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회장 북경발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지난 4월13일 중국 북경에서 북경주재 한국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오찬을 겸해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이회장은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조건으로 정부의 경제정책 및 삼성그룹과의 관계, 삼성의 중국진출 전략, 강택민 국가주석과의 면담내용등에 관해 대체적으로 솔직한 입장을 밝혔다. 특히 행정규제가 완화된 것이 무엇이 있느냐”등의 이회장의 발언내용은 큰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정부의 ‘삼성그룹 제재설’로까지 연결되기도 했다.

이를 처음 보도한 언론사의 북경특파원은 이회장의 발언을 기사화 하지 않고 ‘정정보고’로 올렸으나 회사간부들이 “오프 더 레코드를 지킬 필요가 없다”며 기사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비보도’ 약속을 지킨 기자들은 결과적으로 ‘물을 먹는’(언론계 은어로 낙종을 뜻함) 꼴이 되고 말았다. 이 보도가 나간후 다른 언론사들도 이회장 발언을 보도했다.

비보도 약속의 범위와 한계가 불분명한데 따른 해프닝이었다. 이와 관련 ‘비보도’결정의 최종권한은 담당부서 부장급간부나 편집·보도국장에게 맡기는 등 분명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평양시민 1백만명 강제이주설

지난 6월2일 신문 1면 머릿기사로 보도된 ‘평양시민 1백만명 강제이주설’도 ‘오프 더 레코드’관행이 없어 나오기 힘든 기사였다. 권영해안기부장은 6월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초청, ‘비보도’를 조건으로 당시 북한정세 전반에 관해 브리핑을 하면서 문제의 평양시민 강제이주설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이 “기사가 된다”며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권부장은 잠시 생각한 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이에 동의했다.

이튿날 보충자료까지 만들어 보냈다.

취재원이 요구한다고 해서 ‘비보도’요청이 무조건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권안기부장이 처음부터 ‘비보도’의지가 있었는지와 관련해 언론게에서 상당한 의혹과 논란을 낳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발표할 경우 “북한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을 염려해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기사화하는 형식을 취하기 위해 ‘오프 더 레코드’를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박찬종의원 가장 많이 활용

정치상황에 비추어 대단히 중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언론에 작게 취급되도록 하면서 일반에 알려지도록 하는 기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실명이나 출처를 달 경우 주요기사로 올릴 수 있으나 익명으로 될 경우 가십정도로 갈 수 밖에 없는 언론사의 사정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다. 기자들은 이를 ‘가십플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90년 4월 박철언씨가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의 3당합당과 과련한 비화의 일부 내용을 은밀하게 공개한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치인들 중에서는 박찬종의원이 ‘오프 더 레코드’를 가장 많이 거는 정치인으로 알려져있다. 박의원이 정치부 기자들로부터 비판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다.정치부 기자들에 따르면 바의원은 “자네한테만 알려주는데”라며 ‘비보도’를 조건으로 정보를 제공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다른 기자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대중씨는 비보도를 자주 요청하면서 이를 적절하게 활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자와의 신뢰관계 형성을 겨냥한 측면이 있으나 당론의 변화등을 사전에 예고해주는 효과도 노린다는 것이다.

김영삼대통령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보도를 요청할 만한 일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종필자민련총재는 오프 더 레코드라는 제도에 가장 엄격하고 철저한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오랜 관직생활 경험에서 몸에 뱄다는 것이다.

김총재는 특정사안에 대해 본심을 털어놓거나 누구를 비방할 경우 비보도를 요청하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강도 높게 항의한다는 것.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