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이 군부대 시찰 중 쌍안경을 거꾸로 들고 있다는 연합뉴스 보도에 대해 자유아시아방송이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제대로 들고 있는 게 맞다고 보도해 진위논란을 낳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김정은이 쌍안경을 제대로 들었든 거꾸로 들었든 북한 후계자에 대해 언론이 지나치게 선입견을 갖고 보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소식은 연합뉴스가 처음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지난 21일 낮 12시9분께 송고한 ‘쌍안경 거꾸로 든 김정은…대장 맞아?’ 제하의 기사에서 조선중앙TV 영상을 근거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칠순인 지난 16일 군부대 시찰 중이던 후계자 김정은이 쌍안경을 거꾸로 들고 현장을 바라보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연합은 북한에 대해 “그동안 북한은 김정은이 5년제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마치는 등 군 관련 경험이 풍부하다고 선전하면서 지난해 9월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주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했다”면서 “하지만 쌍안경 사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함을 보여주는 문제의 장면은 김정은의 군 경험이 일천함을 방증하는 것이어서 시선을 끈다”고 비난했다.

연합은 이어 “김정은이 당대표자회 이전부터 부친의 공개활동에 동행해 군 장악에 나섰음을 선전하려다 되레 망신을 당한 셈”이라며 “북한 매체가 김 위원장 및 김정은 관련 보도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실수’는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고 주장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이 지난 16일 군부대 시찰도중 쌍안경을 들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이 보도를 본 누리꾼과 트위터 사용자 사이에선 “김정은이 쌍안경을 들고 있는 모습이 거꾸로인지 제대로인지 확인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거꾸로 들었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연합뉴스는 4시간 가까이가 지난 이날 오후 3시54분께 ‘제대로 들었나…김정은 쌍안경 논란’이라는 기사를 다시 보도했다.

연합은 이 기사에선 “김정은이 쌍안경을 거꾸로 들었다”를 “거꾸로 들고 있는 듯한”으로 바꿨고, 누리꾼 사이에서 ‘거꾸로 들었다’ ‘제대로 들었다’는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단정적으로 보도했다가 4시간 여 만에 ‘공방’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연합의 보도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가 나와 주목된다. 북한 비판을 많이 하는 곳으로 알려진 ‘자유아시아방송’(RFA)이 그 주인공이었다.

RFA는 22일 <“김정은, 쌍안경 제대로 사용한 것 같다”> 기사를 통해 김정은의 동영상이 미국과 영국 등 외국에서도 관심을 끌었다면서도 “대부분의 전문가는 김정은이 쌍안경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고 보도했다.

RFA는 미국의 쌍안경 전문 업체인 ‘Just-Binoculars’의 짐 타라보치아 대표의 말을 인용해 “이날(22일) 오전 ‘김정은의 쌍안경’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며 그가 사용하는 쌍안경은 ‘역 포로 프리즘(reverse porro prism)’ 기능, 즉, 거꾸로 된 외형에 프리즘을 내장한 형태로 일반적인 쌍안경과 다르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은이 마치 쌍안경을 거꾸로 든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라보치아 대표는 김정은이 들고 있는 쌍안경과 같은 형식으로 제작된 쌍안경의 그림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RFA는 또 영국의 쌍안경 전문업체인 ‘Strathspey’ 의 존 번스 대표도 이날 “김정은이 들고 있는 쌍안경은 50mm의 구경에 10배의 배율(10x50)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모양이 특이하긴 하지만 제대로 들고 있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RFA는 이밖에도 북한에서 직접 군복무를 한 미국 내 탈북자도 자신의 집에 쌍안경이 있어 김정은이 들고 있는 쌍안경과 비교해 봤더니 당시 김정은이 올바르게 사용한 게 맞는 것 같다고 이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언론계에서는 김정은이 쌍안경을 제대로 들었든 거꾸로 들었든 북한 후계자에 대해 언론이 선입견을 갖다보니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종면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실위원장은 24일 “아직 무엇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제는 아무리 북한 3대 세습을 비판한다 해도 ‘쌍안경조차 거꾸로 든 지도자’라는 식으로 조롱하듯 비판이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더구나 처음에 보도했던 팩트가 정반대일 수 있다는 상황에 직면한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 위원장은 “적어도 기사를 쓰기 전에 동영상을 본 뒤 ‘북한 쌍안경은 저렇게 생긴 게 아닌가, 거꾸로 생길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갖고 앞서 전문가에게 취재하고 그 내용을 함께 반영했어야 했다”며 “만약 제대로 된 취재를 하지 않고, 단순히 육안의 판단에만 의존했다면, 취재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선입견과 편견이 기사를 지배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연합뉴스 측으로부터의 분명한 입장은 들을 수 없었다. ‘첫 보도를 단정적으로 한 것 아니냐’는 질문 등에 문병훈 연합뉴스 북한부장은 과거 미디어오늘의 연합뉴스 보도에 대한 불만을 거론하며 답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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