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에 이은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으로 역사의 한 고비를 넘기고 있다. 튀니지는 벤 알리가 23년간, 이집트는 무바라크가 30년간 미국과의 끈끈한 우호관계 속에 철권통치를 해온 공통점이 있다.

이들 두 나라의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직접적인 도화선은 다름 아닌 치솟는 물가와 실업난이었다.

이집트는 인구 8천50여만명으로 세계 16위의 대국이지만 GDP는 지난 2009년 기준 2천1백68억 달러에 불과하다. 구매력을 반영한 실질 GDP는 5천9억 달러로 세계 27위,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는 6천2백 달러로 세계 1백37위로 나타났다. 실업률은 무려 9.7%나 된다.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집트대사관 근처에서 열린 <무바라크 즉각퇴진과 이집트의 자유를 위한 2차 집회>에 참가한 이집트인들이 무바라크의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튀니지도 마찬가지다. 공식적인 실업률은 14%지만 25세 이하 청년층과 지방의 실업률은 2배가 넘는 40%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식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주민들의 원성이 커졌다. 지난해 튀니지 재정적자는 GDP 대비 2.6%, 공공부채는 39.8%까지 증가했다.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는 유럽 국가의 재정위기와 경기침체를 가져왔고 튀니지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의 각 나라들이 씀씀이를 줄이면서 의류 등 튀니지의 주력 수출산업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들 두 나라의 민주혁명의 직접적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지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빚어진 세계경제 위기가 유럽을 거쳐 이들 두 나라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고,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가 물가폭등에 기름을 부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실업난과 물가폭등은 미국의 서브프라임과 달러를 무차별적으로 찍어낸 양적완화 조치에 일정 부분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두 나라 대통령이 장기집권과 독재가 가능하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던 바로 그 미국의 불똥 때문에 권좌에서 쫓겨나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역설적으로 미국은 두 나라의 민주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셈이 됐다.

튀니지나 이집트처럼 현재 대한민국의 물가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2% 올라 2008년 11월(7.8%) 이후 2년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채소는 47.2%, 과일이 74.8% 급등했고, 축산물도 구제역 여파로 15.2%나 올랐다. 축산물 가격은 지난 달에 비해 19.2% 올라, 생산자물가지수가 발표된 1965년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하다 못해 비명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청년실업자는 92만명으로 증가해 2000년(97만9000명)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60%가 백수로 전락한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3개월 만에 4% 대로 뛰어올라 정부의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설 연휴를 앞둔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은 2월 11일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했다. 치솟는 물가를 감안하면 시장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정이다.

대신 정부가 직접 나서 기업들에 가격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의 기름값 발언 이후 경제부처 장관들이 돌아가면서 정유사를 압박하는가 하면 지경부는 대형마트 관계자들을 불러 가격인상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공정위가 물가인하에 동원되는 등 부처 고유 영역마저 뒤죽박죽이다.

이는 정부 정책이 경제성장률을 위축시킬 수 있는 금리인상은 가급적 자제하고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기업에 압력을 넣어 물가를 잡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눈치 없이 가격을 올렸다가 정부에 밉보여 국세청이나 공정위 조사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가격통제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할 지 몰라도 가격통제 품목은 결국 공급부족에 시달려 값이 더욱 올라가게 된다.

1970년대 미국의 닉슨 행정부나 18세기 프랑스 혁명 후 정부가 가격통제를 실시했으나 실패한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튀니지·이집트에서 보듯이 물가 관리와 일자리는 한 정권의 운명을 가를만큼 중요하다. 물가는 반드시 잡아야겠지만 그 방법이 강압적이고 인위적인 가격통제라는 구시대적 방법이어서는 안된다. 출범부터 기업프렌들리를 자처한 정부가 아닌가.

5% 성장률에 집착한 나머지 금리와 환율을 통한 물가관리를 접어두고 가격통제라는 반시장적 방법을 고집할 경우, 이는 결국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또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무한정 가격을 동결시킬 수만도 없다. 가격 상승 요인이 일정 시점에 한꺼번에 반영될 경우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정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현정부 들어 한국은행이 청와대 남대문 출장소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을 더 이상 듣지 않도록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일이다. 그런 다음 물가관리는 한은에 맡기는 것이 어떤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