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서부지원이 국민일보에 대해 내린 판결은 언론사의 입장에서 볼 땐 자못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정정보도 청구소송 사상 처음으로 10일간(미발행일수 제외) 연속으로 개별 기사에 대한 반론문을 게재하는 한편 이중 3회를 1면 머리에 실으라는 판결이 나온데 대해 언론계의 당혹감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연속기사에 대해 동일횟수에 맞춰 반론을 보장하라는 판결이 나온 경우가 드물뿐더러 대개 1~2단 크기내에서 처리돼 온 것이 관행인 만큼 1면 머리기사 자리에 반론문을 게재하는 것은 일단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이다.(지금껏 1면 머리에 정정보도문이 나간 것은 89년 조선일보가 문익환목사 보도와 관련, 오보를 냈던 경우뿐이다)

실제로 이번 판결에 대해 언론계 일각에서는 매 사안마다 일일이 보도대상자의 반론을 싣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도 불구, 법원이 지나치게 법규정에 얽매인 판단을 하고 있다면 “이런식으로 앞으로 어떻게 보도를 하란 말이냐”며 볼멘 소리를 터뜨리고 있다.

때문에 언론계의 실질적인 고민은 이번 판결보다 앞으로 파생될 파장에 쏠리고 있다. 언론의 사실보도에 대해 단지 보도대상자의 반론을 보장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같은 횟수, 같은 지면, 같은 밸류의 반론문을 게재해야 한다면 언론의 ‘알릴권리’가 침해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 그것이다. 국민일보 간부진들이 갖는 고민도 이런 사고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번 보도가 장기기증본부(본부장 박진탁)라는 특정단체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공익차원에서 고발하려 한 것이지만 언론사가 수사권이 없는 상태에서 사실입증을 완벽히 해내기란 불가능한 만큼 일일이 매 보도마다 사실 입증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반론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상 취재를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에 대한 언론계의 속앓이는 의외로 크다. 그 원인의 하나는 반론보도와 정정보도에 대해 언론계가 같은 선상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현행 정정보도 청구소송의 취지가 반론보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언론사 간부들은 반론보도와 정정보도를 동일시, 언론사가 어떤 형태로든 보도대상자의 입장을 실어줄 경우 보도자체의 사실성이 문제된다는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가 반론문 게재를 회피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법원의 판결은 정서적으로 받아 들이기 힘들고 그렇다고 ‘파격적’인 반론문을 싣자니 개운찮은 구석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중재위나 법조계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 언론사의 입증책임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따라서 시간적 제한이나 확인의 어려움 등 여러 한계를 감안할 때 일단 1차 보도는 불가피 하더라도 보도대상자가 반론을 요구해 올 경우 이를 충분히 반영할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사가 반론요구에 대해 피해의식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언론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로 비춰질 수도 있다. 박진탁씨 소송을 대리했던 안상운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는 “언론사가 법률조항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기자교육 등을 통해 법취지를 이해시키고 반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면서 “언론사노조도 사측과의 협상과정에서 조합원 보호를 위해 오보관련 보험제 신설을 추진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단계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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