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같은 사람이다. 내려오라.”

지난 25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있던 의원들이 술렁거렸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동료 의원을 ‘빨갱이’로 몰아가기도 했다. 다른 의원들의 야유도 이어졌다.

주인공은 진보신당 대표이자 유일한 현역 의원인 조승수 의원이다. 그는 이날 대북규탄결의안 반대토론자로 나섰다. 반대토론은 조승수 의원 한 명만이 아니었다. 정치권의 대표적인 대북강경파인 미래희망연대 송영선 의원도 반대토론에 나섰다.

송영선 의원이 반대토론을 끝내자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잘했어”라는 얘기가 이어졌다. 의원들은 마음에 드는 연설을 하면 “잘했어” “잘했어”라는 얘기를 본회의장에서 전하곤 한다.

   
  ▲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북규탄결의안 반대토론에 나선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사진출처-진보신당  
 
똑같은 반대토론인데 송영선 의원과 조승수 의원의 평가는 왜 엇갈렸을까. 송영선 의원은 이날 국회를 통과한 대북규탄결의안에 더 강력한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조승수 의원은 군사대응 중심의 결의문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소신’이 깔려 있었다.

조승수 의원에 대한 빨갱이 몰이는 정당할까. 이날 투표 결과는 261명 찬성, 1명 반대, 9명 기권이다. 1명의 반대와 9명의 기권은 나름의 정치적 판단과 소신이 담겨 있는 결과이다.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가했고, 군인은 물론 민간인까지 생명을 잃은 사건을 놓고 분노하지 않을 국회의원은 없다.

조승수 의원 역시 북한 행동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반대하려는 뜻이 아니었다. 이날 통과된 대북규탄결의안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안을 섞어놓은 내용이다. 민주당은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한 평화체제 구축의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도 이에 동의했다.

최종 채택된 안은 한나라당 쪽에 더 가까운 내용이지만, 송영선 의원 반발처럼 강경파 입장에서는 성에 차지 않는 내용이다. 송영선 의원은 반대토론에 나서기는 했지만, 투표에서는 반대가 아닌 기권을 던졌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대한 의사 표시였다.

조승수 의원의 선택은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담긴 행동이다. 전후상황을 모르는 이들이 보면 왜 북한을 규탄한다는 데 혼자 반대하는냐는 지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보정당 소속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냉전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조승수 의원은 북한문제와 관련해서는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강경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민주노동당 분당 과정에서 ‘종북주의’ 논쟁을 촉발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조승수 의원의 이날 선택은 한나라당 의원 주장처럼 ‘빨갱이 같은 사람’이기에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소수정당이자 진보정당 소속 의원으로서 작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선택이다.

명백한 상황, 우리 국민이 숨을 거둔 현실은 강경론 일변도의 주장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북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강력한 응징을 바라는 이들도 남북관계의 긴장도가 높아지는 상황에 대해 100% 동의한다고 보기 어렵다.

조승수 의원은 대북규탄결의안에 평화를 위한 노력, 그 메시지를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이날 국회 반대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전협정 이후로 유사 이래로 처음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이번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과 저는 북한정권의 군사적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고자 한다. 그 어떤 이유로도 이번 도발행위는 용납될 수도 없고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응분의 책임을 북한정권은 분명히 져야할 것이다.…그러나 우리 국민정서의 한편에는 군사적 대응으로 확전이 되거나 전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반대의 목소리에 대해서 우리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이성적으로 규탄과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 결의문에 담겨져 있어야 한다.”

조승수 의원의 판단은 경청할만한 내용이다. 조승수 의원은 “결의문 자체는 많은 부분을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대응 중심의 결의문은 찬성할 수 없는 입장임을 밝힌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기권은 무엇 때문일까. 민주노동당은 한반도 평화에 어느 정당보다 관심을 쏟는 정당이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보수·수구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한 몸에 받기도 하지만, 소신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기권’을 결의했다. 민주노동당은 일각의 주장처럼 북한 비판에 미온적이어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렇지가 않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의해 해군 병사들과 민간인들이 희생된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우위영 대변인은 “오늘 국회 결의안은 오직 안정과 평화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대화 노력에 정부 당국이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반드시 포함돼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 평화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서해상 긴장이 최고조로 높아진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누구도 확전의 불씨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민주노동당이 당론을 통해 ‘기권’을 선택한 이유이다. 북한 공격으로 국민이 숨을 거둔 엄청난 사건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던져줬고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다. 강경론 일변도의 흐름 속에서 정치적 소신을 밝히기는 쉽지가 않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나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선택에 대해서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차분한 상태에서 평가를 해볼 일이다. 한나라당 어느 의원 주장처럼 “빨갱이 같은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 그때는 어떤 평가가 나올지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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