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메가톤급 태풍을 몰고온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전직 대통령 4억억원대 가차명 계좌 보유’ 발언내용이 조선일보에 단독으로 첫 보도된 것은 강원지역에 배달되는 3일자 신문(20판)부터였다. 서울 시내에 깔리는 초판(10판) 다음에 찍은 것이었다.

1일 저녁 서장관과 자리를 같이했던 기자들이 소속한 언론사는 물론 그 어느 신문 초판에도 서장관 발언내용이 보도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였다. 조선일보만의 단독보도로 ‘특종’을 울리는 간이었다.

이 날자 조선일보 초판 1면 머릿기사에는 ‘불법과외 대대적 단속’이라는 다소 한가한 기사가 실렸었다. 일종의 ‘위장’이었다. 신문사들은 매일 초판을 낸후 다른 신문사의 초판을 받아보고 빠진 기사가 있는지를 챙겨본다.

이런 점 때문에 ‘특종’이 있을 경우 타사를 의식, 보통 초판에는 기사를 싣지 않는다. 심한 경우에는 서울 주요 지역에 배달되는 신문을 찍을 때까지 기사를 내보내지 않기도 한다. 다른 신문사들이 판갈이를 하면서 기사를 내보낼 기회를 주지않기 위해서이다.

다음날자 초판이 나오는 시간은 오후 7시께(원고마감 오후 5시 안팎). 서 전장관 발언내용이 ‘전직 대통령중 한사람 4천억대 가·차명 계좌’라는 제목으로 1면 머릿기사로 실린 3일자 조선일보 20판은 초판보다 1시간 뒤인 2일 오후8시께 인쇄돼 수송차량에 실렸다.

조선이 서장관 발언내용을 기사화하기로 한 것은 이미 초판을 찍기 전에 결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초판이 나가기전 이를 기사화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기사는 20판부터 내보내기로 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장 주재아래 주필과 편집국장등이 참석한 간부회의를 두세차레에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화하기 전에 한차례 회의를 갖고 서전장관 발언내용이 보도될 때 예견되는 파장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간부들이 기사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의견은 기사를 내보내야 한다는 쪽이었다는 것.

조선일보는 20판 기사에서는 발언 당사자를 ‘여권 고위관계자’라고 익명으로 처리했으나 30판 기사 부터는 ‘서석재 총무처장관’이라고 실명처리해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비보도를 전제로 한 자리였던 만큼 실명 처리만큼은 곤란하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보도가 나가면 어차피 발언당사자가 밝혀질 것일 만큼 실명처리하기로 결론이 났다.

반면 기사 제목은 당초 ‘전직 대통령중 한사람 4천억원대 가·차명계좌’라고 단정적인 제목에서 ‘전직 대통령중 한사람 수천억 가명계좌 소유설’로 바뀌었다.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판갈이 할 때마다 제목과 기사내용을 놓고 신중한 검토가 이어졌다.

서석재 전장관이 조선일보의 보도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일 밤 11시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일보측이 서장관에게 기사가 나간다는 사실을 통보했던 것. 서장관은 즉각 “기사를 빼달라”고 요청했으나 묵살당하자 “그렇다면 익명으로라도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보좌관을 조선일보에 보내 ‘수습’에 나서기도 했으나 엎지러진 물을 주어담기에는 이미 늦은 때였다. 기사를 쓴 기자는 서 전장관에게 개인적으로 “오프를 깨게 돼 미안하다”고 연락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일보가 서 전장관의 ‘전직 대통령 4천억 가차명 계좌 보유발언’을 단독 보도할 수 있었던 것은 1일 서 전장관과 자리를 같이했던 타사 기자들이 이같은 내용을 데스크에게 보고조차 하지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은 서 전장관의 ‘비보도 요청(off the record)’을 고려했던데 따른 것으로 어쨌거나 다른 언론사들은 ‘원천적으로’물을 먹은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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