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에게 왜곡·편파 보도란 무엇일까. 대부분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지만, 돌이켜보면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멀리 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당신’ 같은 것이 아닐까.

왜곡·편파 보도는 비단 거짓(사실)을 사실(거짓)인 것처럼 꾸민 경우만 의미하지 않는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이외에도 ‘사실을 그릇되게 과장한 경우’, ‘전체 사실 중 일부분만을 부각해 특정 인상을 심어준 경우’, ‘한쪽의 주장만을 전달한 경우’ 등을 왜곡·편파 보도의 대표적 유형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맨 앞의 경우에 뜨끔 하는 기자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나머지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이런 보도를 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언론소송 10년의 판례 연구>(한국언론재단, 2001년)란 책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크게 나누어 ‘실수’, ‘무지’, ‘불성실’, ‘고의’ 등을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고의’가 담긴 경우일텐데, 여기엔 꼭 대상을 ‘죽이거나 혹은 살리거나’ 하는 목적만 있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지난 2007년 9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문화일보의 ‘신정아 누드사진 게재’ 논란을 보자. 그때 문화일보가 인권침해·선정성 등 온갖 비난이 쏟아질 게 빤한 데도 이 사진을 공개한 주요 이유는, 누가 봐도 ‘신정아 죽이기’완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누드사진 게재로 홈페이지가 마비되고 포털사이트의 검색 순위를 점령하는 등 문화는 바라던 것을 얻은 것인가”라는 당시 언론노조의 비판 성명 내용이 훨씬 더 진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도 신정아씨의 명예훼손 소송 과정에서 “신문 판매량 증가와 인지도 제고 등 상업적 목적을 위해 선정적 보도를 감행”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자사 편집방향…불성실·무지…
의도적 인용·각색따라
진실보도 가물가물

이렇게 보면 기자들은 거의 매일매일 왜곡·편파 보도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한 일간지 정치부 기자는 “데스크의 요구도 그렇지만, 기자라면 누구나 늘상 ‘장사’될 만한 기사,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기사, 비판의 각이 선명한 기사, 속칭 ‘야마’가 확실한 기사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있다”고 토로한다. 한 경제 부처에 출입하는 다른 일간지 기자도 “데스크가 근거도 충분치 않은데 종종 특정한 각을 잡아 기사를 쓰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매우 곤혹스럽다”며 “일단 왜곡·편파 보도가 우려된다고 항의하지만 억지로 억지로 꿰맞춰 써야 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가장 흔한 경우라 할 수 있는, 특정 대상에 대한 해당 언론사(혹은 기자)의 호의 또는 적대감이 반영된 왜곡·편파 보도는 대개 독자들에게 큰 혼란을 주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지난 1월 27일자 경향과 조선 1면을 나란히 장식한 전교조 관련 기사를 보자. 전날 교사·공무원들의 정치활동과 관련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대해 경향은 <민노당 교사·공무원 당원가입 면소·무죄>, 조선은 <“공무원·교사는 정당가입도 후원금도 불법”>을 각각 제목으로 뽑아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 바 있다.

아무리 글자 수가 제한된 제목이라고 해도, 양측 모두 자사의 호오에 따라 일부 사실만 강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제목만 보면 독자들은 대체 무죄인지 유죄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판결의 실내용을 왜곡해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보다는 <법원, ‘민노당 후원’ 벌금형…“당원 아니다” 정당법 위반 혐의는 무죄>(한겨레), <국가공무원법 무죄, 정치자금법은 유죄>(중앙)가 보다 균형 잡힌 제목으로 보인다.

왜곡·편파 보도는 또 많은 경우 ‘고의’ 또는 ‘불성실’ 같은 단일 원인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고의는 대개 불성실과 무지를 자연스레 동반하는데, ‘목적’에만 급급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사실 확인이나 관련 지식 쌓기는 게을리하게 되는 것이다.

한 예로 조선은 지난 2009년 7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의 ‘잇단 탈퇴’ 소식을 연이어 전달하던 과정에서, 탈퇴하지도 않은 노조를 버젓이 명단에 끼워 넣어 정정보도와 사과를 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당시 민주노총 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비리로 물러난 전직 간부의 자작극이었다. 조선은 그러나 사실 확인을 성실히 하지도 않았고, 또 민주노총 탈퇴가 일부 조합원의 기자회견이나 별도 노조설립신고서 제출로 가능하지 않다는 ‘상식’을 미처 파악하지도 못했다.

근거보다 의욕 앞서
균형 감각 상실했나
믿을 건 치열한 자기검증

진보언론 쪽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 진보매체 기자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해야 한다는 목적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충분히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거나 특정 사실만 집중 부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털어놓는다. “가령 ‘이명박 정부가 서민을 홀대한다’는 결론 또는 제목이 나오려면 예산부터 실태까지 종합적으로 꼼꼼히 따져 기사를 써야 한다. 하지만 시간도 없고 하니, 일부 부정적인 것만 모아쓰는 식이다. ‘왜곡’까진 아니라고 보지만 ‘편파’ 논란에선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남재일 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지난 2008년 7월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아주 세련된 방식의 왜곡·편파 보도 유형 한가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인용을 빌려 자기주장을 하는 잘못된 관행”이 그것이다.

남 교수는 이 글에서 자신의 발언이 인용된 몇몇 기사를 예로 들며 “어떤 기자는 내 말을 이상하게 각색해서 정치적 입장을 바꿔 놓기도 한다. 제자인 모군은 인터뷰를 하지도 않고 평소의 내 생각을 헤아려 과거 내가 했던 수법을 그대로 실천한 적도 있다”고 꼬집었다.

왜곡을 위해 또 다른 왜곡을 감행하는 셈인데, 남 교수는 이를 “취재원의 등 뒤에 숨어서 자기주장을 일삼는 위선의 수사학”이라고 규정했다.

기자들은 “데스크와 마감 시간의 압박, 경영진의 요구, 언론사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과정부터 결과까지 모든 게 완벽한 기사를 쓰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내부 시스템이나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스스로 끊임없이 자문해보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기사에 확신이 잘 안서는 사실관계는 없는지, 근거보다 결론이 먼저 앞서 있지는 않은지, 특정 대상에 대한 호불호 때문에 균형감각을 잃지는 않았는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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