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년 가까이 진행한 5·18 고소고발사건에 대해 불기소처분(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린 것은 진상규명을 통해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고소 고발자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불기소 처분(공소권 없음)이라는 목표를 미리 정해놓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척 했을 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필자는 이 사건 수사와 관련, 작년 12월 13일 검찰에서 고발자나 피의자가 아닌 제3자 임장에 서서 10시간 30분 동안 참고인 진술을 했었다.

89년 1월26일 필자가 국회청문회에서 역시 제3자 입장에서 증언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만 소요시간이 청문회에서는 2시간 30분이었던 반면 검찰에서는 그보다 4배가 넘는 10시간 30분이라는 긴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이 공개되지 않는 검사실에서 진행됐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필자는‘왜 나를 참고인 진술자로 선정했는냐’고 질문했었다. 담당검사는 5·18 관련 서적중 필자가 쓴‘10일간의 취재수첩’이 가장 객관적으로 서술됐기 때문이라고 답변하면서 필자에게 ‘직접 목격한 사실’만 진술하기를 요구했었다. ‘광주’사건 후 필자가 확인한 사실이나 취재했던 내용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술을 거부당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검찰이 ‘불기소쪽으로 가겠구나’라는 심증을 굳혔었다. 검찰은 필자가 현장에서 사태진전을 일관성있게 지켜보면서 취재했고 이에 관해 두 권의 책을 발간, ‘광주’에 관한 한 어느정도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저 수용하지 않은 채 ‘당신같은 제3자의 진술도 받았으니 수사는 제대로 또 공정하게 진행했다’는 사실을 내세우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필자는 중간에 진술을 거부하고 싶은 충동을 몇번 느꼈으나 그래도 한가닥 진실규명과 관련자 처벌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속에 끝까지 참았었다.

검찰이 ‘공소권 없음’을 결정하면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과 관련, 상황을 악화시켜 살상 행위로까지 이어졌으나 신군부측이 광주 유혈 사태와 같은 상황을 의도적으로 촉발 또는 기도했다고 볼만한 증거자료나 관련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광주’사건을 정권 장악의 수단으로 사전에 음모했을 가능성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5월 17일 주요지휘관회의 회의록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일개 동창회나 계모임에도 회의록을 작성보관하는 것이 통례인데 전군지휘관 회의 그것도 국가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록이 없어졌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회의록이 없어졌다는 것은 이 회의에서 5·17 조치만을 논의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신군부의 집권 계획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높고 그 과정에서 ‘광주’에 관한 사전 작전이 거론됐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떨굴 수가 없다.

환언하면 자신들의 구체적 집권음모가 노출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작성된 회의록을 파기했을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역사적 대기록인 주요지휘관 회의록이 없어질 수 있겠는가?

이밖에도 사전음모의 정황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계엄사령부가 학생들의 시위를 자제하도록 당부하고 재야 인사의 성명을 신문에 싣지 못하게 한 것이나 가급적 작게 싣도록 한 점, 5월 17일 당국의 대응조치를 관망하기 위해 시위를 중지하기로 결의한 전국 56개대학 학생회장단을 연행해간 점, 5·17조치 나흘전 시위진압을 전제로 사전에 이미 공수부대의 광주이동을 명령한 점, 김대중과 만나지 않은 정동년을 ‘김대중 배후조종’에 의해 광주사태를 일으킨 주모자로 몰아 붙여 사형까지 선고한 점.

항쟁기간 시위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신혼부부나 40대 부부는 물론 정상적으로 일하는 직장인 심지어 주부들까지 마구 두들겨 패거나 연행한 점. 5월 18일 오후 3시 공수부대가 광주시내에 투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호용 공수특전단 사령관이 동국대에 주둔중인 최웅 11여단장에게 ‘우리 애들이 밀리고 있으니 빨리 출동하라’고 명령한 점.

있지도 않은 광주교도소 습격사건을 발표한 점. 시내를 빠져 안전지대로 가려는 시민을 오히려 되돌려 시내로 들어가게 한 후 뒤에서 총질을 마구 한 점 등 사전음모계획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지고 있는데도 검찰은 ‘광주’ 사건이 사전음모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고 결론짓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검찰이 12·12 사태나 ‘광주’사건이 신군부집권을 위한 일련의 불법적 과정이었음에도 헌정단절을 피하기 위해 ‘공소권 없음’이라고 결정한 것은 현정권이 그들의 계승자임을 스스로 노정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고소 고발자들은 전두환, 노태우씨 등 관련자들의 집권기간동안 행해진 통치행위를 무효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법적 집권에 대한 응분의 형사상 책임을 물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 불법적 쿠데타가 발생, 사전에 적발돼도 처벌할 수 있는 명분이 없어진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성공한 쿠데타는 면죄해주고 실패한 쿠데타만 처벌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성공한 쿠데타도 엄정하게 처벌해야 된다는 기록을 꼭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쿠데타의 악순환에서 헤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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