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열린 문화방송 100분토론이 김여진씨의 매우 차분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또 하나의 화제는 함께 출연한 한국경제신문의 한 논설위원이 삼성그룹의 탈세 문제를 거론하면서 “워렌 버핏이 상속세를 100% 탈루한다”고 한 발언이다. 이 발언에 대해 필자의 트위터 친구들이 논평을 요청해 이 글을 쓰게 됐다. 

100분토론에서 그 논설위원의 발언은 이른바 한국의 주류 언론이라는 곳이 얼마나 한국경제 전반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대해 시간 제약 등의 이유로 경제적 측면에서 논리적인 반박은 충분히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의 주장이 한국 사회경제 현실 전반에 관해 상당히 폭넓게 이뤄진 것이어서 필자 또한 이 글에서 모든 쟁점을 다 다루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삼성그룹 탈세문제와 상속세 문제 등에 관한 그의 주장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를 설명해보기로 하자.

우선, 삼성그룹의 탈세 문제와 관련한 해당 논설위원의 발언부터 먼저 살펴보자. 그는 “상속세 65%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이라며 “이상에 기초해 법을 만들면 범죄자가 양산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의 워렌 버핏도 상속세를 100% 탈루(이 경우 사실은 탈세가 정확한 표현)한다. 아들 하워드 버핏이 있는 재단에 재산을 기부해 하워드 버핏의 경영권을 지켜준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워렌 버핏이 상속세를 100% 탈세하고 있을까. 그는 하워드 버핏이 있는 재단에 재산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하워드 버핏이 재산을 물려주면서 경영권을 지켜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워렌 버핏은 자신의 사후에 하워드 버핏을 비롯해 자신의 세 자녀에게는 300만 달러만 남기고 전 재산 470억 달러(약 60조원)를 자선재단에 기증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가 재산을 기증하는 재단은 하워드 버핏이 운영하는 환경운동 재단은 일부일 뿐이고, 대부분의 재산이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 외부 재단에 기부하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재산을 외부 재단에 기부하는데 어떻게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말인가. 이 경우 상속을 하지 않으니 당연히 상속세가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상속세 과세 사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일 뿐이지 결코 탈세가 아니다. 

또한 아들인 하워드 버핏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것도 아니다. 버핏은 2006년 금융기업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아들 하워드 버핏(51)을 후계자로 지명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의 지위를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회장'이라고 못박았다. 단지 버크셔 해서웨이의 기업문화를 지켜가기 위한 또 하나의 안전장치로서 그를 회장으로 지명한 것일 뿐이다. 더구나 앞서 말했듯이 그는 사후에 거의 전 재산 모두를 외부 재단에 기증하기로 했기에 아들이 물려받을 지분도 없는 상태다. 삼성그룹을 비롯한 국내 재벌들의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 논설위원은 또 국내의 상속세율이 65%(실제로는 50%임)로 높아 재벌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는 그만의 주장이 아니다. 예를 들면, 감세정책 입안자인 강만수 장관이 재직하던 2008년 10월, 기획재정부는 30억 원 초과 상속세(증여세)의 최고세율을 50%에서 33%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 한국이 OECD 국가들 가운데 일본과 함께 상속세율이 가장 높아 국부 해외 유출이 우려되고, 상속세를 낮추는 국제추세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국내의 명목 상속세율이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낮은 편이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선진국 대부분이 여전히 상속세를 유지하고 있고, 세율도 결코 낮지 않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말 현재 OECD 상속세 평균세율은 25.2%다. 한국과 일본이 50%로 가장 높고 미국 45%, 프랑스· 영국(40%) 독일(30%) 등이 뒤따르고 있다.

더구나 더 중요한 것은 실효세율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상속세율은 각종 공제혜택이 많아 실효세율은 미국이나 유럽국가에 비해 결코 높지 않고 오히려 낮은 편이다. 기초공제(2억 원), 일괄공제(5억 원), 배우자공제(5억~30억 원), 금융재산공제(최고 2억 원), 신고세액공제(10%) 등 많은 공제제도가 있어서 수십억 원대 자산가도 상속세 부담이 상당히 작다.

<도표>를 보면서 실효세 부담을 따져보자. 2008년 사망으로 상속세 과세 여부를 따져야 하는 인원 38만3001명 가운데 실제 상속세가 과세된 인원은 1% 정도인 3997명이었다. 전체 사망자의 유가족들 가운데 상속세를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인원이 1%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속세를 부담한 사람들의 세 부담은 컸을까. 그것도 아니다. 상속세 과세 대상 3997명이 물려받은 상속재산은 모두 7조5023억원, 이들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모두 1조3329억원이었다. 상속재산 대비 실제로 납부한 세금은 평균 17.8%였다. 

