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저녁, 한겨레가 사원들을 대상으로 2010년 경영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겨레는 분기마다 구성원들에게 경영 성과를 알려 왔는데, 이날은 지난해 1년의 가결산 결과를 공개하는 자리였다.

2010년 영업이익은 50여 억 원이었다. 삼성그룹이 지난 2007년 김용철 전 법무팀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 폭로 이후 광고를 전면 중단한 이후 2008년 61억여 원, 2009년 5억여 원의 영업손실을 냈던 한겨레가 삼성이 광고를 재개하면서 다시 흑자 기조로 돌아선 것이다. 회사쪽은 노동조합과의 약속대로 영업이익 가운데 이자비용을 제외한 금액의 3분의 1(1인당 급여의 170%)을 성과급으로 지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날 설명회 자리가 마냥 분위기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한겨레가 흑자 경영으로 돌아서게 한 ‘삼성 광고’에 대한 불편한 질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지부장 류이근)가 삼성그룹의 ‘비정상’적인 광고 행태에 대해 지적한 뒤 사내게시판에 찬반 댓글이 올라오며 논란이 오간 데 대해 회사의 입장을 묻는 내용이었다.

▷지면에서 사라진 삼성 로고=한겨레 노조는 지난해 12월16일 발행한 노보에서 삼성이 2010년 한겨레의 최대 ‘스폰서’로 떠올랐다고 밝혔다.

노조가 삼성을 최대 ‘광고주’가 아니라 ‘스폰서’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2010년 1월부터 10월까지 삼성그룹의 광고매출은 2대 광고주인 현대자동차 그룹보다 10억 원 이상 많고, 3대 광고주인 SK그룹보다는 두 배나 많았다. 문제는 이 광고들이 ‘정상적으로’ 집행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 기간 동안 신문에 게재된 삼성 광고는 29건. 2대 광고주인 현대차그룹 광고 건수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기획광고로 집행됐다는 얘기다. 노조는 특히 삼성의 일반광고보다 기획광고가 4배 가까이 많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2009년 한겨레 전체 기획광고가 일반광고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재개된 삼성 광고의 행태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쉽게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기획광고 역시 ‘기형적’이라고 지적했다. “기획기사 및 행사 후원 및 협찬으로 들어오는 기획광고에도 삼성 로고의 흔적을 찾긴 어렵다”는 것이다. 노조는 “삼성이 협찬한 체코 야나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삼성 로고는 신문광고나 공연 포스터, 티켓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삼성이 협찬한 다른 행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며 “삼성은 한겨레의 ‘이름없는 기부천사’인 셈”이라고 비꼬았다. 노조는 삼성 광고 문제가 예민한 현안인 점을 감안해 노보를 대외비로 제작했다.

▷연간 광고비 중 15% 안팎…기획광고가 일반광고 4배=한겨레는 삼성이 광고를 집행하지 않았던 2009년 400억 원 미만의 광고매출을 올렸다. 삼성이 광고를 재개한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0% 가량 늘어난 450억 원 미만으로, 이 가운데 삼성 광고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5%를 조금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광고와 행사 협찬, 기획광고 비율이 1대1대4정도 된다는 게 한겨레 구성원들의 설명이다.

이같은 상황은 경향신문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경향신문 지면에 게재된 일반광고는 모두 14건으로, 정상적인 단가로 계산하면 10억 원이 채 안 된다. 하지만 경향이 협찬, 기획광고 등의 명목으로 실제 삼성으로부터 받은 광고비는 한겨레에 조금 못 미치는 규모다. 연간 광고매출은 2009년에 비해 7~8% 증가한 360~370억 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 매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겨레보다 약간 많다.
경향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삼성 광고비는 2007년 이전 수준에 비하면 60% 수준밖에 안된다”며 “2년 넘게 중단된 삼성 광고가 이제 숨통을 트기 시작했는데 이런 얘기가 공론화되면 삼성이나 우리 모두 입장이 곤란해진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다른 기업도 집행하는 광고비의 절반 정도만 노출한 경우도 있었다”며 “그러나 지난해부터 대다수 기업들이 광고 노출 비중을 점차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보가 발행된 뒤 한겨레 광고국 담당자도 삼성의 일반광고 노출 비중이 적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한겨레에 대해 비우호적인 정치권력의 눈치, 삼성 내부의 이견을 감안해 정상화를 위한 과도기로 봐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또 “삼성이 광고 재개 이후 한겨레 기사에 대해 민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체성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었고, 예전과 비교할 때 이러한 요구가 줄었다”면서 삼성 광고재개에 대한 입장 정리를 제안한 노조에 “삼성 광고를 받지 말자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광고로 언론 길들이기 의도…생존 핑계로 정체성 훼손 안돼”=한겨레에는 그러나 삼성이 지금과 같이 비정상적으로 광고를 재개한 데는 광고를 매개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의도가 여전히 숨어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겨레의 한 기자는 “삼성이 광고를 음성적으로집행하는 이유는 결국 한겨레 지면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라며 “광고 중단 사태를 경험하고서도 이같은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경영진이나 구성원들이 언젠가 생존을 핑계로 한겨레 정체성을 훼손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기자는 “안팎에 ‘삼성 광고 없이 가겠다’고 선언해 놓고 누가 봐도 이상한 방법으로 광고를 받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며 “삼성 광고 재개에 대한 입장, 대기업 광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 등을 논의해 그 결과물을 외부에도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조가 제시한 해결책도 ‘당장 삼성 광고를 끊자’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8년 ‘삼성 광고없이 가겠다’는 선언 이후 지금까지 삼성 광고재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점, 이 상태가 지속되면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불신과 갈등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 나아가 “대한민국 최대 권력집단의 상징인 삼성과 한국 진보언론의 맏형 한겨레의 ‘관계 정상화’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내부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노조의 인식이었다.

이에 대해 한겨레 한 관계자는 “삼성에 광고 노출을 해 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다”며 “다행히 올해 들어 광고 재개 이후 처음으로 삼성생명, 에스원 등 삼성 계열사들이 일반광고를 내 조만간 광고 집행이 정상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안경숙 기자 ksan@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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