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의 쟁점을 조명하려던 KBS <추적 60분> 편이 한나라당의 예산안과 4대강 핵심법안 등이 날치기처리된 날 불방된 것과 관련해 KBS 막내 PD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며 김인규 사장에게 퇴진하라고 쓴 글을 KBS가 일방적으로 삭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추적 60분>팀에 소속돼있는 김범수 KBS PD(공채 34기·2008년 입사)는 9일 오전 '김인규 선배님, 안녕하십니까?'라는 글을 올려 전날 밤 예정됐던 추적 60분 4대강 편이 불방되고 대신 BBC 자연다큐멘터리가 방송된 것과 관련해 "입사 이래 KBS에서 반상식적인 일을 참 많이 겪었지만 이번 불방은 가장 폭력적인 것이었다"고 성토했다.

그는 추적 60분 '4대강' 편이 처음(지난 7일)엔 방송불가가 아니라 연기였는데, 8일 여당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를 대비해 야당 의원들이 국회 중앙홀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나왔고, 9일엔 실제 날치기가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것은 4대강 예산안과 '친수법(친수구역 특별 법안)'"이라며 "4대강 예산안과 친수법이 날치기로 통과되던 바로 그날, 선배님(김인규 사장)은 추적 60분 '4대강' 편을 불방시켰다"고 지적했다.

김 PD는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KBS측의 명분에 대해 "재판에 관한 사항이 얼마나 많이 보도되는 지는 저도 알고 기자였던 선배님도 안다"며 "선배님이 걱정했던 것은 아마도 여당에 대한 비판여론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친수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는 사실. KBS 방송이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에 기름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 지난 8일 정오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 주최로 열린 <추적 60분-4대강편> 방송보류 긴급 규탄대회에서 제작진을 대표해 김범수 PD가 발언하고 있다. 김 PD는 발언을 통해 '이제 우리가 여당의 정치일정에 맞춰 방송을 해야하나?'라고 개탄했고 이날 오후 한나라당은 4대강예산을 포함한 2011년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KBS새노조 조합원들이 <추적60분-4대강편> 방송보류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인규 사장에 대해 김 PD는 "선배님은 공영방송 사장이지, 누구의 특보도 아니고 어느 당의 당원도 아니다"라며 "비판여론에 대한 걱정은 여당의 몫이지 공영방송의 사장이 고민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선배님은 불방 결정을 내렸고, 너무나 정치적인 결정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덕분에 제작진과 시청자의 약속은 미처 예고할 틈도 없이 깨져버렸고, 추적60분 제작진은 영문도 모른 채 여당 날치기 통과의 공범이 돼 참담하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7일 '4대강' 편의 불방여부가 거론됐을 땐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기획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민주당이 로텐더홀을 점령한 것도 8일 밤이었는데, 언론이나 민주당도 몰랐던 날치기에 대해 김 사장이 (7일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며 "여당과 일정을 논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결백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 PD는 그러면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부터 KBS를 지키러왔다는 김 사장의 취임사 구절을 들어 "김인규 선배님, 그만 KBS에서 나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제 생각에 선배님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했습니다.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습니다. 그만 물러나 주십시오"라고 요구했다.

이 같은 글은 많은 KBS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으며 확대되고 있었으나 KBS는 신속히 사내 게시물등급위원회(각 본부장 등으로 구성)를 열어 이날 오후 글을 전격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 글은 곧 삭제됐다.

   
  ▲ 김인규 KBS 사장. ⓒKBS  
 
   
  ▲ 지난 6월 KBS 추적60분을 TV제작본부에서 보도본부 시사제작국으로 통폐합할 당시 매일 시위를 벌이고 있던 KBS PD들. 사진 왼쪽에 'PD저널리즘이 죽어가고 있다'는 팻말을 든 이가 김범수 PD. 이치열 기자  
 
KBS 새노조를 비롯한 기자 PD들은 막내 PD의 사내 비판마저 수용하지 못하느냐며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한상덕 KBS 홍보주간은 9일 밤 "글의 내용을 보면, 추적 60분 불방이 사장이 지시해서 이뤄진 것처럼 사실과 다르게 적시했고, 개인의 명예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에 게시물 관리위원회를 통해 전원 찬성으로 삭제 결정한 것"이라며 "(김 PD와 같은 주장은) 일부의 의견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이 아니면 아니라고 내부에서 반론하면서 소통하고 설득하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에 "사장과 직접 관련된 것을 반론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 삭제로 결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김범수 KBS <추적 60분> PD가 KBS 사내통신망(KOBIS) 게시판에 올렸다가 삭제됐던 글 전문이다.