   
(주) 국세통계연보로부터 KSERI 작성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상속세 부담이 과중하다는 얘기는 결코 하기 어렵다. 전체 과세 대상 피상속자의 74%에 해당하는 상속재산 20억원 이하 상속자들이 낸 세금은 상속재산의 2~5% 대에 불과했다. 30억원 이하는 11.2%, 50억원 이하는 16.9%로 크게 높은 편이 아니다. 100억~500억원 상속자 74명이 34.3%, 500억원 초과 상속자 5명이 47.9%의 세금을 냈을 뿐이다. 과세대상에 해당하는 피상속인 가운데 단 2%, 전체 사망 유가족의 0.02%인 79명이 전체 상속세의 49%를 냈을 뿐이다. 이처럼 극소수 부유층에게만 상속세 부담이 높을 뿐 대부분 계층이 내는 상속세 부담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그 논설위원의 주장이나 일부 재벌계 경제연구소가 상속세 인하를 외치는 것은 재벌기업들의 상속세 부담을 줄이자는 주장일 뿐이다. 심지어 삼성경제연구소는 2010년 4월 발간한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긴급제언‘이라는 보고서에서 상속세 부담이 커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며 상속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다. 아무리 재벌계 연구소라고 하지만 온갖 명목으로 삼성가 민원 해소용 주장을 남발하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

이런 판에 강만수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장은 “국내 상속세율이 너무 높아 국내 자본의 해외도피가 일어난다”며 상속세 세율 인하를 고집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상속세는 기업이 아닌 개인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현재 국내 재벌들처럼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하는 기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탈불법적인 상속이 난무하지만, 엄연히 상속세는 개인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개인에 대한 세금 때문에 왜 기업 자본의 해외도피가 일어난다는 말인가. 정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국내 재벌의 봉건적 경영권 세습체제와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더구나 미국이나 유럽 등 대부분 선진국의 조세 부담률은 한국보다 5~10% 포인트 이상 높다. 개인 소득세나 법인세, 부동산 보유세, 자본이득세 부담 등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비자금 조성이니 탈세니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국내 재벌기업 일가들이 국내 상속세 부담이 커서 해외로 도피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협박에 불과하다. 국내 재벌기업들이 선진국에 가서 국내처럼 했다가는 뼈도 못 추리기 십상이다.

정 상속세 최고 세율을 낮추고 싶다면 전제가 있다. 보유 자산에 대한 세금을 제대로 내게 하고 비자금 조성과 탈세를 철저히 엄단하라. 그리고 법인세도 OECD 평균 실효세율만큼 높여라. 그러면 상속세 최고 세율 부담을 줄일 세수 여력은 얼마든지 생길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봉건적 경영권 세습 행태를 멈추고, 지배구조 개혁에 나서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상속세 최고 세율도 인하할 수 있다.

하지만 재벌 일가들이 원할 리 없다. 자신들이 국내에서 누리는 엄청난 초법적 특권은 생각도 않고, 상속세 최고 세율을 가지고 생떼를 쓰는 모양새는 정말 볼썽사납다. 재벌기업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이들을 위해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지 못해 안달인 현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나 그들의 광고를 하나라도 더 따내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는 더 볼썽사납다. 

마지막으로 그 논설위원은 이건희 회장 등 재벌들이 법에 따라 재판받고 처벌을 받았으니 뭐가 문제냐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물론 이건희 회장에 대한 검찰 기소와 법원 재판 절차가 형식적으로 진행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폭로했듯이 삼성이 많은 탈불법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으며, 특히 처벌을 피해가기 위해 판사와 검사, 국세청 관리 등을 매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같은 삼성의 ‘돈의 힘’ 때문에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법치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상식 아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바로 이건희 회장이 삼성특검에서 밝혀진 것만 4조50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자들이 받은 미약한 처벌이다. 법원 최종심에서 이건희 회장은 자신 소유의 주식을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하면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양도소득세 465억원을 포탈하고 1999년 2월 이재용 씨 남매에게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로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부분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학수, 김인주 등 삼성 관계자 5명도 역시 징역 2년6월~3년을 선고받았으나 역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이들 여섯 명은 모두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고, 단 하루도 복역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회장은 단 139일만에 초고속 특별사면을 받았고, 다른 관계자들도 대체로 약 1년 만에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 땅의 ‘보통사람들’은 도저히 상상하기도 힘든 관대한 처분이었다. 그리고 이 회장은 특사를 받은지 단 3개월만에, 그리고 회장직을 물러난 지 2년여 만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에 다시 복귀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회장은 특사로 풀려난 뒤 2010년 2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말 기가 막힌 현실이다. 세상을 온갖 비리와 부정, 탈세를 저지른 사람이 국민더러 정직하라고 훈시한 것이다. 더구나 이에 대해 정 위원이 몸담고 있는 한국경제신문을 필두로 대다수 언론은 이 회장이 ‘화두를 던졌다’고 표현할 뿐 ‘범법자’인 이 회장의 적반하장에 대해 문제조차 제기하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렇게 최소한의 옳고 그름도 따지지 않는, 가치가 전도된 세상에 살고 있다. 실로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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