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계자들은 무릎 꿇은 대통령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행사가 끝난 뒤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단에 '사진을 배포하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3월 4일자 3면 기사로 전한 내용이다.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3월 3일 제43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우리 다 같이 이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향한 죄의 고백을 기뻐하고 진정으로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죄인의 심정으로 1분 동안 통성 기도를 하자”고 말했다.

참석자들이 하나, 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단상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곧 이어 김윤옥 여사는 무릎을 꿇으면서 이 대통령 허벅지를 찔렀고, 이 대통령 역시 함께 무릎을 꿇었다.

   
 
 
한기총 회장의 통성기도 제안에 대통령이 무릎을 꿇은 이 장면은 3월 4일자 아침신문 1면 사진 기사를 장식했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만이 1면 사진기사로 내보내지 않았을 뿐이다. 보수성향 기독교 단체인 한기총 회장의 제안에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모습은 어느 개인의 종교행사 참여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3월 4일자 1면에 도배된 무릎 꿇은 대통령의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국민들을 불편하게 했다. 아무리 ‘장로 대통령’이라고는 하나 대통령이 꼭 무릎까지 꿇으며 죄인처럼 행동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국가조찬기도회는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매년 참석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을 포함해 각계 주요 인사들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그런 자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를 포함한 정치인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표’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계 쪽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것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5년 동안 나라를 대표하라고 국민이 뽑아준 정치지도자이다. 이명박 정부의  ‘기독교 편향’ 논란을 고려해서라도 행동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게 옳다. 대통령이 특정 종교와 밀착돼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국민통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도 사람이다. 대통령도 무릎을 꿇을 수 있다. 하지만 보수성향 기독교 단체 회장의 제안에 따라 무릎을 꿇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모습은 참으로 불편한 장면이다.

한국일보는 3월 4일자 1면에 무릎 꿇은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종교의 정치개입 ‘수위’ 넘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세계일보는 <컨트롤타워 실종…국정 총체적 난맥>이라는 1면 머리기사와 함께 무릎 꿇은 대통령 사진 기사를 배치했다. 이처럼 언론도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물가폭등과 전세대란에 신음하는 서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구제역 파동에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농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정작 고개를 숙여야 하는 대상은 국민이다. 바로 서민이다. 힘없는 우리 이웃이다.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일은 많지만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기독교 쪽에서는 ‘이슬람 채권법’ 처리를 반대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반대의 중심에 한기총, 길자연 회장이 있다. 이슬람 채권법의 적절성을 떠나서 최근 기독교 쪽의 정치개입 논란은 걱정과 우려를 낳고 있다.

종교인이라고 사회 문제나 특정 현안에 입을 닫고 있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권력의 대열에서 군림하는 인상을 주거나 때로는 대통령 위에 서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면 누가 그런 행동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소망교회 전성시대’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기독교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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