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문제는 한-미 FTA 협정과는 다른 이슈여서 결코 논의도,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수차례 공언과는 달리, 최근 열렸던 한-미 통상장관 회의에서 ‘별개 의제(SIDE BAR)’로 ‘미 쇠고기 추가 개방’을 심층 논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4월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미국 쇠고기 수입 ‘비밀 협상’을 진행해 그 뜨거웠던 촛불 시위가 발생했다는 교훈을 벌써 잊었던 것인가.

특히, 한국 측 협상 대표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행태가 가관이다. 그는 11월 8일부터 나흘간 있었던 FTA관련 통상장관 회의가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별관에서 진행되는 동안 협상 내용은 물론 회의 일정을 공개하는 것도 거부했다고 한다. 그는 국회와 국민에게 협상의 진행상황을 수시로 설명해야 하는 ‘자유무역협정 체결절차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언론 브리핑도 지난 8일 딱 한번 6분 동안만 했을 뿐이라고 한다.

반면에 미국 측의 태도는 어떠했던가. 론 커크 미국 대표와 무역대표부는 미국 측 취재진과 상원 보좌진에게 협상 과련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미 쇠고기 비밀 협상도 이명박 정권이나 김종훈 본부장의 입을 통해 드러난 것이 아니라, 미국 측 인사를 통해서 알려지게 됐다. 황당하게도 우리 국민들의 커다란 관심사를 우리는 우리 정부 측 인사들에게는 한 마디도 듣지 못하고, 미국 측 인사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토머스 도너휴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 국내에 진출한 미국 기업인들을 위한 조찬간담회에서, 지난 9일 론 커크 미국 대표와 만났다고 소개한 뒤 “쇠고기 문제는 3/4정도 진행됐고 마지막 구간만 남았다”고 말해 준 것이다.

이쯤해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걸린 중요한 문제를 국민까지 철저히 속여 가며 비밀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이 정부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김종훈 본부장과 같은 관료들이 어느 나라 관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한미 쇠고기 비밀 협상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미FTA도 온통 밀실에서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는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자동차 분야에서 ▲‘연간 1만대 이하 판매 차종’에 대한 자동차 연비 및 온실가스 배출규정 적용 예외 ▲안전 관련 자기인증 범위 연간 6500대에서 1만대로 확대 ▲3국에서 수입된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환급을 5% 이내로 제한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미국의 관세 철폐 시한 연장 등 거의 모든 것을 퍼주며 일방적 양보협상을 벌인 것이다.

다만 막판에 미국 측이 미 쇠고기와 관련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바람에 일단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나마 한국 정부가 이 같은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 하겠지만, 우리 국민들은 지금도 미국이 어떤 요구를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 안진걸 전 ‘광우병국민대책회의’조직팀장  
 
지금 필요한 것은 미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재협상일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여야 정당들은 주변국들의 미 쇠고기 수입 조건이 현행 한국의 수입조건(30개월 미만, 민간자율기구 확인, 특정위험부위 수입)보다 엄격하게 협상될 경우 한국의 수입위생조건을 재협상을 통해 강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현재 미 쇠고기에 대한 일본(20개월 미만만 수입), 중국(수입금지), 대만(30개월 미만만 수입, 특정위험부위 수입금지), 호주(수입 금지) 등 주변국들의 협상 결과를 보면 한국의 수입 조건보다 매우 엄격하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자동차 분야에서 환경과 시민 안전 문제가 걸린 연비와 안전기준을 양보한 데 이어, 미 쇠고기까지 비밀협상을 통해 추가 개방한다면 온 국민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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