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집값이 바닥을 치고 오를 것처럼 분위기를 띄우던 보수·경제지들이 비관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집을 보유한 가난한 사람들, 이른 바 '하우스 푸어'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언론의 논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정부가 온갖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부동산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금리까지 인상되면 가뜩이나 침체 국면의 부동산 시장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폭탄이 터질 시점이 머지않았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4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박아무개씨의 사연은 하우스 푸어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박씨는 지난 2008년 3억5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 방식으로 2억원을 대출 받았다. 지난 3년 동안은 달마다 이자만 110만원을 내면 됐는데 올해부터는 원금까지 일부를 상환해야 해서 달마다 은행에 내는 돈이 370만원으로 불어났다. 박씨의 수입은 400만원 수준, 원리금을 상환하고 나면 최소한의 생계유지도 힘든 상황이다.

물론 박씨도 3년 전에는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자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고 여차하면 아파트를 팔아서 대출을 상환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씨의 아파트는 이미 3천만원 가까이 빠진 데다 그나마 거래도 잘 안 된다. 만약 부동산 대세하락이 본격화하고 금리가 치솟는다면 박씨는 꼼짝없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선일보가 박씨 같은 하우스 푸어의 존재를 심각한 사회적 현상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하우스 푸어는 과도하게 돈을 빌려 투자하는 계층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경우"라는 입장이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소장은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자산을 부동산에 올인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극히 일부에서 겪고 있는 국지적인 현상"이라고 답변했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지금은 "하우스 푸어가 몇 명인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앞으로 늘어날 것이란 것만은 확실하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조선일보 4월4일 8면.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한국에 하우스푸어가 양산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면서 "무엇보다 재테크를 부동산에 올인하는 습관이 첫 번째 이유"고 "거치기간이 끝나면 원금도 같이 갚아야 해 가계의 부담이 3~4배로 급증하는 대출 방식도 문제"라며 나름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 가계의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보통 79.6%에 달해 미국이나 일본의 두 배 수준인 데다 무리한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조선일보는 왜 반 년 전에는 이 같은 사실을 경고하지 않았을까. 반 년 전에는 없던 하우스 푸어가 갑자기 생겨났나. 과도한 가계부채와 투기적 거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막바지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 2008년에도 조선일보는 오히려 대세 상승이 시작됐다며 투기를 조장했다. 하우스 푸어가 지난해부터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지만 조선일보는 그때도 침묵했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왜 이제 와서 입장을 바꾼 것일까. 일단은 부동산 시장이 대세 하락 국면으로 돌아섰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하기 어렵게 됐고 정부가 쏟아낸 온갖 부동산 대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으며 사상 최대 수준의 가계부채와 하우스 푸어 문제가 시한폭탄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런데 이 신문의 '진단'은 엉뚱하다. 이 신문은 "은행들, 하우스 푸어 나몰라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금리가 올라도 대출 받은 사람이 금리 상승의 부담을 모두 떠앉고 은행은 아무런 부담을 지지 않는다"며 "담보 잡고 돈 빌려주는 행태는 전당포와 다를 게 없다"고 엉뚱하게도 은행들에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 신문은 위기의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려는 것처럼 보인다.

조선일보의 주장에 따르면 은행들이 애초에 대출을 해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우리나라 주택 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은 평균 46.2%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기 전인 2007년 미국(79.4%)보다 훨씬 낮다"는 대목에서 상충된다. LTV를 더 높여서 은행들도 부담을 함께 떠안아야 한다는 말일까. 아니면 고정금리로 대출을 해줘야 한다는 말일까. 어느 것도 억지주장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은행들이 과도하게 부동산 담보 대출을 늘려왔던 것도 위험요인이긴 하지만 이에 앞서 부동산 담보 대출 비율을 끌어올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게 우선돼야 논리가 맞다. 아울러 이런 위험을 사전에 경고하지 못하고 무책임한 선전·선동 보도로 부실을 키워왔던 언론의 반성도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 신문은 마치 은행의 탐욕이 이런 위기를 초래한 것처럼 딴죽을 걸고 있다. 핵심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본질을 호도하는 기사다.

물론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다른 보수·경제지들이나 상당수 진보적 성향의 신문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부에서는 일찌감치 3~4년 전부터 지금이라도 부동산 거품을 빼고 가계 부채를 줄여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이 이를 무시했고 거품을 더욱 부풀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최근 들어 하우스 푸어 문제를 다루는 기사가 늘어나고 있지만 핵심을 짚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는 건 언론의 반성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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