김인규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추적60분>에 있는 34기 김범수피디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배님을 선배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선배님께 공개 편지를 쓰는 것은 어제 있었던 <추적60분> 불방 때문입니다.

어제 <추적60분> '4대강' 편은 결국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전혀 예고되지 않은 자연 다큐멘터리가 나갔습니다. 입사 이래 저는 KBS에서 반상식적인 일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불방은 일련의 반상식적인 일들 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어떤 것이었습니다. 선배님에게는 그냥 단순히 한 프로그램의 불방이었는지 몰라도, 저에게는 참으로 아프고 참담한 불방이었습니다.

저희 팀이 처음 방송보류니 연기니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지난 월요일입니다. 방송 불가가 아니라 연기였습니다. 방송을 낼 것이라면 굳이 한 주를 연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국회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여당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를 대비해 야당 의원들이 국회 중앙홀을 점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송 당일. 국회에서는 날치기가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4대강 예산안과 ‘친수법(친수구역 특별 법안)’입니다. 친수법은 4대강 사업의 설거지를 위한 법안입니다. 자본금이 2조에 불과한 수자원공사에 8조짜리 4대강 공사 사업을 억지로 떠넘기면서 정부가 수공에 약속한 수변 구역 개발법안입니다. 수공은 이 법안을 바탕으로 수변에 리조트도 짓고, 카지노도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래야 손해난 8조 중 다만 얼마라도 건질 수 있다는 것이 수공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식수오염과 환경 문제 때문에 이 친수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여당의 입장에서는 4대강 사업을 위해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법안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더 심했다는 이번 국회 날치기도 결국 4대강 예산과 친수법 통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저보다 선배님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4대강 예산안과 친수법이 날치기로 통과되던 바로 그날, 선배님은 <추적60분> ‘4대강’ 편을 불방시켰습니다.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변명에 불과합니다. 재판에 관한 사항이 얼마나 많이 보도되는 지는 저도 알고 기자였던 선배님도 압니다. 선배님이 걱정했던 것은 아마도 여당에 대한 비판여론이었을 겁니다.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친수법을, 그것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는 사실. 그 역풍을 걱정했을 겁니다. <추적60분>의 4대강 방송이 혹시 여당과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에 기름을 끼얹을까 그게 걱정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선배님, 선배님은 아직도 헛갈리는 듯합니다. 선배님은 공영방송 사장입니다. 누구의 특보도 아니고 어느 당의 당원도 아닙니다. 비판여론에 대한 걱정은 여당의 몫입니다. 공영방송의 사장이 고민할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선배님은 불방 결정을 내렸습니다. 너무나 정치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덕분에 제작진과 시청자의 약속은 미처 예고할 틈도 없이 깨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추적60분> 제작진은 영문도 모른 채 여당 날치기 통과의 공범이 되었습니다. 참담합니다.

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일련의 과정입니다. 이화섭 국장을 통해 불방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월요일입니다. 그런데 월요일까지는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기획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이 날치기를 우려해 국회 로텐더홀을 점령한 것도 화요일 밤입니다. 그 어떤 언론도 몰랐고, 심지어 민주당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일을 선배님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이 여당과 일정을 논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 선배님은 정말 결백하십니까?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김인규 선배님, 그만 KBS에서 나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제 생각에 선배님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했습니다.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습니다. 그만 물러나 주십시오.

<여기에서 단호하게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제가 KBS를 장악하러 왔다고 주장합니다. 아닙니다. 결단코 아닙니다. 저는 양심을 걸고 말합니다. 저는 KBS를 지키려고 왔습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본권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제가 대선캠프에 있었다고 해서 현 정부가 원하는 대로 정부 입맛에 맞게 방송을 마음대로 만들고 방송을 좌지우지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저와 함께 현장에서 뛰었던 후배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런 일이 지금 가능하기나 합니까? 공영방송을 위해 투쟁해온 우리 자랑스러운 KBS후배들의 눈동자가 이렇게 저를 지켜보고 있는데 제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선배님의 취임사입니다. 물러나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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