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3일자 신문에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의 비보도 요청을 깨고 ‘전직 대통령 4천억원대 가·차명 계좌 보유설 확인’이라는 기사를 단독으로 내보낸데 대해 언론계 내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압축된다.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내보내는게 당연했다’는 반응이 많지만 조선이 다른 신문사들을 철저히 물을 먹인데 대해서는 비판적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 전장관과의 회동 자리에 참석했다가 서 전장관의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여 데스크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가 된통 서리를 맞게된 타사 기자들의 반응은 매우 격렬하다.“조선이 기사를 내보낸 것 자체를 문제 삼을 것은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들이 동의한 ‘오프’를 깰 때에는 최소한의 양식은 있어야 하는 것 아냐. 보통 이럴 경우 사전에 타사 기자들에게 연락해주는 일반적인 관행은 지켰어야 했다”는 것이다.조선은 이런 관행 자체를 아예 무시했을뿐더러 초판부터 기사를 게재하지 않은 것은 단독 보도하려는 욕심 때문에 ‘최소한의 상도의’마저 무시한 처사라고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 기자는 “조선이 국민들의 ‘알권리’를 우선했다면 당당하게 초판부터 보도해야 했다”며 “다른 기자들이 기사를 안쓴 것은 서 전장관의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이 참석했던 동료기자들을 고려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 기자들의 반응에서 주목되는 점은 다수 기자들이 “앞으로 동일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인 경우 이를 지킨 것”이라고 말하는 점이다. 취재원과의 신사협정이라고 할 수 있는 비보도요청을 마구 깨는 것은 직업윤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비보도 요청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상황을 외면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비보도를 전제로 듣는 이야기들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당장 기사화하기 어렵더라도 언젠가 다른 경로를 통해 기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보도 약속을 마구 깨는 것은 기자들 스스로 취재영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기도 하다.

그러나 언론사 내에서도 이번 사안에 관한 한 비보도 요청이 있어다고 해서 이를 기사화하지 않은 것은 ‘오프 관행’에 사로잡혀 사안의 중대성을 간과한 ‘실수’라는 지적이 많다.

그같은 중대 사안을 접하고도 비보도 요청이 있었다는 이유로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은 기자들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것이다. 최소한 언론사 차원에서 보도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는 주었어야했다는 것이다.

또 7명의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사안에 대해, 그것도 구체적으로 언급한 이상 비보도 요청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언론사 밖에서 보는 입장은 보다 원칙적이다. 서울대 강명구 교수(신문방송학)는 “국가의 기밀사항도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폭로하고 보도하는게 언론이라는 점에서 볼 때 비보도 요청이 있었다고 이를 보도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비보도 요청을 존중하는 것도 기자들의 중요한 직업윤리중 하나 일 수 있으나 당연히 알려야 할 것을 알리는 것은 더 중요한 직업윤리”라고 지적했다.

외국어대 정진석교수(신문방송학)도 “무엇보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면서 비보도를 요청한 것은 언론을 우습게 본것이라는 측면에 더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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