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벌써 네번째다. 7일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진 카이스트 학생 박모씨(20·수리과학과)의 죽음 역시, 앞서 3명의 자살처럼 서남표 총장이 부임 이후 실시한 ‘차등 등록금제’ 등 극한 경쟁을 유도하는 이른바 ‘개혁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학생은 전날 학교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하고 휴학계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카이스트 측도 급기야 현실을 인정하고 나섰다. 바로 며칠 전까지 “명문대생은 압박감을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던 서남표 총장은 7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지금 상황에 국민 여러분께, 학부모님들께, 학생들께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며 성적 미달자에 대한 수업료 부과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2006년 9월 19일자.
 

서 총장은 부임 직후인 지난 2007년부터 평점 2.0~3.0 미만이면 0.01점당 약 6만원씩을, 평점 2.0 미만이면 수업료 600만원과 기성회비 150만원을 내는 ‘징벌적 수업료제’를 운영해왔다. 그것도 '상대 평가'여서 해마다 전체 학생의 30%는 3.0 미만을 피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이에 대해 “차등 수업료와 실패를 용납 않는 재수강 제도 등이 학업부담을 가중시키고 말도 안 되는 학내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며 “학점경쟁에서 밀려나면 패배자 소리를 들어야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고민을 나눌 여유조차 없다”고 분노를 표현해왔다.

언론들도 이 문제를 일제히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는데, 8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게재된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끈다. <“성적 미달자 수업료 부과 폐지”…서남표 개혁 좌초하나>가 그것이다. 학생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서도 ‘개혁’이란 용어가 버젓이 또 등장한 것이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서남표 총장은 2006년 7월 취임 직후 ‘세계 일류 대학과 겨뤄 뒤지지 않으려면 우리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를 위해 교수 ‘정년보장(tenure)’ 심사를 강화하고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학비를 내도록 하는 등의 정책을 도입했다”고 평가하면서 “일부에서는 (잇단 자살사건으로) 서남표식 대학개혁이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다른 언론도 예외는 아니지만, 이 기사에서 알 수 있듯 ‘서남표식 개혁’을 가장 적극적으로 칭송해왔던 매체가 바로 조선일보였다. 조선은 2006년 총장 부임 직후 굵직굵직한 인터뷰만 세차례에 걸쳐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카이스트 확 바꾸는 서남표 총장>(2006년 9월), <“私교육은 死교육” 서남표, 칼을 뽑다>(2009년 3월), <서남표 총장 그의 꿈은 ‘세계 최고’>(2009년 5월), <‘서남표식 대학개혁’ 이어질까 중단될까>(2010년 6월> 등 다른 기획기사의 논조도 거의 ‘찬양 일색’이었다.

   
조선일보 2010년 7월 23일자.
 

일각에서 “그는 교육개혁가가 아니라 경영개혁가에 가깝다. 교육에 대한 철학이 없다. 등록금으로 학생들의 목을 죄는 것이 면학분위기 조성의 방법이라면 단연코 비교육적이다. 학생들을 더욱 잘 가르쳐야 하는 게 학교의 의무인데, 등록금을 갖고 학생들을 경쟁 속에 몰아넣는 것은 사실 아주 손쉬운 방식으로 회피해버리는 것”(진중권)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음에도 조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선은 서남표 총장의 연임이 확정된 직후인 지난해 7월에는 서 총장 단독 인터뷰를 비롯해 10꼭지가 넘는 대형 기획기사를 싣기도 했는데, <세계 톱 10을 향해…1만명의 연구실엔 해가 지지 않는다>, <국제센터·스포츠센터·KI빌딩…‘공부할 맛 나는’ 인프라> 등이 주요 기사들의 제목이었다.

이런 기사들을 보면 카이스트 학생들에겐 별 문제가 없다. 평소엔 공부와 수업에 쫓기긴 하지만, ‘여가생활’도 있고 자기계발 활동도 게을리 않으며 다양한 동아리 활동까지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시설도 훌륭해서 ‘공부할 맛 나는’ 편리하고 쾌적한 학교생활도 하고 있다는 소개까지 더해진다.

총장 연임 결정 직전인 2010년 6월에는 <‘서남표식 대학개혁’ 이어질까 중단될까>란 기사를 통해 적극적 ‘지지운동’(?)도 펼쳤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지난 4년간 그는 ▲교수정년 심사강화 ▲성적부진학생 등록금 징수 ▲영어강의 도입 등을 도입하면서 주목을 받았으며, 카이스트뿐 아니라 한국 대학들의 개혁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적었다.

‘독선적 리더십’, ‘성공가능성 낮은 연구에 예산을 낭비한다’는 일부 비판도 실었지만, 결론은 “서 총장의 대학개혁 업적이 화려함에도 ‘연임 불투명’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방인’의 개혁 리더십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쪽이었다. 서 총장이 MIT 공대 교수로 재직중 카이스트 총장에 부임해, 국내에 학맥과 인맥이 거의 없었던 점을 강조한 것이다.

조선은 “서 총장의 개혁 비전과 학교발전 전략은 구체적이고 탄탄하다. 그럼에도 그가 중도하차한다면 우리 사회가 이방인 리더를 '왕따'를 시키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는 한 서울 사립대 교수의 말로 이 기사를 맺었다.

조선의 뜻(?)대로 서남표 총장은 당시 연임에 성공했고, 조선 등의 지원에 힘입어 이른바 ‘대학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 참혹한 결과는, 지금 온 국민이 보고 있는 그대로다.

   
조선일보 2010년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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