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방송’이라 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종합편성채널 도입에 열을 올리자 야당과 언론시민단체는 ‘조중동 방송’ 만들어주기라고 비판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프레임(생각의 틀)이 지닌 위력을 설명한 바 있다. 한국의 정치권도 조지 레이코프가 전한 '비법'을 실전에 활용하고 있다.

프레임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조중동 방송'이라는 표현은 종편의 정치편향성을 지적하는 유용한 전파 수단이었다. 종편이라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와 그 문제점을 알기 쉽게 표현한 선택이다. 효과는 기대 만점이었다.

야당의 ‘조중동 방송’ 반대는 여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알기 쉬운 단어를 통해 종편 추진의 문제점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당시에는 100% 확신하기 어려웠다.

   
  ▲2009년 2월 1일 장차관 국정 워크숍에 참석한 이명박(사진 가운데) 대통령과 최시중(사진 오른쪽)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출처-청와대  
 
조중동 모두에 방송사라는 선물을 줄지, 조선일보 방송 또는 중앙일보 방송 또는 동아일보 방송 등 특정 언론에만 선물을 주게 될 것인지 단언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동아일보가 가장 유력하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고, 조선일보를 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중앙일보에는 다른 방송사를 건네준다는 소식부터 조중동 모두는 물론 매일경제까지 선물을 줄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업계에서 나돌던 소문은 현실이 됐다.

2009년 7월 22일 국회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충돌과 갈등 속에 문제의 법안을 통과시킨다 그 주인공이 바로 ‘조중동 방송법’이라 불렸던 미디어 관계 법안이다. 한나라당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무리수를 뒀는지, 어떻게 해서든 처리를 하려 했는지 그 마지막 퍼즐이 풀리고 있다.
 
7월 23일 한겨레는 <‘조중동 권력’을 위한 반민주 악법>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이런 내용이 나온다.

“조중동의 구미에 맞는 정치세력은 그 힘에 기대 정권 재창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언론법 강행처리는) 주권자인 국민 대신 언론권력과 스스로의 이익만 좇고 섬기는 행태이자,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권언유착을 되살리려는 시도일 뿐이다.”

한나라당이 ‘조중동 방송법’ 강행처리는 대리투표 재투표라는 불법으로 얼룩졌다. 헌법재판소가 이 불법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불법으로 처리된 법안은 끝내 종편 방송사 선정이라는 보도채널 방송사 선정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불법으로 쌓아 올린 종편 보도채널의 선물은 예상대로(?) 이명박 정부 구미에 맞게 논조를 전개했던 친MB 언론사들에 돌아갔다. 그러나 문제가 남아 있다. 말로는 시장주의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벌인 이번 선택은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다.

특정 언론사 1~2곳을 선정한다면 연착륙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종편을 무려 4곳이나 선정한 것은 ‘공멸의 그림자’를 현실로 인도할 수 있다. 종편 선정 이전에 준비 언론사들의 전망과 반응이 그랬다.

종편 선물을 준 것은 좋지만, 자기만이 아닌 다른 언론사에도 똑같은 선물을 준 게 종편 준비 언론사들에 반가울리 없다. 이명박 정부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종편 선정 탈락이라는 선택이 가져올 후폭풍을 걱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를 향해 충성을 다했던 언론사들의 뜻을 무시할 경우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시장원리에 맡겨두면 종편 4곳은 모두 생존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종편사는 물론 다른 방송, 신문, 지역신문까지 피 말리는 광고경쟁에 시달릴 수 있다.

   
  ▲ 지난 2008년 12월26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언론노동조합 총파업 출정식에서 MBC SBS EBS CBS YTN 등 방송사 조합원들이 한나라당의 7대 언론악법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언론시장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이용경 창조한국당 원내대표는 “현재 지상파방송사 3사 구조에서도 방송광고 완판률이 60% 정도에 불과한데, 7개 사 경쟁구조에서는 피를 뿌리를 생존 경쟁이 연일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결국 광고수주를 위한 방송사들의 선정성 경쟁 등 과당경쟁의 피해는 모두 국민이 떠안아야 하는데, 정부는 과연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라고 우려했다.

‘저질방송’ 경쟁은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치열한 광고경쟁을 한다고 광고시장은 결국 제한적이다. 정상적인 시장원리를 작동해서는 종편은 시장에서 연착륙하기 어렵다. 종편을 향한 ‘특혜’, 이것이 일상화돼야 한다는 얘기다.

KBS 1TV 9번, KBS 2TV 7번, MBC 11번, SBS 6번 또는 13번 등 국민에게 친숙한 지상파 방송과 유사한 번호대에 종편을 그것도 4곳이나 배정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번호대가 뒤로 밀리면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해보겠다는 종편 희망사들의 바람은 꿈으로 머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지상파 방송사와 유사한 번호대를 사실상 특혜에 따라 배정해주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번호대는 홈쇼핑 채널들이 막대한 금액을 들여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편 특혜는 곧바로 지상파 방송은 물론 홈쇼핑 채널의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시장원리가 아닌 특혜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권력과 언론의 유착, 권언유착은 더욱 노골화될 수밖에 없다. 종편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안정적인 특혜를 누리게 도와주는 권력과 손을 잡고 노골적인 편향방송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의문이 있다. 2011년도 중반기 이후 종편이라는 ‘조중동 방송’이 운영을 시작한다고 해도, 그들에게 안겨줄지 모르는 특혜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쉽게 말해 2012년에도 유지될 수 있을까.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

   
  ▲ 지난 2008년 10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 마련된 한나라당 재보선 상황실에서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들이 정몽준대표가 자리를 뜬 가운데 심각한 표정으로 재보선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의석은커녕 참패라도 당하는 날에는 조중동 방송을 향한 특혜성 지원은 중단될 수 있다.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정권이 무너지는 날에는 조중동 방송 입장에서는 악몽이다.

그래서 더욱 권언유착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MB정권의 이익을 위해, 한나라당 정권의 유지를 위해 종편이 노골적인 편들기 방송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대선에서 자신을 도운 언론에 대한 논공행상으로 시작해서 또 다음 대선을 위한 포석, 언론에 대한 영구적인 통제 체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 허가는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다. 불순한 의도로 시작된 정치권력의 행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조중동 방송’ 그것은 실제 상황이었다. 방송시장을 뿌리부터 흔드는, 국민 공공재인 전파를 특정 정치세력의 입맛에 맞게 이용한 이번 시도는 이명박 정부 안위를 지켜내는 선택일까 아니면 정권 몰락을 이끄는 자충수가 될까. 2011년 새해를 관통하는 중요한 관전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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