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선체와 1번 어뢰에서 검출한 백색물질이 폭발재가 아니라는 실험 결과가 나온데 이어, 합조단 내에서도 해당 물질의 성분이 폭발재와 거리가 있는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폭발재(알루미늄산화물) 쪽으로 결론을 냈다는 증언이 나왔다. 군 당국이 천안함이 어뢰 폭발로 침몰됐다고 주장하기 위해 실험및 분석 결과를 왜곡하거나 은폐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증언은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에서 공개됐다. 정기영 안동대 교수는 <한겨레21>과 <추적60분>의 의뢰로 국방부가 제공한 천안함과 어뢰에서 검출한 시료를 분석한 결과 폭발에 의한 흡착물인 '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이 아니라 바닷속에서 유래한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알루미늄과 황 성분비가 4대 1로 구성)라고 밝혔다. 이 시료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넘겨받아 언론사 등에 분석을 요청한 것이다. 

문제는 합조단 내에서도 '황산염'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합조단의 한 관계자는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내부 세미나까지 하면서 고민했지만 정확히 구분되지 않은 상황에서 괜히 황산염이라고 했다가 힘든 결과를 초래할수 있어서 (황산염이라는 결론을) 피했다"며 "결론이 (알루미늄산화물로) 그렇게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황산염이 확실한데 그 명칭에 주안점을 둔 게 아니라 폭발재로서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문가들에게도 조언을 구했지만 그 분들도 말하기를 꺼려했다"며 "그래서 알루미늄산화물로 통칭해서 쓰기로 결론내렸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백색물질이 황 성분이 결합돼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폭발재로 몰고가려는 합조단 내의 분위기 때문에 맞춤형 조사결과를 냈다는 충격적인 고백이다.

특히 합조단에서 조사활동을 벌인 이근득 국방연구소 박사는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알루미늄 황산염 수산화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예측했던 것 중의 하나로 황산 (또는), 황 화합물이 화학적으로 결합했는지, 물리적으로 결합했는지, 그때나 현재나 정확히 말할 수 없다"며 "그래서 통칭적으로 알루미늄 산화물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결론을 끼워맞췄다는 증언도 충격적이지만 분명히 황이 들어있는 성분을 어떻게 알루미늄산화물이라고 결론을 낸 것인지, 산화물(산소와 다른 원소가 결합된 물질) 범주 안에 어떻게 수화물(물과 결합된 화합물)을 넣을 수 있는 것인지 과학적 의문마저 낳고 있다.

폭발과 관련해 폭발이 있으면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 나온다는 참고문헌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박사는 "없다"고도 했다. 폭발해서 '알루미늄수화물'이 생성된 최초의 사례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모의폭발실험 등 더욱 투명한 재실험을 통해 입증해야 함에도 군은 "자존심 상한다"며 거부하고 있다.

   
  ▲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이와 관련해 합조단이 백색물질의 성분에 '황'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5월 조사결과 발표를 전후로도 일부 드러난 바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언론3단체로 구성된 천안함언론보도조사결과검증위원회의 노종면 책임연구위원은 18일 "아주 광범위한 은폐시도가 있었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며 "지난 5월 합조단 발표 직전 천안함 침몰해역 부근에서 수거한 알루미늄 파편에 뭍어 있는 물질이 황산염이기 때문에 폭발과 무관하다고 ADD가 판단했으나 국방부가 이를 묵살했다는 내용이 보도됐었는데 이번에 다시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 19일자 경향신문은 "조사단이 사고 해역에서 발견한 녹슨 알루미늄 파편 역시 고열에 녹은 흔적 등이 없고 황산 성분까지 섞여 있는 점 등을 들어 국방과학연구소에서는 천안함의 함체 내부 장비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으나 조사단 고위관계자는 북한 어뢰와의 연계성을 주장해 논란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었다.

노 위원은 특히 산화물 안에 수화물이 포함된다는 이근득 박사의 주장에 대해 "그렇다면 어떻게 폭발재라고 할 수 있느냐. 산화물은 근거 문헌이 있지만 수화물은 근거 문헌이 없다. 폭발재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그런 논리가 안되는 말을 하면서 재실험은 자존심 상한다고 할 수 있느냐"며 "검증도 없는 엉터리 실험 결과를 세계 최초라고 우기고 싶으면 학설로 인정받도록 재실험, 재조사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과학자의 자세"라고 비판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도 이날 "장님들이 코끼리를 각각 만져보고, 각각 말이 되지 않는 코끼리를 만들어낸 것"이라며 "흡착물질이 증거라고 주장한 직후부터 그 데이터가 엉터리라는 반증이 나왔고, 이미 오래된 일인데,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인됐으니 국방부는 잘못을 인정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그 물질이 자신들이 결론을 낸 것과 다른 성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대놓고 국민들을 속이기까지 한 행위"라며 "유일한 과학적 증거물이자 스모킹건이 아무런 증거물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남으로써 사실상 폭발의 증거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젠 재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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