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전 MBC 사장이 사직 후에도 MBC 고문 대우를 받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의 부당한 MBC 통제 의도에 맞서 사장직을 던진 엄 전사장에 대해 MBC가 고문 대우를 한 경위도 의아하지만, 엄 전사장의 그동안의 미심쩍은 행보와 관련해 공영방송 고문으로서 합당한 처신이었는지 새삼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은 지난해 2월 시사프로그램 폐지 압력 등 방송문화진흥회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해 사장직을 사퇴했지만, MBC는 엄 전 사장을 3월 고문으로 추대했다. MBC는 이에 따라 매월 고문직 수행에 따른 보수와 활동비 명목으로 1150만원을 지급했으며, 에쿠스 차량과 운전기사도 지원했다. 엄 전 사장에 대한 고문 대우는 지난 2월 초 종료됐다.

MBC 고민철 경영국장은 이에 대해 “전직 사장으로서 예우와 함께 사장 재직시의 노하우를 자문받는다는 의미에서 고문직을 맡긴 것”이라며 “MBC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거나 사장 또는 임원과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사퇴를 앞뒀던 지난 2010년 2월 정권의 언론장악을 반대하는 피켓시위 중인 노조원들 앞에서 힘내라는 의미로 손을 치켜 올리고 있다. ⓒMBC 노조
 
MBC는 엄기영 전 사장이 지난해 2월 8일 사장직을  중도 사퇴한 것과 관련해 남은 임기 1년에 대해서도 보수 보전 규정에 따라 본봉의 절반 가량을 지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MBC는 방문진에 이같은 엄 전 사장의 보수 보전 방안을 안건으로 상정해 의결받았다.

이 때문에 엄 전 사장에 대한 전례 없는 고문 예우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엄 전 사장이 MBC의 고문 대우를 받으면서도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 미심쩍은 행보를 보인 것에 대해서도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MBC의 한 중견기자는 이에 대해 “엄 전 사장이 고문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를 알고 있는 MBC 사원은 몇 안 될 것”이라면서 “고문 대우까지 받고 있었다면 자신의 처신에 대해 더 신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엄 전 사장의 행보에 문제를 제기했다.

방문진 이사들도 엄 전 사장이 고문 대우를 받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방문진의 고진 이사는 16일 “그런 전례를 들어본 일이 없다”며 “사장 인터뷰를 위한 면접 과정에서 김재철 사장에게 경위를 따져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이사는 “MBC가 너무 오버한 것 아니냐”며 “방문진 보고사항인지, 양해사항인지 모르겠으나 이를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엄기영 전 사장. ⓒKBS
 
한상혁 방문진 이사도 “엄 전 사장을 고문으로까지 위촉해서 막대한 보수에 차량과 기사까지 제공한 것은 문제”라며 “(재보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엄 전 사장이 MBC 고문으로 활동해왔다는 것은 처음 들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엄기영 전 사장은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처우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없다”면서도 “내가 무슨 정치행보를 했으며, 뭘 자제하고 지적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강원도지사 후보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현재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활동을 일단 잘 되도록 할 것”이라며 “(다른 일을 하는 것과 무관하게) 온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서 유치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엄 전 사장은 MBC 고문직을 수행하면서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원 춘천시장에 출마한 무소속 후보의 거리 유세를 함께 했었고, 최근 KBS 2TV <아침마당>에 파란색 점퍼를 입고 출연해 한나라당을 연상케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이같은 행보 때문에 엄 전 사장은 한나라당의 유력한 강원도지사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기도 하다. 중앙일보는 17일자 신문에서 한나라당 강원도지사 후보로 한승수 전 총리와 엄기영 전 MBC 사장이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선거법에 따라 공직자와 언론인은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후보로 출마하려 할 경우 선거일 90일 전에 현직을 그만두어야 하지만, 보궐선거인 경우에는 후보자 등록 전까지만 사퇴하면 후보로 등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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