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권력의 언론 탄압은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30년 장기집권의 수하르토 정권 역시 자유언론에 대해서는 가혹한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70 ∼ 80년대에 한국언론이 겪었던 상황은 오늘의 인도네시아 언론상황과 너무 흡사합니다.”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94년 6월 2일 폐간된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시사주간지 <템포>의 편집국장이었던 구나완 모하마드씨(54). 시인 자격으로 7월 15일 방한한 그는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독재정권에 맞서는 자유언론이 걸을 수밖에 없는 수난의 길을 재확인하면서도 그것이 갖는 ‘희망’을 찾아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템포’는 약간의 뉘앙스 차이는 있지만 우리말로 ‘시대’라고 번역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어다. 지난해 폐간 당시 발행부수 25만에 이르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시사주간지의 하나였다. 71년 창간된 <템포>는 지식인과 중산층을 주독자로 하는 비판 저널리즘을 일관되게 유지해와 인도네시아 자유언론의 상징이기도 했다.

수하르토 정권에 대한 비판적 기사로 정부와 자주 마찰을 빚어왔던 <템포>가 폐간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봄 정부의 무기 구입 스캔들을 다룬 기사 때문이었다. 옛 동독 무기도입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하자 정부는 ‘보도윤리 위반’과 ‘사회불안 조장’이라는 이유로 폐간이라는 극약 조치를 취했다. 신문평의회를 거치도록 돼 있는 절차마저 무시한 채 전격적인 발행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수하르토 정권에 <템포>가 얼마나 껄끄러운 존재였던가를 짐작케 해주는 정부의 이러한 신경질적인 대응은 그러나 발행정지 무효소송을 제기한 <템포>의 법정 투쟁에 승리를 안겨주는 결정적인 실책으로 기록되게 됐다. 바로 이같은 절차상의 하자를 들어 자카르타지방법원은 지난 5월 3일 발행정지 무효처분을 내렸다.

모하마드씨는 “정부의 폐간 조치는 오히려 언론민주화운동과 사회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폐간에 항의해 자카르타 시민들이 처음으로 거리로 뛰쳐 나왔고 수하르토정권에 비판적인 현직언론인과 재야언론인들이 독립기자연합(AIJ)을 결성, 정부의 언론탄압등에 공동대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AIJ가 결성되자 정부는 탄압의 고삐를 더 죄었다. AIJ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3명의 언론인들을 구속하고 AIJ에 가입한 언론인들을 해직하도록 언론사에 압력을 넣기도 했다. AIJ에는 현재 3백여명의 언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98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불만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정부의 언론통제는 더욱 교묘해질 것 같다”는 모하마드씨는 “재야의 비판적 언론인들이 제도언론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컴퓨터 통신등 새롭고 자유로운 매체를 활용하는 방법등에 관심이 많다”고 소개했다.

방한 기간중 언론단체등을 둘러본 모하마드씨는 “한국 언론의 경험은 언론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언론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인도네시아의 민주화운동에 한국의 민주적인 세력과 언론인들의 많은 관심과 연대가 있었으면 한다”고 그 소감을 피력했다.

<템포>의 발행정지 무효소송은 정부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해 현재 2심에 계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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