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껑충 뛰어오른 역전의 드라마(중앙일보).”
“전북 장수의 작은 기적(국민일보).”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자 전북 장수 지역에는 언론의 찬사가 이어졌다. 전북 장수는 지난해 초등 6학년 영어·수학 과목의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가장 높았던 ‘최하위권’이었으나 올해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 과목에서 미달자 ‘0’을 기록하며 ‘최상위권’으로 올라섰다. 학교성적이 꼴찌에서 일등으로 뒤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으며 올해 학업성취도 발표에서 최고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영광도 누렸다.

   
  ▲ 국민일보 12월1일자 8면.  
 
그러나 언론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사실이 있다. 어떻게 1년 만에 전북 장수가 최하위권에서 최상위권이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내막이다. 2009년 학업성취도 평가결과가 발표된 지난 3월부터 2010년 평가가 진행된 7월까지 4개월 사이 장수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향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학업성취도 평가결과가 공개된 뒤 장수 지역의 민심이 들끓었다. ‘꼴찌’로 소개된 장수교육청 교육장은 일선 초중고 교장들을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서 교육장은 “지금까지 창의력과 사고력을 높인다고 했던 독서, 논술수업이 다 쓸모없게 됐다. 우리도 이제부터 성적 올리는 수업만 하자”고 말했다. 이후 이 지역에는 강제 야간 자율학습과 시험대비 집중 문제풀이 등으로 수업방식이 바뀌었다.

초등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올해 3월부터 대부분의 장수지역 초등학교가 6학년생들을 데리고 밤 9시까지 의무 야간 자율학습을 시켰다”고 말했다. 시험을 앞두고 일제고사 대비용 문제집을 사서 반복적으로 문제를 푸는 수업을 한 것이 일제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데 주효했다는 얘기다.

장수 지역의 사례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선 교육현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올해부터는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학교별로 공개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주변 학교와의 성적비교는 물론 전국 모든 초·중·고교를 1등부터 꼴찌까지 한 줄로 세우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장들은 일제고사 성적을 성과급에 연동하겠다고 교사들을 닦달하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성적을 조작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또, 일부학교는 평균점수를 올리기 위해 성적 나쁜 학생들을 학습장애아로 분류해 제외하는 편법까지 사용했다.

교과부는 그런데도 학교끼리 경쟁을 시켜 성적을 끌어올린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이미 낡은 패러다임이라는 게 증명된 지 오래다. 세계 각국의 선진화된 교육환경은 암기위주의 일방적 주입방식이 아니라 다각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키우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공교육 시간은 최대한 짧게,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마음껏 파고들게 한다’는 교육철학을 가진 핀란드가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육국가로 선정된 이유를 우리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 정부의 교육관대로라면 학교 서열화가 필요하고, 서열화를 위해서는 점수가 수치화돼야 한다. 점수를 수치화하기 위해서는 종합적 사고를 측정하는 서술형보다 암기위주의 단답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의 종착역은 하나다. 획일화되고 단편적 사고에 익숙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왜 우리나라에는 닌텐도가 없느냐, 스티브 잡스가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소리다. 이런 극단적인 학력 경쟁은 교육의 본령과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의 문제는 ‘경쟁의 부족’이 아니라 ‘경쟁의 과잉’이라는 1일자 한겨레 사설은 핵심을 바로 짚었다.

교육에 대한 철학이나 성찰 없이 일제고사 부활 2년 만에 전국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됐다는 교과부 발표를 '앵무새'처럼 받아쓰는 언론들도 이제는 교육이라는 ‘백년대계’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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