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빵 작가 "동화책 이름을 왜 걸그룹에…"
구름빵 작가 "동화책 이름을 왜 걸그룹에…"
달샤베트 vs 달샤벳 논란 "아이들 문화 지켜줘야 하지 않겠나"

“아이들의 문화가 존중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악 소리라도 내고 싶었습니다”

걸그룹 ‘달샤벳’과 이름 도용 논란에 휩싸인 ‘구름빵’ ‘달샤베트’의 백희나 작가는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작가는 맨 처음 달샤베트를 생각하게 된 계기부터 말문을 열었다. 작가가 처음 ‘달샤베트’를 떠올리게 된 것은 무더운 여름 작업실에서였다. 너무 더워 창문을 열자 훅 끼치는 더운 열기와 함께 '윙'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어콘 실외기 소리였다. 그 소리에 작가는 정신을 번뜩 차렸다.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거리의 풀과 나무는 실외기의 열기로 더 덥지 않을까. 이러다 다 녹겠다. 달도 녹겠어’ 하는 생각으로 떠올린 것이 이 ‘달샤베트’ 였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작가가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 인형들을 한컷한컷 찍어 완성한 따뜻한 그림체와 녹은 달을 다시 얼려 샤베트로 만든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는 아이들을 한껏 상상의 세계로 인도했다. 출간 4개월 만에 4쇄 2만8000부가 팔려나갔다. 2010년 중앙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도 꼽혔다. 중앙일보는 12월18일자 기사를 통해 "무더운 여름밤 녹아내린 달로 샤베트를 만든 반장 할머니 이야기인데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주면서도 찾아도 찾아도 또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라고 선정의  사유를 밝혔다.

   
  ▲ 백희나 작가의 '달샤베트'. ⓒ스토리보울  
 
사용요청 거절에 스펠링만 살짝 바꿔 데뷔

그러다 작가가 자신의 동화책과 비슷한 이름의 걸그룹 달샤벳을 발견한 것은 지난해 12월12일. 수차례 작가에게 전화해 데뷔하는 걸그룹의 이름으로 동화책의 이름을 쓰고 싶다는 기획사의 요청을 물리치고 결국 그 이름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놓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작가가 기획사에 전화를 걸어 어찌된 일이냐고 따졌지만 “동화는 ‘달로 만든 샤베트’, 걸그룹의 이름은 ‘달콤한 샤베트’라는 뜻이다. 둘은 연관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작가는 백방으로 뛰며 걸그룹의 이름 사용을 막을 방법을 찾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책의 이름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었다.

작가는 고민 끝에 자신이 경영하는 1인 출판사 스토리보울의 홈페이지에 ‘달샤베트...또 다른 고비...’라는 글을 올렸다. 누리꾼들은 작가의 글에 화답했다. 다음 아고라에서 걸그룹의 이름 사용을 막기 위한 서명운동이 이뤄졌다. 그러자 기획사 쪽에서 연락이 왔다. "걸그룹을 만드는데 많은 돈이 들었다. 원하는 대로 해주겠으니 협상에 응해 달라"고 요청했다.

작가는 이름의 변형을 요구했다. 동화책 ‘달샤베트’가 가진 원래 의미와는 다른 이미지가 입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획사는 2집부터 ‘달샤벳’ 앞에 'the'를 붙이겠다고 했다. 협상은 결렬됐다. 사용료 부분도 문제가 되었다. 책 하나가 없어진다는 심정으로 어렵게 응한 협상은 그에게 상처만 남겨주었다.

“책은 제 아이와 같습니다. 억만금을 준대도 제 아이가 본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기꺼워할 엄마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걸그룹이 잘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달샤베트가 아이들에게 준 꿈이 다른 식으로 변질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건 동화책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것입니다"

작가는 지난해 11월 상표출원 등록를 했다. 하지만 그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올 11월이다. 걸그룹의 빠른 활동 특성상 상표에 대한 권리가 발생할 시점이면 이미 걸그룹 ‘달샤벳’은 알려질대로 알려져 있을 것이 뻔하다. 그때까지 작가는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동화책 이름이 걸그룹으로 대치되어 가는 현실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상표출원 등록이 완성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걸그룹에 이름 사용중지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때쯤이면 이미 달샤베트는 달샤벳이라는 걸그룹의 이미지로 뒤덮여 있을텐데, 제가 원하는 건 그저 제 그림책의 의미를 지키는 거예요.”

