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 G20 서울 정상회의가 12일 끝났다. 정부가 선전했던 천문학적인 규모의 경제효과를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 요란한 이벤트의 성과를 돌아볼 필요는 있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우뚝 서고 국격도 크게 올라갔을까. 떠들썩했던 전망과 달리 언론 보도는 썰렁하기만 하다. 사실 충분히 예견됐던 결과였지만 정부의 지나친 언론 플레이에 휘둘린 결과였다.

언론은 지난 2월 G20 정상회의 유치가 확정됐을 때부터 정부의 낯 뜨거운 애국주의 홍보를 확대 재생산해 왔다.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수주했을 때나 지난 8월 볼리비아와 리튬 광산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원전 수주는 이면 합의 의혹이 끊이지 않았지만 대다수 언론이 정부 발표를 단순 인용, 이 대통령의 치적을 포장하면서 정치적 선전 도구로 전락했다.

   
  ▲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SME(G20 중소기업 자금지원 경진대회) 시상식에 참석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세번째),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왼쪽에서 다섯번째)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번 G20 정상회의의 최대 화두는 환율전쟁을 어떻게 종식할 것인가에 집중됐다. 미국은 중국 위안화 절상을 비롯해 인위적인 환율 저평가를 중단할 것을 제안했고 좀 더 나가서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이 같은 주장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이번 회의에서는 아무런 구속력 없는 원론적인 수준의 합의를 끌어내는데 그쳤다.

이번 G20 정상회의의 결과는 전혀 참신하지 않았다. 미국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에게 책임을 묻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미국을 감싸고 두둔했고 다른 나라 정상들의 호응을 끌어내는데 실패했다. 이 대통령이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어쩌면 굉장한 진전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아쉬움을 반영한 발언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미국 금융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세계 경제의 불균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갈등을 중재하고 해법을 찾기 보다는 미국의 들러리를 서는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주역으로 우뚝 설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몰락하는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입증했을 뿐이다. 이 대통령은 의제 설정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치열한 헤게모니 전쟁에서 별다른 실익을 챙기지도 못했다.

언론은 일방적으로 정부에 끌려가기만 했다. 1박2일의 국제회의 한 번으로 얼마나 큰 경제효과가 있을까 회의하는 국민들도 상당수였지만 대다수 언론이 정부의 장밋빛 전망을 받아쓰기에 바빴다. 정부의 과잉 홍보를 비판하는 언론도 많지 않았고 기본권 침해 논란도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G20 의제 설정을 위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떠들썩한 이벤트를 준비하면서도 정작 내용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셈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행사라며 떠들썩한 기대와 전망을 쏟아냈던 언론은 이 초라한 결과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13일까지만 해도 의미 부여에 고심하는 분위기더니 15일 지면에서는 G20 관련 기사가 눈에 띄게 사라졌다.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흑자폭이 5.1%인 나라가 미국과 똑같은 논리를 펴면 어느 나라가 박수치겠느냐”고 지적했을 뿐 대다수 언론 지면에서 제대로 된 비판이나 반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한 특파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에서 “한국에서는 G20 정상회의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정치적 등가물로 여겨지고 있다”면서 “한국이 주목할 만한 나라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커밍아웃 파티”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 기자는 “서울은 ‘레이디 가가’ 풍의 광고로 도배돼 있으면서 정작 G20 정상회의가 논의해야 할 주요 이슈는 오히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신 보도는 냉소적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G20 정상회의는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격전장으로 변질돼 깨지기 쉬운 유리온실 같다”고 평가했다. 가디언도 “의제를 관철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이 좌절됐다”면서 “G20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세계 경제 회복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위안화 환율과 경상수지에 관한 합의를 관철시키려던 미국은 자국의 입장을 변명하기에 급급했다”고 평가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국제 경제의 틀이 바뀔 것처럼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사흘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길거리에 나붙어 있는 G20 홍보 현수막 뿐”이라면서 “신흥국 입장을 대변하겠다던 정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오히려 미국 경제가 안정되어야 세계 경제가 안정된다고 미국의 입장을 되풀이 했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부 교수는 “긴축 정책을 펼쳐야 할 미국이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단행해 달러화를 풀고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그 과정에서 개발도상국들에게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장국으로서 중재 역할을 맡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도 노력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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