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성균관 스캔들(성스)'은 2010년을 대표하는 인기 드라마 중 하나이다. 짙은 여운을 남기고 막을 내렸지만, ‘성스’는 숱한 화제를 뿌리며 젊은층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극중 등장하는 원칙주의자 이선준(믹키유천), 꽃도령 김윤희(박민영), 꽃미남 구용하(송중기)의 인기도 대단했지만, ‘걸오앓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던 문재신(유아인)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성균관 스캔들 열혈 시청자를 의미하는 ‘성스 폐인’들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밤을 손꼽아 기다렸고, ‘걸오’를 만나는 설렘에 부풀기도 했다. 거칠지만 세심한 성격의 문재신은 남성적 매력을 어필하기 충분했다.

문재신은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세상에 대한 저항, 사회모순에 대한 비판 정서를 세상에 알리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성균관 유생으로 생활하다 밤만 되면 권력의 실정과 문제점이 담긴 글을 화살에 담아 세상에 알리려 했다. 걸오의 또 다른 이름은 ‘홍벽서’였다.

   
  ▲ KBS 인기드라마 '성균관스캔들'에 출연한 문재신역의 유아인. ⓒKBS  
 
홍벽서의 주장은 권력 입장에서 불편한 얘기였지만, 백성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내용이었다. 홍벽서와 걸오라는 이름으로 성스에 등장했던 문재신은 드라마와 함께 시청자 곁을 떠났다.

검찰이 그것도 이름의 무게가 남다른 ‘공안 검찰’이 다시 ‘O벽서’를 현실세계에 등장시켰다. O안에 들어갈 글자는 ‘쥐’다. 무슨 얘기일까. 성스에서 병조판서 군졸들이 홍벽서를 잡아들이고자 혈안이 됐듯이 2010년 이명박 정부 시대 ‘공안 검찰’은 쥐그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시내에 ‘쥐그림’이 등장하자 경찰과 검찰이 그것도 공안검찰이 출동했다. 어이없게도 G20을 방해하려는 음모라는 혐의를 씌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법원으로부터 기각 당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처음에는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경직된 사고와 권력 충성이 지나친 누군가의 ‘실수’로 보였다. 이유는 G20을 앞두고 쥐그림을 그린 대학 강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역풍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렇다. 대학 강사의 행위는 정부 홍보 포스터에 낙서를 한 게 문제인지, 쥐를 그린 게 문제인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낙서를 한 게 문제라면 그에 걸맞은 처벌(필요하다면…)을 하면 될 일이다.

쥐를 그린 게 문제가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왜 ‘쥐’가 문제인가. 소는 괜찮고, 닭은 괜찮고, 말도 괜찮은 데 쥐라서 안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쥐는 안 되는지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 바로 검찰이, 공안검찰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 ⓒ경향신문  
 
그것을 설명하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가. 검찰은 국민이 바라는 ‘청와대 대포폰’ 몸통 찾기에는 나서지 않고 엉뚱하게 ‘쥐그림’에 집착하고 있으니 이런 검찰을 어떻게 봐야 하나. 그런데 검찰과 검찰이 진짜 그런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도 아니고 현실로 벌어진 일이다. 경향신문 11월 16일자 10면에는 <‘G20 포스트 쥐그림’ 수상한 공안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실제 상황이다. 쥐그림을 그린 사람과 경찰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에게 'G20에 쥐를 그린 것은 무슨 의미인가' '쥐를 그린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했다. 이들은 '발음이 같아서 그렸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대답했다.”

G20의 'G' 발음이 쥐와 비슷해서 그렸다는 데 경찰은 쥐를 그린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상황은 웃을 수 없는 황당한 상황 아닌가. 거꾸로 경찰은 쥐가 무엇이라고, 누구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왜 공안검찰까지 출동했는가.

검경은 쥐그림을 그린 대학강사가 학술연구모임인 ‘수유+너머’ 회원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소환조사를 벌였다. 18일에는 쥐그림을 그렸거나 지켜봤던 5명 전원을 재소환하기로 했다고 한다.

쥐그림을 그렸다는 대학 강사 박아무개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graffiti’ 아티스트의 행위를 참조했다고 설명했다. 영어가 나오고 아티스트가 나오니 굉장한 예술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그래피티(graffiti)는 ‘낙서’다.

외국에서는 ‘낙서’도 예술의 영역으로 존중받는다. 물론 그냥 낙서로 보기는 어렵다. 나름대로 의미를 담은 낙서,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낙서를 말한다.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담벼락에 ‘낙서’를 하면 그것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박씨는 왜 G20 홍보 포스터에 ‘쥐그림’ 낙서를 한 것일까. 박씨는 17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과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민중문화의 한 방법인 언어유희로 한국어로 발음했을 때 쥐라는 형상이 떠올라서 그것도 하나의 G라고 이니셜에 숨어있는 하나의 형상이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쥐를 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 한겨레 11월 17일자 사설.  
 
박씨는 ‘국가 수장에 대한 비아냥이냐 하는 논란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입장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쥐라고 하는 형상에는 꼭 그렇게 단순하게 특정인만 결부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 사회의 거대한 권세라든가 많은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이나 우리의 건강한 시민의식을 갉아먹는 그런 어떤 병균을 옮기는 그런 모든 사람들, 어떤 영혼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제 등 뒤에서 등을 떠민 배후를 묻는다면 이 시대의 무거운 공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미술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을 전공한 학자이다. 그의 그래피티는 인문학자의 철학이 담겼다고는 하지만 뱅크시 같은 전문가의 실력과 비할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 검찰과 경찰은 쥐그림 낙서를 한 박씨를 ‘한국의 뱅크시’ 반열에 올려놓았다.

공안검찰은 왜 그렇게 ‘쥐’에 집착하나. 박씨의 행위는 성스 홍벽서에 필적할만한 영향력 있는 행동이었나. 어쩌면 ‘쥐그림’에 머물 수도 있었던 낙서를 ‘쥐벽서’로 대접한 것은 바로 이명박 정부의 너무나도 바쁜(?) 공안검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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