   
  ▲ 걸그룹 '달샤벳' ⓒ해피페이스엔터테인먼트  
 
기획사는 연관이 없다고 주장 하지만 달샤베트라는 검색어를 포털 사이트에 입력하면 제일 먼저 뜨는 것은 걸그룹 사진과 정보이다. 동화의 이미지에 영향이 없을 수 없다.

"스테디셀러 구름빵 저작권없는 작가의 두번째 아픔"

이 사건에 대한 전문가의 입장은 어떨까. 저작권 전문가인 김기태 세명대 미디어창작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엔 억울한 판례가 많다. 유명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원래 무용극으로 제작이 되었고 그것을 본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내용이 달라 영화가 무용극의 2차 저작물임을 인정받지 못했다. ‘달 샤베트’의 경우도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책 제목의 법적인 보호는 어렵다" 고 했다. 다만  책이 ‘해리포터’ 처럼 전 국민이 다 알 정도의 작품이라면 부정경쟁방지법이라는 제도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경쟁방지법은 누군가 공들여 알려놓은 이미지에 무임승차를 할 경우를 대비해 이를 형사처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작가는 명실상부한 스테디셀러 ‘구름빵’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고양이 형제가 비오는 날 하늘에서 내려온 구름으로 만든 빵을 먹고 날아오른다는 유쾌한 상상력의 이 동화는 작가가 한 컷 한 컷 작업하는 입체일러스트의 따뜻한 감성과 시너지효과를 내며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구름빵 저작권이 없다. 애초 단행본 형식이 아닌 전집의 한 권으로 계약을 한 것이다. 작가는 홈페이지에서 “저작권이 없어서 창작물이 의지와 상관없이 나도 모르는 방향으로 재창조되어 가는 것을 6년이나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는데 이 일로 또다시 무릎이 꺾였다”며 속 깊은 아픔을 토로했다.

   
  ▲ 백희나 작가의 전작 '구름빵'  
 
작가에게 구름빵 저작권이 없다는 것은 누리꾼들에게 ‘충격’이었다. 작가의 책을 아이에게 읽혀봤을 많은 부모들이 나섰다.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서명엔 1500여명의 누리꾼이 힘을 보탰다. 또 트위터리안의 응원도 크다. 많은 누리꾼들이 ‘아이의 동화책이 걸그룹의 이름으로 사용되서는 안된다’며 작가를 응원하고있다.

결국 걸그룹 노이즈 마케팅만 되는거 아닐까요?

걸그룹 ‘달샤벳’은 이효리의 '유고걸' 등의 곡으로 큰 인기를 모은 작곡가 이트라이브의 제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데뷔 전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대단했고 6일 데뷔 무대를 가졌다. 기획사가 주장하는 ‘달콤한 샤벳’의 줄임말이라는 이름처럼 그들은 지금 파스텔 톤의 옷을 입고 귀여움을 강조한다. 하지만 만약 섹시 컨셉으로 전환한다면? 아이들이 동화를 보고 마음에 새겼던 ‘달샤베트’의 꿈은 지켜질 수 있을까?

한 누리꾼은 “이 사건이 작가의 창작권은 보호하지도 못한 채 결국 걸그룹 달샤벳의 노이즈 마케팅만 해주는 것이 아닐까” 라며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작가는 아이들을 위해 '달샤베트'를 지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많은 이들의 격려가 다시 일어서기 힘들었던 제 마음 속의 빛이 되어주고 있다”며 누리꾼의 응원에 감사를 표했다. “작가의 작업이 결코 녹록치 않은 한국의 상황에서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이를 둔 부모들의 책에 대한 열정”이라고도 했다.

   
  ▲ 포털사이트 다음에 '달샤베트'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걸그룹 달샤벳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그는 아이들의 꿈, 아이들의 문화라는 라는 말 등 유독 ‘아이들’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달샤베트’가 온전히 아이들의 꿈으로만 존재했으면 하는 바램인 것이다.

"달샤베트는 아이들의 것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예요. 창작자로써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달샤베트를 꼭 지켜내고 싶습니디. 반드시 이겨내서 우리나라 그림책의 작가들이 마음 놓고 창작을 할 디딤돌 하나 반듯이 놓고 싶습니다."

그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아이의 손을 따뜻하게 마주 잡은 엄마의 마음과도 같은 연대가 이뤄진다면 꼭 꿈만같은 이야기는 아닐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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