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고는 여전히 의혹투성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북한을 압박하고 있지만 결정적 근거라고 제시된 이른바 '1번 어뢰'가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어뢰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은 폭발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 역시 천안함 함수와 함미, 어뢰 추진체,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가 천안함의 의혹을 파헤치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책으로 펴냈다.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라"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 이 교수는 침몰 원인에 대한 정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갖추지 못한 엉터리라고 단정한다. 이 교수는 천안함 침몰 사고를 원점에서 다시 조사해야 하며 합조단 역시 조사대상이 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교수의 의문은 간단한 상식에서 출발했다. 왜 천안함의 선체와 어뢰 프로펠러에서는 검출되지 않은 결정질 알루미늄이 모의 폭발실험에서는 검출됐을까. 이 교수는 합조단의 조사 결과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데이터가 조작됐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됐다. 이 교수는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교수 등과 실험을 실시해 합조단이 제시한 흡착물질은 폭발 과정에서 발생한 산화 알루미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왜 국내 과학자들은 이처럼 간단한 과학적 의문에 침묵하고 있느냐다. 이 책에는 이 교수가 실명을 걸고 한국 정부와 맞서기까지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했는지 그 고뇌의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이 교수의 여러 동료들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전면에 나서기를 꺼렸다. 이 교수는 숱한 압력과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과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았고 조금씩 진실의 실체에 다가서고 있다.

이 교수는 "과학자에게는 과학적 진실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어떤 주장이나 문제에 대해 그것이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하다면 철저한 검증을 통해 사실 규명을 하는 게 과학자의 일상적 행위"라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합조단의 주장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거나 심지어 고소하고 잡아넣으려 하는 이명박 정부는 과학의 의미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동료 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거절 당한 일화도 주목할 만하다. 이 교수는 "한국 대학에 있는 몇몇 물리학자들과 이야기했는데 모두가 나의 분석과 실험 결과에 동의했다"면서 "어느 물리학자는 이 정권이 국민이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인줄 아는 것 같다며 개탄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유명 방송인도 정권에 쓴 소리를 했다고 방송에서 하차하는 판에 과학자들의 연구비를 끊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 보다 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가 여러 물리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메일을 보냈으나 "합조단 단장을 맡고 있는 윤덕용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훌륭하고 덕망이 있는 분이니 합조단의 발표가 틀리지 않을 것"이라며 거절하는 답장이 왔다고 한다. 포항공대에서 열린 윤 교수의 강연회에서는 "합조단이 데이터를 조작했다"며 비판하는 참석자에게 동료 교수들이 원로 학자에게 무례하다며 꾸짖기도 했다고 한다.

반면 초빙 교수로 가 있던 일본 교토대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보수 성향의 잡지가 이 교수 등을 음모론자로 비방하는 기사를 낸 뒤 초빙 교수를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하는 참이었는데 대학 관계자의 말이 "이 교수와 이 교수 가족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경찰이 캠퍼스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할 예정"이라면서 "다른 도시에 갈 일이 있으면 미리 보호 대책을 세우도록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카이스트 송태호 교수가 1번 글씨가 타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가역적 과정에서만 쓰이는 수식을 쓰고 있다"면서 "이런 한심한 경우가 있느냐"고 개탄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공계 1학년 학생들이 수강하는 일반 물리학이나 최소한 3학년에서 배우는 열역학에 나오는 것으로 이런 기본적인 과학상식도 모르고 접근하니 잘못된 결론이 나온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언론 지면에 계속 실리는 이유에 대해 "첫째, 정권과 보수세력 전체의 존립이 걸린 문제라 계속해서 국민들에게 믿게끔 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이고, 둘째, 한국 과학계의 나약한 침묵이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물리학회 같은 공인된 과학단체에서 진실규명을 요구하거나 직접 실험을 통해 진실규명을 하겠다고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합조단의 데이터 조작 가능성을 의심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합조단의 데이터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고, 둘째, 과학자들의 문제제기에 과학적으로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었으며 셋째, 객관적으로 제시된 대안에도 일체의 대응이 없었다. 이 교수는 "내가 틀렸으면 틀렸다고 데이터를 들고 와서 쉽게 반박할 수 있는 문제인데 전혀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메일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던 한 대학교수는 나중에 이 교수를 만나 정치적인 차원을 떠나 과학자로서 사실을 사실이라고 발언하는 이 교수의 행동을 격려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다만 나는 진실을 추구할 뿐이며 아마 나의 인생을 통틀어 나의 모국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헌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합조단의 실험 결과는 실수가 아니라 조작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교수는 "천안함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 즉 열상감시장치(TOD) 동영상과 폐쇄회로 TV 화면, 어뢰 잔해의 1번 글씨, 흡착물질, 프로펠러 변형 상태, 생존 병사들의 증언 등을 다시 점검하고 합조단이 발표하지 않았던 모든 정보들을 낱낱이 살펴봐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군 당국은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아울러 데이터 조작 혐의에 대한 조사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언젠가는 꼭 밝혀질 것이며 이는 이명박 정부가 한국 사회에 준 과학적 선물"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간단히 모의 폭발실험만 다시 하면 된다"면서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과학자들의 양심과 소명,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상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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