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를 홍보와 마케팅 수단으로 접근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실제로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주류 언론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짜왔던 기업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촉발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거나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다. 달라진 커뮤니케이션 환경,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수하동 페럼타워 3층 대강당에서 열린 ‘소셜 미디어 시대, 위기관리 전략’ 컨퍼런스를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 주

숨길수록 더 빠르게 확산-정면으로 솔직하게 대응
엄청난 기회이면서 위기-전파 속도의 ‘나비효과’ 예방적 관리시스템 필수

2007년 3월, 일본 고치공항에서 ANA항공 여객기가 동체 착륙을 한 사건이 있었다. 기장은 앞바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을 승객들에게 알렸다. 승객들은 동요했지만 이런 상황에 익숙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을 듣고 안심하게 된다. 기장은 공항 상공을 선회하면서 항공유를 버린 다음 활주로에 진입, 앞바퀴가 나오도록 시도한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수하동 페럼타워 3층 대강당에서 '소셜 미디어 시대, 위기관리 전략’ 컨퍼런스를 열었다. 김태현 유저스토리랩 부사장이 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두 번째 안내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나 기장은 침착하게 승객들을 안심시킨다. 바퀴가 나오지 않아 동체로 착륙을 하겠지만 항공유를 모두 버렸으니 사고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다시 활주로에 진입하면서 기장은 동체가 활주로에 부딪히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카운트 다운한다. 뒷바퀴가 먼저 닿은 뒤 머리 부분을 처박은 채 속도를 줄인 항공기가 완전히 멈춰 서자 승객들은 일제히 환호의 박수를 친다.

이 사건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모범 사례라고 할 만하다. 기장은 침착하게 항공유를 버리고 비상 착륙을 시도하면서 이 사실을 승객들에게 알려 불필요한 동요를 막았다. 1차 시도에 실패한 사실도 그대로 알렸고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켰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승객들과 기장 사이에는 탄탄한 신뢰 관계가 구축됐다.

전문가들은 소셜 미디어 시대에도 위기관리의 기본 전략은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조언한다. 이슈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설 것, 영원히 숨길 수 없다면 약점과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낼 것, 그리고 개선을 약속할 것,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할 것 등이다. 다만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나쁜 뉴스가 훨씬 더 많이 다양한 경로에서 터져 나오고 훨씬 더 빨리 확산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희연 LG전자 홍보팀 차장은 “온라인에 떠도는 기업에 대한 나쁜 소문을 일거에 없애는 마법 같은 방법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어떤 기업이든 소셜 미디어에 뛰어들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투명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차장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을 간과하면 뼈아픈 실패를 겪는다”면서 “평소 소셜 미디어에서 존재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LG전자의 드럼 세탁기 안에서 어린아이가 질식사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LG전자는 우리 세탁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이 회사는 105만대에 이르는 같은 기종 세탁기의 잠금장치를 전량 리콜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세탁기 안전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용자 과실로 떠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정면 돌파를 선택했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사과의 원칙으로 꼽히는 이른바 ‘CAP룰’은 ‘사과의 말(Care & Concern)’로 30%를, ‘앞으로 취할 행동(Action)’으로 60%를, 그리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Prevention)’는 약속으로 10%를 채우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적당히 위기를 모면하는데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실수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수하동 페럼타워 3층 대강당에서 '소셜 미디어 시대, 위기관리 전략’ 컨퍼런스를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당신이 도미노피자의 최고경영자라고 생각해 보자. 철없는 직원들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한 편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과거에는 주류 언론이 이슈의 거의 유일한 마켓 플레이스였지만 이제는 소셜 미디어가 ‘롱 테일(long tail, 긴 꼬리)’을 만들고 예측 불가능한 온갖 다양한 위기를 만들어 낸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이슈는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 숨기거나 적당히 덮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중대 소셜링크 대표는 “소셜 미디어는 악성 루머와 해킹, 다양한 형태의 사이버 테러리즘의 형태로 기업의 위기 상황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촉발한 기업의 위기 사례를 살펴보면 내부 직원이나 소비자들이 갑자기 불만을 쏟아내고 최악의 경우 미처 대응할 시간도 없이 빠른 시간 안에 주류 언론의 이슈를 장악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가 기업 위기의 방아쇠로 작동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를 냈던 브리티시패트롤리엄(BP)의 최고경영자인 토니 헤이워드는 어설픈 사과가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남긴 반면교사였다. 그는 “바다는 넓고 원유 유출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세계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원유 유출 규모를 속이기도 했고 유튜브에 사과 동영상을 올리긴 했지만 진심이 담긴 표정이 아니었다. BP는 누리꾼들에게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어느 기업이나 사고를 낼 수도 있고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지만 거짓말하는 나쁜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치명적이다. BP는 다른 많은 기업들처럼 적당히 소셜 미디어에 발을 걸치긴 했지만 정작 수십만명의 트위터 팔로워들이 하루 아침에 안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달라진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진정성 없는 소셜 미디어 활동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10월, 치킨 프렌차이즈 BBQ가 수입 닭을 속여 팔았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BBQ는 직원의 실수였다고 인정하면서도 언론 보도가 과장됐다고 주장하면서 강력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난 여론은 더욱 끓어올랐다. “앞으로 BBQ 치킨은 절대 먹지 않겠다”는 항의가 쏟아졌고 실제로 프렌차이즈 점포들은 주문이 뚝 끊겼다. BBQ는 다음날에서야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밝혔지만 이미 신뢰 관계가 크게 무너진 뒤였다.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했던 BBQ와 달리 BBQ의 광고 모델이었던 소설가 이외수씨는 진심어린 사과로 오히려 믿음을 얻었다. BBQ는 “8만건 가운데 단 2건의 오류가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씨는 “0.0025%의 잘못도 분명한 잘못”이라면서 “도덕적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나중에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까지 나서서 이씨를 ‘트위터 장사꾼’으로 매도했지만 대부분의 누리꾼들이 이씨를 지지하고 변호했던 것도 주목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위기가 발생하면 주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정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면서 “간절하게 기다리던 블로그 방문자들과 트위터 팔로워들이 하루 아침에 부담스러운 저주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 대표는 “전략적 메시지를 공급해 의미 있는 SOV(여론 점유율, Share of voice)를 빨리 확보하는가가 위기관리 초기 단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전략적 메시지는 개인의 메시지나 한 부서의 애드립이 아니라 합의된 메시지, 공유된 메시지, 검증된 메시지가 돼야 한다”면서 “위기관리 전략에 앞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고 노하우나 스킬은 그 다음”이라고 강조했다. 강함수 에스코토스컨설팅 대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행동 방식을 예측해 단계적으로 위기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사전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관계망의 밀도가 높은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는 아주 작은 사건도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면서 “적극적이고 예방적인 위기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강 연구원은 “진정한 위기관리는 문제가 있거나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기업 행위를 내부적으로 조사·확인하는 것과 이러한 행위를 중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면서 “이는 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나 정치집단, 정치인에게도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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