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권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기 때문에 결정은 어렵지 않았어요. 상을 거부하는 것은 상을 받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소모뚜(35·사진)는 올해 상복이 많았다. 최근 한국인권재단이 주는 ‘인권홀씨상’을 받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상하는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하지만 소모뚜는 인권위가 주는 상은 거부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간단했다. “상을 받지 않음으로써 한국의 인권 상황을 알릴 수 있다면 거부해서 한국 인권에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우리가 이주민의 인권뿐 아니라 한국 인권에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장애인이나 성적소수자뿐 아니라 버마인, 한국인 따질 것 없이 인권은 통하니까.”

   
  ▲ 세계인권선언 제62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10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현병철 위원장 사퇴촉구 및 인권상 수상거부’ 기자회견에서 소모뚜 이주노동자방송국(MWTV) 대표가 “우리가 원하는 건 상이 아니라 인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20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만난 소모뚜는 자신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과 같은 이주민에 대한 무관심의 벽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에 더 기뻤다고 했다. 그는 “이주민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이 웃기도 하고, 울 줄도 아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 1993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그는 20살이었다. 가족을 위해 3~4년 일하고 버마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랬던 그가 올해로 15년 넘게 한국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는 외국인노동자였지만 지금은 인권활동가, 이주노동자방송국(MWTV) 대표, 버마행동 총무, 밴드 ‘스톱크랙다운’의 리더 등 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가 한국에서 이 같은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인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잖아요. 마찬가지였어요.”  인권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가 처음 한국에 올 때는 막연하게 ‘잘사는 나라’, ‘민주화 국가’, ‘김대중이 있는 나라’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달랐다. “도대체 일이 너무 힘든 거예요. 하루 15~16시간씩 일을 했어요. 같이 일하는 한국 사람도 그렇게 일했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불쌍하다는.”

그러다 한국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월급을 얼마 주는 지, 일이 힘든지 보다 ‘월급은 주는 것인지’부터 알아봐야 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길 들은 것이다. 자신은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이주노동자가 차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열심히 배워둔 한국어 덕에 그들의 입이 돼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는 그러면서 행복을 느꼈다.

“일해서 부모님께 돈을 보내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언어라는 열쇠로 상처받은 이들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죠.”

밴드와 버마행동 일을 하면서 그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니 당연히 차별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식 있는 분들을 만나면서 불법체류자도 노동권을 가질 수 있고, 퇴직금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함께 임금 삭감하며 허리띠 졸랐고, 2002년 월드컵 때는 한국을 응원하며 ‘대한민국’을 외쳤던 우리예요. 그런데 추방한다는 얘길 들으니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는 휴지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짜 친구라면, 이주민이 많아지면 제도를 만들어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잖아요.”

2003년 정부의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에 맞서면서 그의 결심은 굳어갔다. 그러면서 인권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노동자의 권리가, 사람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공존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로 필요해서 함께 사는 거잖아요. 우리는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서, 한국도 우리가 필요해서. 서로 도움이 되는 사람끼리 왜 도움을 주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인식과 제도의 부족한 부분이 있어요.”

그는 전보다 살림이 나아진 한국에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한국도 독재시대를 거쳐 피땀 흘려 민주주의를 이뤘잖아요. 그때의 아픔과 배고픔을 아는 민족인데, 왜 힘들어하는 나라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밀지 않는지 안타까워요.” 공존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며 그에게 인권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소모뚜는 ‘인권’보다는 ‘사랑’을 먼저 얘기했다.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원해요. 이주민에게도 가족이 있고, 모두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지요. 그런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사는 것, 그게 인권 아닐까요?”

소모뚜를 만난 날은 그가 다니는 성공회대 노동대학 수료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는 노동자의 삶이 정치·경제적으로 사회와 분리된 게 아니므로 우리 삶을 배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상반기 노동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대학원 공부도 할 생각이다. 지금 하는 활동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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