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발생 초기에 어느 지방MBC는 삼풍 참사 보도를 중계하지 않고 다른 시사대담 프로그램을 방송하다가 열화와 같은 항의를 받고 도중하차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연이어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그 방송사의 편성국장과 보도국장이 보직해임을 당했다고 한다.
사실 삼풍 참사현장에서 한사람의 생명이 사건 발생 보름이후에 극적으로 구조되는 상황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그 눈물겨운 감격이란 따지고 보면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동시에 이 기막힌 ‘사고공화국’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 그것이 뒤섞인 것이었으리라.
아무튼 삼풍참사를 보도하는 언론사간 취재·중계 경쟁은 정신없었고 그 속보경쟁의 대열을 잠시 외면했던 한 지방TV사의 고위간부는 가차없는 징계를 당했다.
여기서 문득 1980년 5월을 생각한다. 광주시내 백주대로에서 대한민국의 계엄군들이 무고한 양민들을 대검으로 찌르고, 두개골을 곤봉으로 박살내던 살육의 시간이 계속될 때 1980년 5월 18∼20일 TV방송사들은 비키니수영복을 입고 미소를 흘리는 세계 미녀들의 몸매를 중계하거나 쇼·오락 프로를 정규편성대로 방송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규군이 광주의 양민들을 향하여 정조준 사격을 계속하고 있을 때 TV화면에는 ‘사망자 없음’ ‘불순세력의 선동에 동요말라’ 등의 자막이 흘러나갔다. 시민들이 지키고 보호해야 할 언론사는 거꾸로 부도덕한 국가권력이 총을 들고 지켰고, 시민들은 거짓말하는 언론사를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분명히 언론은 시민의 반대편이었다.
이때 한 방송사가 성난 시민들에 의해 통째로 불에 탔고 시민들은 화염이 치솟는 방송사 화재현장을 보면서 승리의 환호와도 같은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그 뒤로 15년이 흘렀다.
나는 오늘 해괴한 공상 같은 걸 하고 있다. 만일 1980년 5월, 언론사들이 광주에서 생중계 경쟁을 벌였더라면, 그리고 생중계 경쟁대열에서 이탈해 엉뚱한 쇼 프로그램의 편성을 지시한 반 인륜적이고 반역사적인 방송사 고위간부를 가차없이 징계했더라면, 가까운 시일안에 광주 5월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오늘 가져보는 공상도 역시 공상 아닌 현실로 규명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