 기사에 꼭 저런 제목을 달아야 했을까?

   
 
 

   
 
 
매경 기사는 기사라기보다 ‘화보’다. <봄에 흠뻑 빠진 각선미 포토 퀸은?>이 원제목으로, 한고은, 김소연, 최정윤, 김규리, 지연 등 유명 여성 연예인의 사진이 가득하다. 그런데 난데없이 ‘거기 가리고’라니? 알고 보니 몇몇 연예인의 지갑 등이 ‘거기’에 ‘위치’한 것을 두고 선택된 제목이다. 아무리 봐도 연예인 스스로 일부러 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너무 노골적인 제목이 아닐까?

문화는 5일자에 <즉석만남 쉽고 싸게…‘부킹호프’ 우후죽순>을 톱뉴스로 뽑았다. 주요 일간지의 위상에 걸맞은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기대’(?)를 품고 기사를 열어본다. 예상대로 “맥주를 파는 호프집에서 남녀 손님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이른바 ‘부킹 호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그렇고 그런 내용이지만, 현장취재도 일부 있는 것 같고 그래도 ‘단독’이라 톱에 올렸거니 애써 기대를 가져본다.

하지만 확인 결과 거의 같은 시점에 다른 여러 매체에도, 그것도 거의 같은 내용으로 실린 기사다. 한 프랜차이즈 주점이 올해 초부터 열심히 홍보하고 있는 내용과 유사하다.

많은 사람이 느끼겠지만 각 언론사별 홈페이지 화면과 네이버 뉴스캐스트 화면의 분위기는 서로 극명하게 다를 때가 많다. 홈페이지는 신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으나, 뉴스캐스트는 홈페이지에서 잘 찾기도 힘든, 하지만 클릭수를 확실히 보장하는 야릇한 기사로 채우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터넷뉴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조선일보 9일자 뉴스캐스트 화면을 보자. 총 9개의 기사 중 <파란눈 女, 한국 성형외과 찾아와 “소시처럼…”>, <‘제자 성폭행’ 여교장, 집무실서 상습 성관계>, <“알몸으로 일할 수 있는 女 뽑겠다”는 회사>, <北 여성들 ‘스타킹 뭔지 아냐?’ 질문에…> 4개가 ‘女’와 관련되어 있다. 나머지 기사도 <北, 세계 아이스하키 출전포기한 기막힌 이유>, <뺑뺑이 배치한다던 해병대 “현빈 열외…” 왜?> 등 가십성이 대부분이다. 이 순간만큼은 스포츠지와 맞붙는다 해도 결코 꿀리지 않을 것 같다.

   
 
 
홈페이지와 다른 편집에 언론사 정체성 의문도

반면 경향신문은 선정성보다는 ‘경향답지’ 않은 점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경우다. 한겨레와 함께 진보적 종합일간지로서 위상을 굳힌 경향이지만, 뉴스캐스트 화면만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가 많은 탓이다. 지난 5일자 경향 톱뉴스 제목은 이었고, 6일자 톱뉴스 <직장인 점심메뉴, 부동의 1위는?>은 다음날 늦게까지 계속 그 자리에 걸려 있었다. 나아가 10일자에는 <헤어진 후 미련행동, 2위 음주통화…1위는?>이 톱뉴스에 올라와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다른 언론처럼 선정적·노골적이라 볼 순 없었지만, ‘신상털기’나 ‘점심 메뉴’, ‘음주통화’ 등이 진보적 노선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드물 듯하다. 박래용 경향 디지털뉴스팀 편집장은 이와 관련 “페이지뷰라는 현실과 정체성·질이라는 우리의 가치 둘 중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이지만, 정말 올릴 만한 기사가 없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며 “가독성이 있으면서도 선정적이지 않게, 최대한 자제하고 자제해서 고른 게 ‘점심 메뉴’ 같은 기사였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주요 매체들의 기사 제목을 유심히 살펴보면, 언론사들이 선호하고 네티즌들에게 잘 먹히는 제목 유형도 알 수 있는데, 딱 부러지는 것보다는 뭔가 여운이 남는, 질문형 제목이 그것인 듯하다. 10일자 경향 뉴스캐스트는 앞서 톱뉴스(음주통화)를 비롯해 <‘내가 취업 안되는 이유’ 2위 영어, 1위는?>, <재결합 원하는 아이돌 그룹…신화 제친 1위는?>, <여성 선호 맞선장소, 2위 호텔커피숍…1위는?>까지 9개 중 무려 4개의 제목 유형이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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