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참사가 일어났을때 사고대책본부에는 실종신고가 3백건 이상 접수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중에는 삼풍참사와 관계없이 가출 또는 다른 이유로 실종된 사람도 끼어 있어 결국 대책본부가 다시 접수를 받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 사례도 실종자를 찾으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웃지못할 오보다.

92년 4월 22일 SBS는 최아무개씨가 3년전에 잃어버린 딸 에스더양을 찾는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딸이 실종된 후 가산까지 정리, 뻥튀기 장사를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애틋한 사연이었다. 당시는 대구 개구리소년들의 실종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최씨의 호소는 다음날 조간신문부터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경찰은 전담반을 편성, 수사에 나섰고 실종자가족협회는 물론 새마을운동본부·바르게살기운동협회등 관변단체들까지 ‘에스더양’ 찾기에 나섰다. 교육부도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생들에게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고 내무부는 특별호구조사와 긴급반상회를 열기도 했다. 마치 온나라가 ‘에스더양’ 찾기 신드롬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러던중 첫 보도가 나간지 만이틀만에 이 보도는 최씨가 꾸민 자작극임이 드러났다. MBC가 에스더양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같이 서울 홍제동 지하셋방에 살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두 모녀는 이날 TV에 출연, 최씨의 의처증과 구타를 못이겨 가출했다고 진술했다. “딸이 신장에 살고 있는데 감시가 심해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는 내용의 전화를 해왔다”는 최씨의 말은 거짓임이 드러났고 이로 인해 언론과 국민들은 최씨의 자작극에 철저히 놀아났다.

그런데 보도과정을 추적해 보면 최씨의 자작극은 처음부터 석연찮은데가 많았다. 언론이 보다 면밀히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보도는 막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취재는 SBS기자가 우연히 실종자가족찾기협회에 들러 에스더양의 전화육성 녹음테이프를 입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최씨를 만난 기자는 최씨가 딸을 찾기위해 뻥튀기 행상에 나서면서도 혹시 걸려올 지 모를 딸의 전화에 대비,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녹음장치도 해두었다는 애절한 사연도 들었다.

기자는 최씨와 함께 옛날집을 방문, 정황취재를 하던중 인근 부대 초병이 “아저씨 또 오셨네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확실한 심증을 갖게 됐다고 한다.

기자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후배기자를 시켜 원점에서부터 취재를 하게 했으나 결론은 마찬가지였다”며 결과적으로 오보가 나가게 된데는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안은 개인이 정보를 조작할 경우 달리 확인할 수 있는 방도가 마땅찮다는 점에서 오보를 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아무리 감시가 심하더라도 딸이 3년만에 전화를 걸 수 밖에 없었는가 △부인의 소재는 왜 처음부터 따져보지 않았는가 △왜 3년이 돼서야 공개수사를 요청했는가 등 초동취재 단계에서 이런 의문들을 면밀히 검토했다면 이처럼 실소를 자아낸 오보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취재원이 정보조작을 하려고 마음먹고 나올때 오보를 피하기 어려운 것만은 분명하다.

오광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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