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인분 테러'는 준비된 범행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준비했다. 인분과 함께 준비한 전단지에는 "노무현 그대 무덤에 똥물을 부으며"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14일 오후 인터넷 '실시간 뉴스 검색어' 수위를 차지한 소식은 G20도 아니었고, 수영 박태환의 금메달 소식도 아니었다.

지난해 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대한 '모욕' 사건이었다. 언론은 이를 '인분 테러'로 불렀다. 경북에서 왔다는 62세 정아무개씨는 범행 직후 곧바로 경찰에 붙잡혔다.

정씨의 설명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언론에 전해진 검찰 진술 내용은 이랬다.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다 인분과 전단지를 뿌리기 위해 1주일 전부터 준비했다." “내 집 화장실에서 변을 모아 반말짜리 물통 5분의2 정도 담아 이날 사용했다.” “좌익권이 판을 치고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사전에 계획했다.”

   
  ▲ 지난해 5월25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조문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씨는 혼자 봉하마을을 찾았으며 친구들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자랑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비뚤어지고 경직된 이념의 폐해는 간단치 않았다. 전직 대통령 묘역에 대한 '모욕'은 정치성향과 이념을 넘어 한국정서에서 용납되지 않는 모습이다.

진보와 보수가 달리 평가할 일이 아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묘소에 대해서는 예의를 다하는 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다. 게다가 전직 대통령 묘역이다. 봉하마을 그곳은 지난해 5월 23일 이후 수많은 사람이 참배를 다녀온 공간이다.

가깝게는 경남 김해와 부산에서 멀게는 서울과 제주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에서 그곳을 찾았다. 그들 모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평가하는 지지층의 행렬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 현대사에 기록될 '비극적인 죽음', 그 주인공에 대한 안타까움의 뜻도 담겨 있다. 

   
  ▲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의 바닥을 장식한 박석에 새겨진 시민들이 헌정한 문구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보수성향 인사도 한나라당 지지층도 그곳을 찾은 이유다. 정씨의 행동은 봉하마을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의 추모정서에 '똥물'을 끼엊은 것과  다름없다.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의 '짙은 그늘', 이념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전직 대통령 묘역 훼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에 방화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준 일이 있다. 당시 보수단체 회원의 범행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 방화와 인분투척을 연이어 당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G20 개최로 한국의 국격이 높아졌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상식이 지켜지고 있는 세상인지를 되물을 필요가 있다.

노무현재단은 “오늘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 묘역이 오물로 더럽혀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다. 경악을 금치 못하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노무현재단은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친데 대해 참으로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현재 현장에서 체포된 혐의자를 수사하고 있는 사법 당국은 이번 사건에 조직적인 배후가 있는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고, 그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 김해 봉하마을 너럭바위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는 시민들. 이치열 기자  
 
정치권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믿기지 않는 이번 사건에 대해 민주당은 국민과 함께 분노하며 유감의 뜻을 밝힌다. 아울러 경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밝혀야 하고, 만약 배후가 있다면 철저히 가려내 엄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영 대변인은 “올해 2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방화사건도 있었지만 수사결과가 모호한 상황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의 신속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로 국민들의 걱정을 더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순필 국민참여당 대변인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그분을 생각한다면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고 한 두 명의 돌출행동이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의 이념편향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모욕'은 야만행위이다. 그런 야만행위를 부른 사고 체계와 이념의 토대가 무엇 때문인지는 따져볼 대목이다. 야만의 폭력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편안하게 잠들 권리조차 없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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